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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Jul 26. 2024

정의의 배심원

진실을 향하여-2

“상태는 잘 지내요?”

 “변호사님. 오빠에게 필요한 영치물을 넣었다고 전했나요?” 

 “네. 상아 씨, 태양로펌을 알지요?”

 “태양이라면 선배님이 근무했던 로펌이잖아요.”

 “변호사님이 태양에서 근무했다고요?”

 “그래요. 나와는 악연인 곳이죠. 승소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포식 공룡이에요. 그런 로펌이 변호한다면 우리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나 진배없어요.” 

 “그럼 어떡해요…?”

 그녀는 울상이 되었다.

 “상아 씨, 오빠의 말을 믿는다고 했지요?” 

 “물론이죠.”

 “근데 목격자 모두가 오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는 게 미심쩍지 않나요?”

 “저도 그게 좀….”

 “태양이라면 증인은 물론 검찰, 법원까지 손아귀에 넣을 거예요. 식은 죽 먹기로.”

 “선배님, 태양과 도원그룹은 무슨 관계에요?”

 “태양이 도원의 소송을 도맡아서 수임하지. 한마디로 가장 큰 돈줄인 거야. 이 재판에서 진실 공방의 상대가 누구지?” 

 “도원그룹 후계자인 백도진이죠.”

 “맞아. 그 백도진을 변호하는 측이 태양로펌이고. 이제 얼추 견적이 나와?”

 “완전 접수했어요.”

 “상아 씨, 오빠를 전적으로 도울 사람은 당신이에요. 마음 단단히 먹고 하이에나와 싸울 준비를 하세요. 어쩌면 만리장성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어요.”

 “오빠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거예요.” 

 “그럼, 이제부터 진범을 잡는 술래잡기를 해 볼까요?”

 “그 말씀은 도와준다는 거죠?”

 “아니면 찐득이를 왜 또 보겠니?”

 “네? 저는 거머리인데요? 헤헤헤.”

 “찰거머리와 상아 씨. 내일 사무실에서 봐용~” 

 지상은 익살을 부리며 멀어져 갔다. 

 “야호!”

 연우는 펄쩍 뛰며 환호를 질렀다. 반면 상아는 그늘진 얼굴로 벤치에 앉았다. 

 “무정한 아빠와 아픈 엄마에게 못한 투정을 오빠에게 부리곤 했지요. 그때마다 오빠는 불평 없이 다 받아줬어요. 자신보다 저를 먼저 챙겼죠.“

 상아는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대저택 반지하방에 엄마가 몸져누워 있다. 머리맡에는 약봉지가 수북하다. 초등학생인 상태가 밥을 짓고 빨래한다. 아침에 동생의 머리를 빗기고 벽에는 깨끗한 상아의 옷이 걸려 있다.     


 “오빠는 저에게 엄마나 다름없어요. 늘 보살펴 줬던 건 오빠였지요.” 

 그녀는 끊임없이 울었다. 여자의 울음이 긴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뜻이 복잡 미묘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한 가지 사실로 울기 시작하지만, 그것만으로 계속 우는 경우란 거의 없다. 숱한 구실들이 도중에 끼어들어 내리 울게 된다. 그리고 더는 근거를 생각해 낼 수 없을 때야 비로소 울음을 멈춘다. 

 그제야 연우는 중학교 때 상태의 교복이 꼬질꼬질했던 연유를 알았다. 그는 상아의 마음속 생채기를 위로하고 싶었다.

 “우리 바다 보러 갈래?” 

 “그래요.”

 두 사람은 전철을 타고 월미도로 향했다. 연우는 부서지는 파도에 연희가 떠올라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안타까움이 겨울바람에 실려 갈비뼈 사이로 스며들었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보는 상아의 눈에도 슬픔이 그윽했다. 연우는 이 분위기를 바꾸려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내가 재밌는 얘기를 해 줄까?” 

 “좋아요.”

 “맹구가 차를 몰고 가는데 아내가 전화했어. ‘여보! 조심해요. 지금 교통방송을 들었는데 당신이 가는 도로에 차 한 대가 역주행하고 있데요.’ 그러자 맹구가 씨근거리며 말했대. ‘이런 젠장! 한 대가 아니야. 백 대는 넘어!’”

 “풋. 맹구가 역주행했다는 거네요.” 

 “센스 굿! 자, 유머 2탄 나갑니다.”

 “남자와 하룻밤을 잔 후 지방별로 여자의 반응이 어떨까?” 

 “글쎄요.”

 “서울 여자는 ‘자기, 나 어땠어?’ 충청도 여자는 ‘몰러유, 책임져유~’ 경상도 여자는 ‘지는 이제 당신끼라예’. 그럼 전라도 여자의 반응은?” 

 연우의 사투리 흉내는 구수했다. 그녀는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전라도 여자는 ‘앞장서! 느그 집 워디여?’”

 상아는 까르르 웃었다. 

 “하나 더 해 줄까?”

 “또 있어요?” 

 “내 얘기는 투 플러스 원이야. 프랑스 교포 3세가 한국에 와서 어느 회사에 대리로 취직했어. 그가 점심 먹고 왔더니 과장님이 ‘김 대리 입가심으로 계피 사탕 먹을래?’ 했대. 김 대리는 한국 사람이 소의 피로 만든 선짓국을 먹는 줄은 알았지만, 개의 피까지 사탕으로 먹을 줄은 몰랐던 거야. ‘제가 드라큘라도 아니고 싫어요’ 하자, 과장님이 ‘그럼 눈깔사탕은 어때?’라고 했대. 그는 놀라서 ‘그거 누구 거예요?’ 물음에 과장님이 씩 웃으면서 ‘내가 사장 거 빼 왔어.’ 말에 기절했대.”

 그녀는 웃음을 참느라 배를 움켜잡았다.

 “김 대리가 눈을 뜨니 과장님이 기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몸보신해야 한다며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대. 그는 불안해서 ‘무슨 보신이에요?’ 하자, ‘가서 우리 마누라 내장탕 먹자’ 말에 실신했대. 그리고 길가 식당 간판을 보고는 까무러쳤대. 바로 ‘할머니 손칼국수’, ‘할머니 뼈다귀해장국’, ‘할머니 산채비빔밥’이었대.” 

 상아는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참았던 봄날의 목련꽃 봉오리가 산화하는 것 같았다. 

 “상아는 술 마시나?” 

 “저는 상태 오빠와 달라요.”

 쫑긋거리는 입술이 싱그러웠다. 

 그들은 횟집 2층으로 올라갔다. 저 멀리 수평선 위로 여객선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불현듯 그는 상아와 그 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술 두어 잔에 그녀의 볼은 석양의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연우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교통사고에 트라우마가 있어.” 

 “왜요?”

 “여동생이 있었는데 대학생 때 하늘나라로 갔지.” 

 “네? 어쩌다가요?”

 “교통사고로. 지금이면 상아와 같은 나이야.”

 “...그랬군요.”

 “학비를 벌지 않아도 될 형편인데 손수 등록금을 벌겠다며 알바를 했지. 영안실에 안치된 동생의 얼굴은 너무나 평화로웠어. 그 모습에 가슴이 미어지더군.”

 연우는 코를 훌쩍이며 당시를 회상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마친 연희는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건너편에서 친구가 손을 흔들었다. 보행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자, 친구는 연희 쪽으로 다가왔다. 그때 친구를 향해 화물 트럭이 돌진했다. 그녀는 몸을 날려 친구를 밀치고 차에 부딪혔다. 머리가 땅바닥에 떨어지며 뇌출혈을 일으켰다. 

 기사의 졸음운전에 의한 사고였다. 그는 3명의 어린 자녀를 둔 가장으로 생계를 위해 쉬지 않고 운전대를 잡았다. 

 부모님은 순순히 합의해 주었다. 게다가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도 제출했다. 그래서 기사는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났다. 적지 않은 연희의 사망보험금은 모교에 장학금으로 기부됐다.

 “연희는 두 번의 대수술에도 불구하고 뇌사 판정을 받았지. 그런데 책상 서랍에서 장기와 시신 기증서가 발견된 거야.”

 “그래서요?”

 “우리 가족은 고심 끝에 동생의 뜻을 따르기로 했어. 그것이 진정 연희를 기리는 거였지. 각막, 신장, 간장, 췌장, 폐, 심장은 환자 6명에게 무사히 이식됐어. 시신은 대학병원으로 보내졌고 3년 후 인수하여 화장했지.”

 “동생은 천사였네요.”

 상아의 눈이 충혈되었다.

 “근데 연희가 미리 작성한 유언장이 우리를 또 울렸어.” 

 “네?”

 “만일 자신이 엄마 아빠보다 먼저 죽게 되면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 달라는 거야.”

 “왜요?”

 “매장이나 납골하면 자기를 찾을 때마다 슬퍼할 거라고.”

 “그래서 바다를 바라보는 오빠의 눈이 글썽였군요.” 

 “상아에게 들켜버렸나?”

 “제가 한 냄새 맡죠!”

 그녀는 코믹하게 맞장구쳤다.

 “연희는 유독 바다를 좋아했어. 바다는 사람들에게 자유와 편안함을 주지. 언제든 그 마음을 느끼고 가라는 의미인 것 같아. 맹세코 나는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

 “오빠는 분명 그럴 거예요. 지금 상태 오빠 일을 돕는 것만 봐도 알아요.”

 “그, 그건….”

 연우는 죄책감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역시나 10여 년 전과 같이 비굴했다. 하지만 때가 아니라고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그런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자기로 인해 오빠가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걸 안다면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다. 어쩌면 저주를 퍼붓고 자리를 박찰 수도 있다. 아직은 그녀에게 용서받을 만큼의 상태를 위한 성과가 없지 않은가!

 “오빠, 이제부터 저를 친동생으로 대하세요. 저처럼 예쁜 여동생이 어디 있어요? 한마디로 오빠는 복을 넝쿨째 잡은 거죠. 또 저는 공짜로 오라버니가 생겼잖아요. 장사는 이렇게 하는 거예요.” 

 “왠지 내가 밑지는 거래 같은데?”

 “피. 그럼, 위약금 주고 물려요.” 

 “아, 아니야. 콜!”

 “저도 콜!”

 이때 놀이공원에서 즐거운 비명이 들렸다. 오늘 그는 상아와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 추억은 만드는 게 아니고 쌓이는 거라고 하잖아. 그리고 그 추억은 향기를 잃으면 기억이 되지.’ 

 “우리 저거 한번 타 볼까?” 

 “그래요.”

 디스코팡팡이 요동칠 때마다 두 사람은 미끄러지지 않으려 서로의 손을 꽉 잡았다. 기구가 멈추자, 그들은 숨을 고르며 벤치로 갔다. 

 “상아는 무슨 일을 해?” 

 “유치원 교사에요.” 

 “근데 이렇게 시간을 내도 되나?”

 “잘려도 할 수 없죠. 오빠 일이 더 중요하니까요. 글구 걱정 안 해요. 저, 이래 봬도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거든요. 오빠는요?” 

 “나? 취준생. 한 번 미역국 먹고 재도전 중이야.”

 “어느 회사에요?” “도워…. 도시공사.”

 연우는 도원그룹이라 하려다 말을 바꿨다. 

 “준비하려면 바쁠 텐데 고마워요.”

 “아니야. 입사는 따 놓은 당상이고 수석이냐의 문제만 남았지.” 

 “오빠와 저는 뻥쟁이로 통하네요.”

 “그런가? 우리는 더욱 친해질 것 같아.” 

 “왜요?”

 “슬픔을 위로해 줄 사람은 함께 슬퍼하는 사람밖에 없거든.” 

 끄덕이는 상아의 눈동자에 밤하늘 보름달이 담겼다.     

 

 지상은 상태 아버지를 만나 보기로 했다. 경비복 단추를 목까지 채운 모습이 고지식해 보였다. 

 “우리는 변호사 필요 없습니다.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끄세요.” 

 만복은 퉁명스럽게 뱉고는 돌아앉았다.

 “제 판단에는 아드님이 누명을 쓰고 있는 거 같아요.” 

 “뭔 말이요?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받아야지.” 

 “혹시 백성국 회장이 압력을 넣지 않았나요?”

 “뭐, 뭐요? 당신이 뭔데 감히 우리 어르신 존함을 함부로 입에 올립니까?” 

 “그분 자제 백도진과 아드님이 어릴 때부터 친구라면서요?” 

 “도련님은 또 왜요? 도진 도련님은 아무 죄가 없으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쇼. 그리고 상태는 곧 나올 거니 걱정 마슈.”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금방 나와요?” 

 “우리 회장님께서….”

 앗, 그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지금 백 회장 아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데 그게 말이 돼요?”

 “하여간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변호사 양반은 간섭하지 마쇼! 글구 이딴 일로 올 거면 다시 오지 마슈!” 

 쾅, 만복은 경비실 문이 부서지라 닫고 나갔다. 씨알도 안 먹히는 그의 등을 향해 지상이 중얼거렸다. 

 “도련님? 21세기에 도련님이라….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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