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그들은 속초 신풍리로 향했다.
먼저, 상태가 운전 교대를 했던 지점에 도착했다. 주변은 온통 밭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중앙 분리대가 없는 4차선 도로가 펼쳐져 있었다.
세 사람이 앞서가고, 상아와 수진은 대화를 나누며 뒤따랐다.
“강 변호사님은 어떤 분이세요? 전에 검사였다고 하던데.”
“맞아요. 사시에서 꼴찌로 합격하고 검사가 된 특이한 케이스지요. 본인 말로는 답안지가 밀렸다고 하더라고요. 사시가 수능도 아닌데 웃긴 소리죠. 그럼에도 연수원 시절에 치고 올라가서 검사가 됐으니 대단한 거죠. 또 맡은 사건은 이빨이 몽땅 뽑힐 때까지 놓지 않아서 미친개라고 불렸지요."
“변호사도 현장 검증을 하나요?”
“물론이죠. 부티크 로펌 같은 경우는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추고 있어요.”
“그럼 강 변호사님도 교통사고 전문가인가요?”
“저 인간요? 그냥 닥치는 대로 하는 잡변호사예요. 검사 시절 조사한 경험으로 어깨너머 배운 건 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수진의 폄하에 상아는 빙그레 웃었다.
지상이 멀리 보이는 교통 표지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의뢰인이 저 표지판을 본 것이 분명하니 기억하는 게 아닐까요?"
“그건 아닐 수도 있어요. 우리도 운전하면서 도로 표지판을 수없이 보니까 그중 하나로 착각할 수 있죠.”
“맞아, 그럴 수 있겠네.”
세호의 말에 수진이 동의했다.
상아가 왔던 길을 손으로 가리켰다.
“만취한 사람이 저렇게 경사지고 굽은 길을 지나 여기까지 올 수 있을까요? 연우 오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세어보니 무려 스무 군데가 넘더라고.”
“두 사람 환상의 케미인데? 아주 궁합이 척척이야.”
지상의 놀림에 상아는 얼굴이 빨개졌다.
“일단 사고 현장으로 가죠.”
차는 몇 분 만에 도착했다. 도로 바닥에 사고를 표시한 페인팅 자국이 희미하게 보였고, 움푹 파인 가로수 줄기가 순간의 충격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들은 일대를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상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 변, 의뢰인이 사고를 낸 지점이 이 국도의 끝이야. 과연 0.22%의 알코올 수치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지만 경찰은 그때 의뢰인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고 했잖아.”
“그것도 의문이야. 구급대원이 도착했을 때 의뢰인은 핸들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고 했어. 머리 부상 때문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던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네.”
“뭐, 발견한 게 있어요!”
지상이 외치자 모두 고개를 저었다.
이때 근처를 지나던 몇몇 사람들이 연우에게 다가왔다.
“뭘 그렇게 찾고 있어요?”
“혹시 우리 마을에 운석이라도 떨어졌나? 그거 꽤 비싸다고 하던데.”
“얼마 전에도 검찰 공무원들이 뭔가 찾느라 소란을 피웠지.”
‘그래! 이들의 대화가 재판에 도움이 될 수 있어.’
연우는 재빨리 휴대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찾았나요?”
“찾긴 뭘. 허탕 치고 돌아갔지.”
‘빵! 빵! 빵!’
그때 스포츠카가 멈추더니 경적소리가 울렸다. 두식이 차 자랑을 하려고 클랙슨을 누른 것이다. 그는 창문을 내리고 누군가에게 소리쳤다.
“형님, 저녁에 읍내로 와요. 내가 양주를 시원하게 쏠게요.”
조수석에 앉은 다방 아가씨가 두식에게 애교를 부렸다. 차는 굉음을 내며 사라졌다.
“두식이 녀석, 땡전 한 푼 없던 망나니가 요즘 사방팔방에 돈을 뿌리고 다닌다던데?”
“자기 말로는 로또에 당첨됐다고 하는데, 신용 불량인 놈이 그걸 살 돈이나 있었나?”
“며칠 전에는 술집에서 팁으로 100만 원을 줬다더라.”
“요새 경마장과 노름방에 빠져 정신이 없대.”
“그래서 사람 팔자는 모르는 거야. 두식이한테 잘 보여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얻어먹어야겠어.”
주민들은 수다를 떨며 멀어져 갔다. 연우는 그들의 대화를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냈다.
그 순간 그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바로 저거야!”
연우의 외침에 모두가 그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것은 교통 정보 수집을 위한 CCTV였다.
“CCTV가 사고 지점 앞에 있어서 충돌 장면은 확인할 수 없지만, 운전자가 누구인지 알 수는 있잖아요.”
“맞아요. 저 CCTV를 보면 사고 직전에 누가 운전석에 있었는지 드러나니까요.”
연우의 말에 상아가 호응했다.
“뭘 망설여! 빨리 재판부에 증거 보전 신청을 해야지. 증거 목록에도 추가하고.”
수진의 독촉에 지상이 말했다.
“급발진 좀 하지 마. 우선 우리가 확인하는 게 먼저야. 하 변, 백도진이 재판에 나올까?”
“부상을 핑계로 나오지 않겠지.”
“그렇지. 그때 저 CCTV가 비장의 무기가 될 거야.”
“무슨 소리야?”
영문을 모르는 그녀는 생뚱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그들은 블랙박스를 찾지 못했지만, CCTV 확보에 만족하며 서울로 출발했다.
운전하던 연우가 국도변의 중국집을 힐끗 보았다.
“저 중국집을 보니 선배님이 우리 후배들에게 사줬던 음식이 생각나네요.”
“짠돌이 강 선배가요? 난 지금까지 짜장면 한 그릇도 얻어먹은 적이 없는데.”
“그럴 리가요? 선배님이 동아리 체육 대회에 올 때마다 중국집이 불난 호떡집 같았어요.”
“왜요?”
“선배님이 풀코스로 주문했으니까요. 배달 오토바이 소리로 운동장이 울렸을 정도였죠. 그뿐만이 아니에요.”
“강 선배, 진짜야?”
“2부도 얘기해 봐.”
“뒤풀이 술집에서도 선배님이 쐈어요. 덕분에 우리는 다음 날까지 혼수상태였죠. 선배님은 우리들의 슈퍼히어로, 영원한 봉이었어요.”
그는 어깨를 으쓱하는 지상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차는 국도를 벗어나 도심으로 들어섰다. 어느 대학의 현수막을 본 연우는 체육 대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대학교 운동장에 ‘천문 관측 스타드림 체육 대회. 2008. 6. 2’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농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연우가 패스를 주자 지상이 슛을 날렸고, 골이 들어가자 두 사람은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이때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들이 도착해 철가방에서 연신 음식을 꺼내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연우에게 지상이 수건을 건넸고, 근방에서 친구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 선배님, 서울중앙지검 검사라고 하던데?”
“정의로운 검사로 유명하대.”
“그뿐만 아니라, 영수 알지? 그 친구의 어려운 형편을 알고 등록금도 대신 내줬대."
“우리는 검사이면서 인성까지 좋은 선배님을 두게 되어 정말 행운이야. 이 동아리에 가입하길 잘했어.”
“맞아!”
“그래!”
모두가 지상을 칭찬하느라 바빴다.
이후 축구 경기가 펼쳐졌다. 지상으로부터 패스를 받은 연우가 슛을 하자, 골인되었다. 두 사람은 기쁨에 얼싸안았다.
몇 년이 지나고, 운동장에는 예전과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지상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농구를 하는 연우의 뒤에서 친구들이 속삭였다.
“강지상 선배님, 검사 그만두셨다며?”
“최고 로펌으로 옮겼다가 거기서도 잘렸다고 하더라.”
“진짜 멋진 선배였는데, 아쉽다.”
“그럼, 이제 누가 우리에게 밥과 술을 사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