천계 6년 북경성 대폭발 비망록
“난 이 나라를 떠나 구라파(歐羅巴: 유럽)로 가겠소! 구라파에서는 지금 전쟁에 환장한 왕들을 만족시키려는 공장(工匠: 기술자)들이 많소! 막대한 자본도 여러 나라에서 축적되고, 금융업이 발전하면서 자본을 가진 자들 간의 이합집산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소! 조만간 구라파 전체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명나라의 것을 압도할 것이며, 300년쯤 뒤엔 구라파의 단 한 나라가 명나라 전체를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오. 이런 환경에서라면 내 사업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니….”
마 대인은 갑자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5월 6일 오전에는 절대로 북경성 안에 있지 마시오! 반드시 새벽닭이 울기 전까지 성을 나가시오! 반드시 다음 날 들어오도록 하시오! 북경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면 늦게 들어올수록 좋을 거요! 정 형이 모은 재물도 이동시키시오. 성 밖에 집이든 창고든 빌려서라도 말이오!”
마 대인의 지시를 내가 멍하니 듣고 있으려니 마 대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는 이 나라가 조만간 망하리라고 온 명나라 백성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내가 준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한 명나라의 지배층을 혼내주기 위해서 벌이는 것이라오. 이미 몇 차례 ‘징조’라는 걸 보여 경고했으니, 지혜로운 자들은 이 북경성을 빠져나가기 시작했소. 내 저택에서 일하던 하인들도 다 내보냈지! 이는 내 나름대로 결착을 내는 거라고 보시면 되오.”
마 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붙이고 허리를 굽혀 길게 읍했다.
“이제껏 맛있는 거 잘 먹었소. 언제 또 이런 미식을 즐기게 될지 모르겠구려, 하하하!”
이렇게 말하고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이제껏 마 대인에게서 무슨 말을 들은 건가 생각하며 마 대인이 나간 문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따라 나갔다.
마 대인은 온데간데없고 마당에는 초가집만큼 커다란 붉은 구슬이 둥둥 떠 있었다.
붉은 구슬은 야광주(夜光珠)처럼 붉은 빛을 번쩍이며 ‘웅, 웅’ 소리를 내다가 하늘로 ‘쓔웅!’ 하고 날아가더니 이내 붉은 혜성처럼 밤하늘 저 멀리로 자취를 감췄다.
해가 뜨자 나는 “오늘은 휴업한다!”고 선포한 다음 양씨와 함께 북경성 밖을 나가 허름하면서도 지붕과 벽이 튼튼한 집 한 채를 빌렸다.
북경성 서북쪽에 있는 서직문(西直門) 근처였다.
그날 오후부터 나는 머슴들과 계집종들을 모두 동원하고 수레를 빌려 재물과 술독들, 고급 식자재들을 날랐다.
주루를 찾아오는 단골들을 돌려보내면서 며칠 여행이라도 다녀오시라고 귀띔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으면 그저 이렇게 둘러댔다.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셨습니다. 며칠 안에 재앙이 닥칠 것이라 경고하셨지요.”
몇몇은 내 말을 귀담아듣고 당신 집 문을 굳게 닫은 뒤 가솔들을 거느리고 북경성을 떠났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이들은 이런 반응을 보이며 코웃음을 칠 따름이었다.
“별 해괴한 꿈을 다 꾸었네. 아, 경태제 때 몽고 놈들이 10만 군세로 쳐들어왔어도 끄떡없던 북경성이야! 오히려 북경성 밖으로 나가는 게 더 위험할 걸세, 이 사람아!”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5월 5일 해가 지기 전까지 모든 귀중품을 빌린 집으로 옮겼다.
난데없이 좁은 곳에서 복작거리게 되어 불만이 가득한 머슴들과 계집종들을 달래기 위해 나는 화퇴와 석장 같은 고급 식자재까지 아낌없이 써가며 요리를 마련해 주연을 열었다.
6일 새벽까지 먹고 마신 다음 다들 앉은 자리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닭 울음소리를 듣고 한참 뒤,
화약 무더기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 같은 폭음과 진동이 나와 하인들을 깨웠다.
다들 무슨 일인지 몰라 소리를 지르거나 울부짖으며 집을 뛰쳐나갔다.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를 바로 짐작했다.
이로부터 30여 년 전이던 임진년,
그러니까 왜란 첫 해에 한양에서도 이런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한양 남쪽에 있던 군기시(軍器寺)에 저축된 화약 수만 근이 한꺼번에 폭발했다고
당시 어른들이 탄식하시던 게 떠올랐다.
선조 임금께서 몽진을 떠나신 직후였으리라.
‘마 대인이 말씀하신 난리가 이런 거였나?’
밖에 나와 보니 아침인데도 어둑어둑한 하늘에 거대한 버섯 같은 구름 하나가 왕공창 쪽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후일 지인이 영지버섯을 선물했는데,
영지버섯의 주황색과 빨간색, 검은색과 노란색 껍질을 보자 바로 저 버섯 모양 구름이 떠올라 부지중에 부르르 떨었다.
왕공창은 화약을 비롯한 군수물자를 각 부대에 보급하는 곳이라 하니,
막대한 화약 또한 거기 쌓여있었으리라.
혹시 마 대인이 잠입해 불이라도 지른 것일까?
내 눈앞에서 날아갔던 거대한 붉은 구슬이 저지른 건가?
나는 지금까지 마 대인과 재회하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리라.
슬금슬금 북동쪽으로 움직이는 거대하고 불길한 구름을 보면서 부지중에 오줌을 지렸다.
이를 깨달은 건 머슴들이 내게 고함을 치고 내 몸을 흔들어댄 덕분이었다.
“나리! 나리! 우린 이제 뭘 해야 합니까요?”
양씨가 물었다.
나는 그가 건네준 식은 찻주전자를 한참 빨아서 정신을 차리고 지시를 내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하니 서직문 안으로 들어가자고.
뒤늦게 마 대인의 경고를 떠올리고 지시를 철회하려던 순간 ‘우어어어,
으어어’ 같은 신음소리가 천지를 뒤덮기에 나는 멈춰 선 채 하늘을 둘러봤다.
“끼야아아아악!”
계집종들이 일제히 서직문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비명을 질렀다.
고개를 돌렸더니 끔찍한 광경이 눈에 들어와서 저절로 눈을 질끈 감았다.
벌거벗은 사람들이 서직문 밖으로 수백 명씩 꾸역꾸역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뒤쪽 사람들이 앞쪽 사람들을 밀어내는 것 같았다.
10 중 8~9는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두 팔이 사라지거나 한쪽 눈구멍을 손으로 막아 지혈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지가 멀쩡해 보이는 이들도 실성을 했는지 괴상한 신음소리를 냈다.
“양씨, 당장 머슴들을 지휘하여 집 앞에 벽돌을 쌓아 화덕을 만들고 가장 큰 솥을 거시오! 먹을 수 있는 건 모조리, 아끼지 말고 한꺼번에 끓여서 죽을 쑤시오! 계집종들더러는 집안 아궁이에서 물을 끓여 맑게 한 뒤 수건이랑 깨끗한 옷을 적시게 하시오! 저 사람들을 이쪽으로 불러서 깨끗하게 닦아준 뒤 술과 죽을 먹입시다!”
“그러면 나리께서 가지신 식량과 술, 땔감이 오늘내로 거덜이 날 텐데요?”
“북경성 사람들이 저렇듯 고통 받는 걸 보면서 양씨는 밥이 넘어가겠소? 재물은 아낄 테니까, 양씨를 비롯하여 하인들이 원한다면 새경을 정산해주겠소!”
내가 이렇게까지 일갈하자 양씨는 한숨을 푹 내쉰 다음 길게 읍하고서 물러갔다.
내가 지시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 또한 일이 진행되는 걸 지켜보면서 크게 다친 사람들을 내 집으로 안내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왓장이나 제 손으로 자신의 부끄러운 곳을 가리고 있었다.
계집종들은 실성한 여인들이 남의 팔다리로 제 음부를 가리고 있는 걸 볼 때마다 비명을 지르거나 혼절했다.
나는 그런 계집종들을 달래면서 피해자들이 적당히라도 걸칠 걸 나눠주라고 했다.
하지만 벌거벗은 사람이 계속 이어지니 금방 동났다.
이 꼬라지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마 대인을 원망했다.
‘양반이든 천민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벗겨보면 구분을 할 수 없다는 걸 저들에게 깨우쳐주려는 게 마 대인의 뜻이었을까? 하지만 이는 너무 지나치다! 뭐, 마 대인의 고향에서는 저런 건 괘념치 않아서일지도 모르고, 마 대인이 너무 오래 살면서 온갖 끔찍한 걸 봤더니 마음이 무뎌진 탓도 있겠다만….’
이들이 걸쳤던 옷, 모자, 신발, 장신구, 엽전 따위가 발견되기는 했다.
하지만 무려 북쪽으로 100리 밖에 있는 지역에 무더기로 쌓이거나 나뭇가지에 걸쳐있다고 파발이 전해온지라 찾으러 가는 걸 다들 포기하는 눈치였다.
지금쯤 그 지역 사람들이 횡재했다면서 다 챙겼을 테니까.
그러니 관아에서 내려준 누더기나 다름없는 옷이나 천조가리를 걸친 난민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북경성 안의 집들 중 왕공창 일대에 있는 것들은 다 무너졌으며,
먼 것도 무너지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에 양씨와 함께 내 주루를 찾았다.
왕공창 쪽으로 갈수록 집들이 다 무너진 걸 직접 확인하면서 기대도 안 했다만,
역시나 나와 7년 가까이 함께했던 주루는 마 대인의 저택과 마찬가지로 와륵(瓦礫)이 되어있었다.
양씨는 그걸 보면서 털썩 주저앉아 흐느꼈다.
하늘 또한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어쩐지 우리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때 눈물을 흘리던 내가 견디기 더 힘든 게 나타났다.
“킁! 킁! 이보게, 양씨. 이거 피비린내 아닌가?”
여전히 길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양씨가 냄새의 근원인 걸 주워서 보더니 기겁을 하며 내던졌다.
양씨는 소의 눈깔처럼 커다래진 두 눈으로 나를 보면서 외쳤다.
“나리, 이 일대를 보, 보, 보십쇼! 이거 다, 다, 다 사람의 살점들입니다요!”
양씨의 외침에 나 또한 길바닥에서 ‘냄새나는 것들’을 주워 살폈다.
썩기 시작한 사람의 살점인 걸 깨닫자 집어던지고서 한참 토했다.
토하면서 다시 눈을 들었더니 사람의 살점과 뼛조각, 잘려 나온 팔다리 따위가 길바닥을 온통 뒤덮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마 대인,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인 거요? 왜 이런 짓을 하신 거요? 경고하고 혼을 낸다면서 왜 이리도 많은 사람들을 죽인 거요? 아하! 1만 년 넘게 살았더니 너무 많은 피를 본지라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요? 혹시 당신 고향에서는 이런 게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요? 아니면 당신만 특이한 건가요?’
나는 마음속으로 마 대인을 향해 외쳐댔지만,
이 항의는 시나브로 말이 되어 내 입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양씨는 나 또한 실성했다고, 그래서 헛소리를 중얼거린다고 여기는 듯했다.
나는 내 두 뺨을 양 손으로 세차게 때린 다음 소리 내어 실실 웃어대기까지 하는 양씨의 손을 잡고 서직문을 빠져나왔다.
독한 술을 연거푸 몇 잔 먹이고 한참 쉬게 했더니 양씨가 정신을 좀 수습했다.
나와 함께 하인들을 지휘해야 할 양씨의 마음을 좀 더 달랠 겸 함께 술을 마셔주었다.
양씨가 생각을 많이 하느라 말이 없다 보니 나 또한 생각에 빠졌다.
마 대인은 이 일이 닥쳐오리라 말하면서 ‘경고’라고 못을 박았다.
분명히 그랬다!
그러니까 조만간 상국(上國: 명나라) 전역에 이런 끔찍한 사태가 닥칠 것이라고 미리 알리는 것일 뿐이라고 한 것이다.
그랫단 말이다!
사람들이 걸치거나 지닌 걸 다 날려 보낸 것도 마 대인이 경고한 난리 때 고귀하거나 부유한 이들에게 닥칠 약탈을 미리 맛보여준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