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춘림 Sep 04. 2024

대화에 대한 짧은 생각

어쩌다 듣게 된 '남의 대화' 리뷰

복지관에서 누가 온다고 했다. 물론 날 보러 오는 게 아니라 엄마 보러 오는 거라 나는 방문 예정시간인 두시 즈음 집을 나와 커피숍으로 향했다. 집에 누가 오는 건.. 누가 됐든 엄마와 사는 40대 비혼 백수 딸에겐 좀 불편한 일이다.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 집에 손님 오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그런 이유로 말이다.


동네에 애견이 동반되는 커피숍이 있었다면 댕댕이를 데리고 나왔을 텐데, 그런 데가 없어 댕댕이는 두고 책 한 권 달랑 들고 나온 길이었다. (개인적으로 동네에 애견 동반 카페가 없다는 게 많이 아쉽다.)

커피숍에 들어섰을 때 손님들이 제법 있었다. 그래도 나의 독서를 방해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커피를 주문한 뒤 구석 쪽에 자릴 잡고 앉아 책을 펼쳐 들었다. 

내 앞쪽으로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대로 보이는 어르신들 네댓 분이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독서에 방해받진 않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분들의 대화가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할아버지가 맞은편 할머니에게 “마라탕이 뭐요?”라고 묻자 할머니가 “아 그거 과일에다가...”라고 말씀하시길래 순간 ‘마라탕에 과일이 들어가던가?’ 하고 있는데, “과일에다가 설탕물을 입혀가지고 만드는 것이여”라고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할아버진 마라탕에 대해 물었는데, 할머니는 엉뚱하게도 탕후루를 설명하신 듯했다. 묻고 답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외에도 다른 일행 분들이 계셨지만, “그거 아닌 거 같은데..” 하시는 분이 없었고, 잘못된 정보가 오갔는데도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하하, 호호 웃음꽃까지 피는 것이 분위기도 아주 좋았다.


나는 잠시 상상이란 걸 해봤다. 내가 저분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할 때 맞고 틀리고가 아주 중요한 나의 캐릭터를 살려 방금 말씀하신 건 마라탕이 아니라 탕후루라는 거고요, 마라탕은 어쩌고 저쩌고 하며 할머니의 답변을 정정하려 드는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엄마한테 전화가 왔고, 엄마의 “(손님) 가셨다”는 이 한마디에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 때는 전혀 불편할 게 없는 손님(?)인 둘째 언니가 집에 왔다. 나는 언니한테 커피숍에서 들었던 어르신들의 대화를 얘기했고, 내가 그분들의 대화에 끼어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얘기했다.

언니는 아주 쉬운 문제에 답 하듯 술술 말했다.

"그랬다면 (어르신들이) 뻘쭘해하셨겠지.. 그거 중요하지도 않은 건데 왜 저래? 지 볼 일이나 볼 것이지, 하셨을 거고.."


나는 언니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랬겠지?"


언니는 내가 말한 어르신들의 대화 장면이 눈에도 그려지는 듯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랑 다르긴 하다.. 우린 어떻게 해? 물을 것도 없이 바로 검색하잖아. 검색한 거 가지고 이러네 저러네 하잖아. 그리고 젊은 사람은 자기가 아는 거랑 조금이라도 다른 얘기해 봐라, 그냥 넘어가냐? 이건 맞고 그건 틀리네 어쩌네 하며 따지려 들지. 하지만 어르신들한텐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그게 뭣이 중한디’ 같은 여유가 있단 말이지... 그분들이 마라탕에 대해 몰라 그냥 넘어갔다 하더라도 우리처럼 날이 서 있진 않은 것 같다 이 말이야."


나는 또 언니 말에 "맞아, 맞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언니 말에 맞장구치는 건 드문 경우였는데, 아마도 언니가 말한 ‘자기가 생각한 거랑 조금만 틀려도 이러쿵저러쿵 따지려 드는 젊은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 평소 대화 태도에 대한 '자아비판(?)'과 함께 대화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린 정답을 듣기 위해 혹은 말하기 위해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다. 정답이 목적이라면 대화보단 검색이 나을지도 모른다.

대화에 있어 중요한 건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그 시간 자체를 충분히 즐기는 것.

함께함으로써 서로의 눈빛과 웃음을 교환하고.. 서로를 에워싸고 있는 공기와 말하는 동안에도 째깍째깍 흘러가는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나누는 것... 그게 중요하다. 

마라탕이 뭔지 탕후루가 뭔지.. 그게 그리 중요하겠는가.


좀 틀려도, 틀린 것 같아도.. 그냥 웃으며 넘어가도 괜찮은 거... 그런 게 '대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오늘이었다.







이전 16화 재벌집 막내아들 아니고 큰언니 막내아들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