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예술은 동일하다
2010, 이창동 / 드라마 / 2시간 20분
한강을 끼고 있는 경기도의 어느 작은 도시, 낡은 서민 아파트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미자. 그녀는 꽃 장식 모자부터 화사한 의상까지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은 엉뚱한 캐릭터다. 미자는 어느 날 동네 문화원에서 우연히 '시' 강좌를 수강하게 되며 난생 처음으로 시를 쓰게 된다. 시상을 찾기 위해 그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을 주시하며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는 미자. 그러나, 그녀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찾아오면서 세상이 자신의 생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출처 :네이버 영화)
이창동의 다섯 번째 작품 <시>는 실존적인 고통과 마주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삶의 본질과 딜레마를 심도 깊게 응시한다는 점에서 <밀양>의 연장선상에 와 있다. 한국 사회에 존재했던 비극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본인의 필체로 영화 전체에 투영시킨다는 점에서는 한국 사회의 암연(黯然)을 정면으로 다루었던 그의 초기작들이 절로 떠오른다. 그럼에도 <시>는 여전히 새롭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그의 최근작 <버닝>의 영화적 토대인, 삶과 예술에 관한 근본적인 되물음이 이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시>는 오로지 미자에 관한 영화이다. 이 이야기는 예술에 무심했던, 혹은 무지했던 한 인간이 적극적으로 그것을 쟁취하려는 이야기니까. 그러나 여기에 삶의 역설이 끼어든다. 예술을 쟁취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삶 속의 아름다움을 움켜쥐려고 할 때, 미자를 찾아오는 것은 일생에서 전혀 맛본 적이 없었던 쓰디쓴 고통이다. 세상은 그녀에게 등돌리고, 자연은 그 자리에 그저 서 있다. 미자는 시를 배우면서도 늘 물었다. “시를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어요.” 꽃의 미(美)를 예찬하고 자연의 선물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평생을 살아온 그녀는 그렇게 당혹스럽다.
이렇듯 시를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삶이란 평화와 공포를, 행복과 불행을,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동시에 끌어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부드럽고 천연하게 빛나는 강물에 던져진 끔찍한 시체 옆에서 떠오른다. 그 선택은 영화의 주제적 핵심을 관통하는 일종의 암시다. 이창동에게 시란, 예술이란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양식이 아니다. 그것은 시련의 칼날에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세상의 양면적 속성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전진하는 과정이다.
영화의 중후반에서, 미자는 시 낭송회에서 야한 농담을 던지는 형사를 향해 시를 모독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미자는 그때까지도 예술이 그저 고고하고 순수하고 아름답다고 여겼다. 미자가 시를 바라보는 태도는 본인의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와 직결되어 있다. 미자는 늘 본인을 신경 써서 치장한다. 그녀는 단 한 순간도 ‘멋쟁이’라는 칭찬을 흘려듣는 법이 없다. 시 쓰기 강연에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관한 물음을 받았을 때, 미자는 본인이 ‘예쁘다’는 것을 가장 잘 알 수 있었던 언니와의 추억을 택한다. 미자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굳게 지향하는 사람인 것이다(미자의 이름 역시 아름다움을 뜻하는 한자 美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시 낭송회 이후 미자는 손자가 저지른 범죄의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병든 자를 협박하며 그 순결한 아름다움을 포기한다. 생각해 보면 미자가 비난했던 그 형사의 음담은 미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연상하게 했다. 미자가 그토록 공격적인 반응을 보인 원인은 그 형사가 시의 고결함을 훼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자의 감정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자가 회식 도중 그곳을 빠져나와 주저앉아 우는 것은 마침내 생의 끝 무렵에 와서야 삶의 이중성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역시 역설적이게도, 미자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시상(詩想)은 그녀가 비열한 방법으로 얻어낸 500만원을 건네고 나서야 비로소 시로 완성된다. 미자가 고되게 써낸 그 시는 꽃다발과 짝을 이루어 놓여 있었다.
영화는 결국 삶에서의 투쟁, 그리고 예술에서의 분투가 성격적으로 동일함을 이야기한다. 미자는 결국 본인을 아프게 덜어냈다.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화인(예술인) 중 한 명인 이창동은 이 순간 예술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에 종언을 가한다.
미자가 살면서 남긴 유일한 시의 제목이 본인의 삶의 가장 생생한 고통의 순간을 함축하고 있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이 영화의 인물들 중 가장 시를 애타게 갈망했던 미자는 결국 비극과도 같은 시련을 고통스럽게 현시해야 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아네스와 미자는 시를 함께 낭송한다. 이 순간,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꼿꼿이 지향했던 노인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채 알기도 전에 온몸으로 추악함을 버텨내야 했던 어린아이는 기적처럼 만난다.
미자는 과연 강물로 몸을 던졌을까. 영화는 또 하나의 의문을 새기며 끝난다. 그것은 의문임과 동시에 희망을 향한 작은 미련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 비겁하게 무조건적인 희망으로 도주하지 않고 나약하게 절망으로 전락하지 않는 이 걸작은 마지막에 이르러서 삶을 지탱하는 미약한 희망을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