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대인의 지혜와 도움

천계 6년 북경성 대폭발 비망록

by 장웅진

하나는 재물이었다.

기름진 중원(中原)의 음식에 비해 담백한 조선의 음식을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고관대작 분들부터 한량들에 이르기까지 환영해주었다.

그래서 내 주루에 손님이 끊일 날이 없다 보니,

궤짝에는 은자(銀子)가 그득그득 쌓였다.

이 막대한 재물을 가지고 귀향한다면 처자식과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터였다.

천민 취급을 받아가며 숙수 일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소일거리로 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식자재였다.

사탕(설탕)과 진말, 기름, 호초(胡椒: 후추)처럼 조선에서는 귀한 식자재를 아낌없이 쓸 수 있고, 화퇴(火腿: 중국식 햄)와 석장(腊肠: 중국식 소시지) 같은 신기한 납육(臘肉: 가공한 고기)과 듣도 보도 못한 과일들이며 채소들, 첨면장(甛麵醬: 춘장)과 두반장(豆瓣醬) 같은 다양한 장류를 근처 시장에서 구해 쓸 수 있다는 점도 내 마음을 유혹했다.

새롭고 맛있는 요리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대단한 숙수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던 내게 상국(上國: 명나라)은 그야말로 신세계요, 별천지였다!


더군다나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이런저런 이유로 타박을 당하던 조선에서와 달리,

여기서는 아무도 내 요리를 타박하지 않았다.

내 귀에 들리는 건 마 대인과 단골들, 심지어 북경에 일이 있어 들렀을 뿐인 뜨내기손님들의 칭찬뿐이었다.


마 대인 또한 기발한 물건들을 고안하여 내 주루를 도와주셨다.


“북경의 물이 조선의 물보다 탁해서 골치라고요? 손쉬운 해결책이 있소!”


중원의 논밭을 기름지게 해주는 황토의 부스러기가 물에 남아서인지 물맛이 탁해서 조선 요리의 제 맛이 나지 않는다는 내 푸념에 마 대인이 하신 말씀이었다.

마 대인은 내 머슴들의 우두머리인 양씨더러 바닥에 송곳구멍을 가득 뚫은 항아리를 여러 개 주문하라 하셨다.

마 대인은 양씨가 받아온 항아리 바닥에 성기게 짠 무명을 깔고,

작은 자갈로 덮어 한 층을 만든 다음,

그 위에 고운 모래의 층을, 또 그 위에는 숯가루의 층을 만든 뒤,

다시 모래의 층으로 덮은 다음 맨 위에 굵직한 자갈을 깔아 층을 만들었다.

입구의 크기가 이 항아리의 바닥 크기와 딱 맞는 좀 더 큰 항아리 위에 이 항아리를 놓게 하시더니,

계집종더러 물을 부으라 하셨다.

이로써 맑은 물을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https://www.facebook.com/khojmuseum/photos/a.148448599131135/526829864626338/?type=3



“이게 어찌 된 조화입니까, 대인?”


내 물음에 마 대인은 “간단한 거요, 정 형!”이라 운을 떼며 크게 웃고 대답했다.


“땅 위를 흐르던 더러운 물이 땅속으로 흡수된 뒤 우물에 고이는 것과 같은 원리라오. 땅속의 흙과 돌 따위가 더러운 물을 걸러내 맑은 물을 만드는 거 말이오.”


내가 마 대인의 지혜에 감탄을 표하고 함께 노주(老酒)와 찐 납육을 즐기며 잡담을 나눌 때

양씨가 또 보고를 올리러 왔다.

생으로 상에 올려야 할 상추를 비롯하여 싱싱해야 할 채소들이 모두 숨이 죽었다고 했다.

상당히 비싼 채소도 있다고 하면서

이 모두를 뒷마당에서 키우는 돼지들에게 먹여야 하니 분하다고 양씨가 투덜거렸다.

마 대인은 이 또한 해결책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작은 항아리와 큰 항아리를 짝을 맞춰 준비하시오. 작은 항아리의 크기는 큰 항아리에 들어갔을 때 그 입구가 큰 항아리의 입구로부터 손가락 한 마디 정도만 떨어져 있어야 하오! 흙도 한 무더기 준비해두시오!”


양씨와 머슴들이 항아리들을 준비하자

마 대인은 큰 항아리에 흙을 먼저 담게 한 다음 한가운데에 작은 항아리를 박듯이 넣었다.

그리고 작은 항아리의 입구와 큰 항아리의 입구 사이의 공간을 흙으로 채웠다.

이 흙에 계집종들이 물을 붓고,

마 대인의 지시에 따라 작은 항아리 안쪽에 묻은 물기를 계집종들이 깨끗이 닦아냈다.


“자, 작은 항아리에 신선한 채소를 담은 다음 젖은 천을 덮어두면 채소가 기존보다 몇 배 더 오래 갈 거요! 큰 항아리마저 덮는 실수를 범하지 말고, 흙에는 물을 수시로 뿌려 축축하게 해주시오.”


“이는 또 어떤 원리를 사용하신 겁니까, 대인?”


“이 또한 간단한 원리라오, 정 형! 한여름에 참외를 물이 담긴 사발에 담가두면 시원해지잖소? 이는 사발에 담긴 물이 마르면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물이 날아가면서 주변의 열기도 함께 가져가는 것이라오. 그래서 사발에 남은 참외가 차게 식는 거요. 그 원리를 응용한 거지요.”



https://en.wikipedia.org/wiki/Pot-in-pot_refrigerator



“소인은 대인께서 전생에 촉나라의 재상 제갈공명 대감이 아니셨을까 합니다.”


“하하하, 정 형이 소생을 그렇게 봐주시니 소생은 몸 둘 바를 모르겠소이다!”


나는 이렇듯 마 대인의 도움을 받아 장사를 하여 재물을 많이 모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고관대작들께서 내 주루의 단골이시다 보니 감히 관헌들이나 무뢰배들이 내 주류에 ‘상납’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웃 가게들에는 그런 자들이 수시로 들이닥쳐 재물을 빼앗는 걸 보면서 이 나라가 오래 머물 곳은 아니라고 여겼다.

더군다나 천계 4년과 5년에는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큰 타격을 입었는데도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환관들은 백성들을 가혹하게 착취하는 걸 멈추지 않고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나라에서는 백성들이 봉기하거나, 타국에서 온 침략군을 백성들이 물리치기는커녕 오히려 환영하기까지 하면서 망하기 일쑤였다오. 내가 두루 알아보니 정 형의 고향이 지금 영 좋지 못한 상황에 놓인 것 같소이다만, 이 명나라에 비하면 완전히 망할 일은 없을 것 같소.”


마 대인이 나와 내실에서 단 둘이 술을 마시던 날에 털어놓은 이야기다.

하도 엄청난 이야기라 주변에 혹시나 엿듣는 자가 없는지 느닷없이 일어나 둘러보기까지 해야 했다.

그런데도 마 대인은 껄껄 웃으며 호탕하게 말했다.


“그런 자가 있었다면 아마 내가 이미 목숨을 끊어놨을 거요. 하지만 그런 자가 없다는 걸 알았기에 내가 정 형에게 이렇듯 순순히 털어놓은 것이외다!”


어차피 고관대작들께서 이 내실에서 주고받으시던 얘기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마 대인에게 고개를 끄덕여드리면서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이제 슬슬 여기서 모은 재산을 정리하여 귀향을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를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들었던 이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명나라도 더 이상 상국답지 않잖소. 지난 심하 전투에서 오랑캐한테 대패한 뒤부터 양반 나리님들조차 이 명나라를 상국으로 보는 것에 회의감을 품기 시작했소. 오랑캐들의 포로가 됐다가 송환되거나 가까스로 도망쳐왔던 사람들이 증언하기를, 명나라 군대가 영 개판이었다고 하니까요! 하긴 명나라 군대가 지난 임진년이랑 정유년에 그랬듯이 상국 군대다웠다면 정 형이 지금 여기서 이러고 계셨겠소?”


내게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은 내 주루의 조선인 손님이었다.

상국에서는 ‘건화(乾貨: 말린 화폐)’라 부르며 귀하게 여기는 건전복과 건해삼을 몰래 팔러 왔던 자다.

더군다나 내가 한양에서 살 때 안면을 텄던 자이기도 했다.

나도 이 사람의 단골이었으니까.

이 사람 덕분에 지금은 내 두 아들놈들이 숙수 일을 한다는 소식과,

제 어머니(내 처)를 모시고 숭례문 밖에서 근근이 살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이 손님은 내 주루를 비롯한 일대 가게들에서 문 밖에 등불을 걸기 시작할 때쯤 주루를 나섰다.

조선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면서….

그 말 때문에 심란하던 차에 상국 사람인 손님들은 기묘한 화제를 입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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