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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Oct 09. 2024

[단편소설] 누나의 선물

원고지 10매 분량 초단편



“팀장님은 쉬는 날엔 꼭 나무를 심으시네요.”


금발이 섞인 갈색머리 중년 여인이 자기 또래 검은머리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말고는 다른 취미가 없어서요, 과장님.”


사내는 방금 심은 묘목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두 손으로 모은 흙을 뿌리에 덮어주다가 고개를 쳐들어 여인을 봤다. 사내는 여인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주고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여인은 사내가 호스 끝에 달린 분사기의 손잡이를 쥐어 묘목에 물을 주는 걸 지켜봤다. 그러더니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 다시 말을 걸었다.


“정. 연. 우. 팀장님, <나무를 심는 사람> 읽어보셨나요?”


“예, 캐나다 작품이었죠? 과장님 네 나라인?”


“푸훗!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원작 소설이요. 소설은 프랑스 작품이에요.”


“아, 소설은 못 읽었어요. 있는 줄도 몰랐네요.”


사내가 대구하면서 삽 쪽으로 손을 뻗었다.

여인이 삽을 집어 사내에게 건네줬다.

사내는 미소 지으며 받으면서 물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왜 떠나고 싶어 할까요? 82.7퍼센트가…. 계약기간만 채우고요.”


“그건 흙과 돌 그리고 팀장님이… 으음, ‘빌어 처먹을’이라는 표현을… 종종… 붙이시는 인공구조물들뿐이니까요.”


“그래요, 과장님. 난 누나와 매형, 조카 부부도 여기 와서 나랑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 빌어 처먹을 인공구조물 덕분에 의식주 걱정은 없잖아요. 다만… 여기가 너무 살풍경해서…. 하지만 사람들이 여기서도 뿌리를 내리면 전 지구적인 거주지 부족 문젠 단박에 해결될 텐데….”


“그렇겠죠, 팀장님. 환경 문제로 사람이 살 곳이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전 세계 인구는 계속 늘고…. 그래서 각국이 살 곳을 더 확보하려고 ‘빌어 처먹을’ 전쟁을 벌이고…. 결국 사람이 살 곳이 더 파괴되는 악순환이 벌어지죠.”


“그러니까요, 과장님! 정말 빌어 처먹을 현실이죠! 그러니 우린 이 빌어 처먹을 황무지를 그저 광물 자원을 수탈할 곳으로나 여길 게 아니에요! 더 많은 사람들이 살 만한 곳으로,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걸 위해 저는 지금 이렇게 나무를 심는 거고요! 물론 이 빌어 처먹을 토양에 뿌리를 내릴 품종을 아직 못 찾았지만…, 언젠가는 이 땅이 에메랄드빛으로 물들리라 봐요!”


사내는 땅에 꽂은 삽의 손잡이에 기대고서 방금 심은 묘목을 애잔하게 바라봤다.


“그래서 여기 올 때 누님한테서 나무 씨앗을 받아오셨군요.”


“예. 누나는 어릴 때부터 환경운동을 했어요. 그래서 나무 심고 가꾸는 거에도 관심이 많았죠. <나무를 심는 사람>을 보자고도 했고요. 뇌까지 어렸던 나는 누나가 왜 저런 심심한 애니메이션을 나한테도 강요하나 싶어서…, 그래서 싸웠어요.”


“푸훗! 진짜 남매네요. 하지만 전 팀장님 같은 남동생이 있는 그분이 부러워요.”


“테레사 필처 과장님, 테레사 필처 과장님, 상황실로 와주십시오! 테레사 필처 과장님, 테레사 필처 과장님, 상황실로 와주십시오!”


여인은 자신을 찾는 안내방송이 울리자 얼굴을 찌푸렸다.


“어서 가보세요, 과장님. 해결사가 필요하다잖아요.”


“휴…, 내가 저 인간들 엄마도 아닌데….”


“의젓한 누나시잖아요, 과장님. 제 누나처럼요, 하하하!”


여인은 소녀처럼 사내에게 혓바닥을 날름 내보이고서 자리를 떴다.

사내는 상황실로 돌아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애련하게 지켜봤다.

사내는 목과 어깨의 근육이 아팠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제 머리 위를 덮고 있는 거대한 크리스털처럼 맑고 투명한 통유리천장 너머에서 둥글고 파랗게 빛나는 초거대 사파이어 같은 행성을 보며 사내는 중얼거렸다.


“지구는 아직도 푸르게 보여, 누나.”




달에서 본 지구 https://www.pbs.org/wgbh/americanexperience/features/moon-earth-moon/





https://youtu.be/gx5He0CsnAE?si=R7jHlcsAVo9VAbHz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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