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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림 Sep 03. 2024

재벌집 막내아들 아니고 큰언니 막내아들 이야기

남들 자식 얘기할 때 전 조카 얘기합니다

자식 있는 기혼자들끼리 만나면 주로 자식 얘기를 하는 것 같다. 큰애가 어떻고, 작은애가 어떻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나 같은 중년 비혼자들끼리 만나면 무슨 얘길 할까? 내 경우를 보자면 일 얘기도 하고, 노후 걱정도 하지만, 더러 조카 얘기를 하게 되는 것 같다.

     

몇 년 전 나처럼 비혼인 친구와 서로 경쟁하듯 조카 자랑을 하다가 그게 좀 과열되어 서로 목소리가 커진 상황에서 이를 지켜보던 선배 언니가 “조카 얘기로도 이 정돈데, 니들 자식이라도 있었으면 진짜 장난 아니었겠다”라고 하며 혀를 찼던 게 생각난다. 친구와 난 참으로 '조카 바보'들이었다. 또는 그냥 바보들이었거나.

지금은 조카 얘길 하더라도 조카가 뭘 잘한다거나, (회장이나 반장 같은) 뭐가 됐다거나 하는 말은 하지 않고대신 조카의 좀 엉뚱한 면을 얘기하는 편이다. 엉뚱함으로 치자면 내 조카가 친구 조카를 이길 것 같다고나 할까?

     

큰언니 막내아들 이야기

대략 10년 전 얘기가 될 것 같다. 지금은 대학생이지만 당시엔 초딩이었던 조카가 오답 시험지를 가져왔다. *13화(제목: 결혼하셨죠?라는 질문에 대해)에 언급된 그 조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습니다.’라는 중심 문장을 주고, 그것의 뒷받침 문장을 쓰라는 문제였는데, 오답 처리된 조카의 답을 보니 직업이 모두 있는 건 아닙니다’ 였다. 그땐 집안에 백수가 없었는데, 왜 그런 답을 썼을까? 조카한테 훗날 이 이모가 백수가 될 거라는 선견지명 같은 거라도 있었던 걸까?

컴퓨터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다시 보게 된 조카의 오답 시험지 캡처본은 여전히 엉뚱하고 웃겼다. 그리고 현재 내가 백수 상태라 그런지 오답이 아니라 정답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카는 묵직하게 다가오는 엉뚱함(?)을 보여줄 때도 있었다. 이 또한 큰언니 막내아들 얘기다. 조카는 고딩 때 학교 검사(정확히는 모르지만,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학생 정서 행동 특성 검사’라는 게 아니었나 싶다)에서 우울 지수가 높다는 결과지를 받고 외부 전문기관 상담을 몇 차례 받기도 하였지만, 우울 지수를 낮추는 데 별 효과를 못 본 모양이었다. 그때 조카가 언니에게 개구리를 키워보고 싶다고 했고, 그때 언니는 ‘굳이, 왜, 개구리를? 그걸 꼭 키워야겠어?’라고 하며 싫은 티를 내고 싶었으나 그때 아들의 상태란 것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상태인 것만 같아 허락했단다. 개구리를 키워 보라고. 


조카가 애지중지 키운 애완 개구리 모습입니다 


조카는 고딩 3년 내내 개구리를 키웠고, 상담에서 못 본 효과를 개구리에서 봤는지 우울해하지 않고 학교생활 잘했다. 조카가 학교생활 잘하며 잘 자라는 동안 조카가 키우는 애완 개구리들도 조카가 멀리까지 가서 귀뚜라미를 사다 먹이며 정성을 들인 덕분에 잘도 자랐다. 그런데 개구리는 다 크도록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언니가 조카에게 물었단다.


“개구리 키운 지 3년이 다 돼 가는데, 넌 왜 개구리한테 이름을 안 지어 줘?”


조카가 대답했다.

“이름 지어주면.. 죽을 때 더 슬플까 봐...”


듣고 보니 그랬다. 이름 있는 것들의 죽음은 더 슬프다. 그때는 공교롭게도 김건희 여사가 시장에서 파는 대게를 보곤 ‘큰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대게 세 마리를 찜 쪄간 일로 항간에 “이름 지어주고 삶아 먹냐”는 조롱이 떠돌던 때였다. 그래서였을까? 쓴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조카의 말만 놓고 봤을 때는 좀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함께 있는 동안에도 죽음과 이별을 염두에 두고.. 이름 짓지 않는 것으로 그 슬픔을 예비한다는 건... 아무래도 좀 서글픈 일이다.




현재 큰언니 막내아들은 노래 잘 하는 미대 오빠가 되어 버스킹과 창작활동을 겸하며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개구리들은 대학생활로 본가를 떠나 있는 조카를 대신해 큰언니와 형부가 정성껏 양육하고 있구요. 이번 편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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