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방금 심은 묘목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두 손으로 모은 흙을 뿌리에 덮어주다가 고개를 쳐들어 여인을 봤다. 사내는 여인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주고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여인은 사내가 호스 끝에 달린 분사기의 손잡이를 쥐어 묘목에 물을 주는 걸 지켜봤다. 그러더니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 다시 말을 걸었다.
“정. 연. 우. 팀장님, <나무를 심는 사람> 읽어보셨나요?”
“예, 캐나다 작품이었죠? 과장님 네 나라인?”
“푸훗!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원작 소설이요. 소설은 프랑스 작품이에요.”
“아, 소설은 못 읽었어요. 있는 줄도 몰랐네요.”
사내가 대구하면서 삽 쪽으로 손을 뻗었다.
여인이 삽을 집어 사내에게 건네줬다.
사내는 미소 지으며 받으면서 물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왜 떠나고 싶어 할까요? 82.7퍼센트가…. 계약기간만 채우고요.”
“그건 흙과 돌 그리고 팀장님이… 으음, ‘빌어 처먹을’이라는 표현을… 종종… 붙이시는 인공구조물들뿐이니까요.”
“그래요, 과장님. 난 누나와 매형, 조카 부부도 여기 와서 나랑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 빌어 처먹을 인공구조물 덕분에 의식주 걱정은 없잖아요. 다만… 여기가 너무 살풍경해서…. 하지만 사람들이 여기서도 뿌리를 내리면 전 지구적인 거주지 부족 문젠 단박에 해결될 텐데….”
“그렇겠죠, 팀장님. 환경 문제로 사람이 살 곳이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전 세계 인구는 계속 늘고…. 그래서 각국이 살 곳을 더 확보하려고 ‘빌어 처먹을’ 전쟁을 벌이고…. 결국 사람이 살 곳이 더 파괴되는 악순환이 벌어지죠.”
“그러니까요, 과장님! 정말 빌어 처먹을 현실이죠! 그러니 우린 이 빌어 처먹을 황무지를 그저 광물 자원을 수탈할 곳으로나 여길 게 아니에요! 더 많은 사람들이 살 만한 곳으로,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걸 위해 저는 지금 이렇게 나무를 심는 거고요! 물론 이 빌어 처먹을 토양에 뿌리를 내릴 품종을 아직 못 찾았지만…, 언젠가는 이 땅이 에메랄드빛으로 물들리라 봐요!”
사내는 땅에 꽂은 삽의 손잡이에 기대고서 방금 심은 묘목을 애잔하게 바라봤다.
“그래서 여기 올 때 누님한테서 나무 씨앗을 받아오셨군요.”
“예. 누나는 어릴 때부터 환경운동을 했어요. 그래서 나무 심고 가꾸는 거에도 관심이 많았죠. <나무를 심는 사람>을 보자고도 했고요. 뇌까지 어렸던 나는 누나가 왜 저런 심심한 애니메이션을 나한테도 강요하나 싶어서…, 그래서 싸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