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역사소설 <남강 위의 먹구름>
“응애! 응애! 으으응애!”
갓 태어난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온 집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나리, 나리! 사내아기씹니다! 도련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중년 여인이 산실(産室)에서 튀어나와 늙은이에게 축하를 올렸다.
“오오, 나리! 감축 드립니다! 드디어 득남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나리를 이어 이 집안을 이끌어 가실 도련님이 태어나셨습니다.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와아, 작은 마님께서 정말 큰일을 하셨다니까요!”
“그러게요. 이 큰 집을 그야말로 구석구석 돌보시면서 말이에요.”
당여(黨與: 부하)들과 노복들이 일제히 축하를 올렸다.
사벌주(경북 상주시) 가은현의 촌주인 이 늙은이는 정실은 물론 이 소실과의 사이에서도 계속 딸만 보고 살았다. 이러다간 이 큰 집과 저 많은 전답, 촌주 자리까지 친척에게 넘기는 건가 싶어 이불을 차며 밤잠을 설쳐댔었다. 그런 악몽 같은 사태는 이로써 일어나지 않게 됐다.
“어흠! 큼! 큼!”
늙은이는 헛기침과 함께 함박웃음을 지으며 산실에 들어갔다.
방금 몸을 푼 젊은 여인이 늙은이를 보더니 급히 상반신을 일으키려 했다.
“아니, 됐네! 쉬도록 하게! 허허허!”
늙은이는 여인의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수고했어! 정말 수고했어!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하게. 내가 멧돼지라도 한 마리 잡아다 줄 수 있네, 허허허!”
“감사합니다, 나리. 쇤네는 그저 고깃국을 실컷 먹고 싶습니다.”
“아암! 아암! 고깃국 말이지! 이렇게 기쁜 날이니 내가 소든 말이든 잡아서라도 잔치를 벌어야지! 아암! 내 아들이, 이 각간(角干) 김작진(金酌珍)의 아들이 태어났으니 말이지! 당연히 큰 잔치를 벌여야 하지 않겠는가! 자아, 우리 아들 얼굴 좀 보자! 어허, 참! 거 누굴 닮아서 이렇게 잘 생겼느냐? 그리고 이…, 이 양물(陽物)은 역시나 이 김작진의 것을 물려받았구나, 허허허!”
여인은 자기 아들을 보며 기뻐하는 늙은 서방에게서 자기 옆을 지켜온 중년 여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중년 여인도 이 여인에게 살포시 미소를 지어 보여주었다. 자기마저 더부살이하는 ‘사돈댁’에 ‘딸’이 대를 이을 ‘외손자’를 안겨드린 걸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이 산모는 10대 후반의 소녀처럼 보인다. 길가에 핀 들꽃처럼 수수한 얼굴, 동글동글한 눈매, 작은 체구, 뽀얀 피부 덕분에 말이다. 실은 28살이나 됐다. 딸도 둘이나 낳았었다. 둘 다 병으로 일찍 죽었지만….
늙은이는 이 여인이 아들을 낳아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래서 이 여인과 ‘어미’를 거둬 들인지 지 13년이나 흘렀는데도 내치지 않았다. 이는 정실부인이자 이 늙은이의 친우(親友)였던 거상 왕씨의 질녀인 왕교파리(王咬巴里)의 뜻이기도 했다.
왕교파리는 서방이 아들 하나 보겠다며 소실을 마구 들이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이 여인만 품으라고 종용했다.
이 ‘모녀’ 또한 품팔이와 유리걸식을 병행하던 13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서방더러 자신들을 거둬들이라 했던 왕교파리에게 아주 잘 순종했다.
앞으로 이 도련님은 왕교파리 부인의 친아들로 자라날 것이다. 친엄마를 유모로 여기리라.
이 ‘모녀’는 그걸 반겼다. 자신들의 진짜 신분과 과거를 감히 세상에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들/‘외손자’의 행복을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이들 모녀가 무사하기 위해서이기도였다.
“자아, 그럼! 험! 험! 이 기쁜 소식을 왕 부인에게도 전해주러 가야겠어. 잘 쉬고 있게.”
“예, 나리. 감사합니다. 헌데…, 이 아이, 아니, ‘도련님’의 이름은 뭐라 지으실 건가요?”
“으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지…, 아명(兒名)은 ‘아자개(阿慈介)’로 하겠어. 정식 이름은 지금부터 왕 부인이랑 논의해야지, 허허허!”
늙은이가 나가자 중년 여인은 한숨을 팍 쉰 다음 ‘딸’에게 말했다.
“아자개라…, 무슨 뜻일까요, 아씨?”
“모르지요. 물론 좋은 뜻이겠지요, 유모. 그렇겠지요, 아자개 도.련.님?”
아씨는 핏기가 가시지 않은 아자개의 작은 손가락들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걸었다.
유모는 이 두 모자를 지켜보면서 눈물을 훔쳤다.
아씨는 아자개를 다정하게 바라보면서 속삭이고 있었다.
“부디 이 어미를 위해서, 어린아이들마저 처참하게 살해당한 당신의 외가를 위해서 복수해주세요, 아자개 도련님. 당신 대에 못한다면…, 당신 아드님이라도 그렇게 하게끔 지도해주세요, 아자개 도련님! 반드시…, 반드시 저 신라 왕실의 놈·년들을… 잔인하게 도륙해 주세요, 아자개 도련님! 저 놈·년들이 당신 외가에 했던 걸 고스란히 돌려주세요, 아자개 도련님! 네에…, 당신이든, 당신 아드님이든 반드시 그러셔야 합니다, 아자개 도련님! 당신은 그러기 위해 제 몸을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겁니다, 아자개 도련님!”
유모는 아씨의 증오심이 사무친 발언을 들으면서 25년 전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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