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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림 Aug 29. 2024

엄마랑 살아서 안 좋은 점

엄마, 맘 편히 돈 좀 쓸게요

서울에서 혼자 자취라는 걸 할 때, 내 집 앞으로 내가 주문하지도 않은 물건이 두어 번 배송된 적이 있다. 어찌 된 사연인고 하니 엄마랑 살던 친구가(그때는 내가 혼자 살고, 친구가 엄마랑 살 때였다) 옷이나 가방 따위를 사 들고 집에 들어가면 집에 옷이 넘쳐나는데 또 뭘 사 왔냐며 폭풍 잔소리를 해대는 모친 때문에 인터넷쇼핑 후 배송지를 제 집이 아니라 내 집으로 해놓았던 것. 그게 한 번으로 안 끝나자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또 뭐냐?” 하면, 친구는 해맑게 “금방 찾으러 갈 테니까 잘 좀 가지고 있어”라고 말했다.


언젠가 놀러 갔던 그 친구의 방을 떠올리노라면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행거만 생각난다. 잔뜩 걸어놓은 옷의 무게를 감당 못 해 부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는지 아니면 이미 부러진 걸 보수했는지 2단 높이의 가로봉이 아래로 휘어져 있었고 그 휘어진 부분에 누런 박스테이프가 칭칭 감겨 있었다. 그때 “이년아.. 옷 좀 작작 사”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는지 속으로만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쇼핑이 잦긴 잦은 친구여서 ‘넌 엄마한테 잔소리 들어도 싸다, 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같은 생각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것이다. 다소 씀씀이가 헤퍼 보여도 제 돈 제가 쓰는 상황이면 그냥 저 알아서 하게 냅둬야 한다는 게 지금 생각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친구가 아닌 내가, 내 돈 쓰는 일로 내 엄마로부터 잔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본가로 들어와 엄마랑 산 지 벌써 6년째. 그 6년 중 지난 5년간은 일을 했고, 올해 1년은 일없이 놀고 있다. 

돈벌이라는 걸 할 때는 괜찮았는데, 백수 신세로 뭘 좀 시켜 먹자니 엄마 눈치가 보였다. 참고로 나는 ‘아무리 집순이라도 삼시세끼 집밥만 먹을 순 없다’주의로 하루 또는 이틀에 한 번꼴로 배달의 민족을 이용해 왔다.     

엄마는 가만히 계시는데 괜히 나 혼자 눈치를 보는 건 아니었다. 한번은 배달된 음식(마라샹궈였다)을 가지고 주방으로 향하는데 등골이 싸했다. 등골이 싸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냉랭한 목소리가 내 등 뒤에 와 꽂혔다.


“웬만히 시켜 먹어, 너는 배민중독이야!”


나는 배달된 마라샹궈를 두 개의 접시에 엄마 몫과 내 몫으로 나눠 담는 것과 말대꾸를 동시에 소화했다.     


“내가 뭐 맨날 시켜 먹어?”     


“그럼 맨날 시켜 먹지”     


“많이 시켜도 하루 한 번 정도나 시켜 먹는 거잖아”     


“아이고 니가?”     


“그래, 두 번 먹을 때도 있긴 한데, 그건 진짜 가~끔 그런 거잖아”     


말대꾸를 하면서도 내가 엄마 돈으로 시켜 먹는 것도 아니고, 내 돈 주고 먹는 건데 음식이 목구멍에 넘어가기도 전부터 이렇게 잔소리를 들어야 하나 싶었다.

펑펑 쓰고 살다가 거지꼴 못 면할까 싶은 딸의 미래를 걱정해 하신 말씀이라는 걸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난 펑펑 쓰는 게 아니었고, 배달 음식이 됐든 뭐가 됐든 나름의 계획하에 지출이란 걸 하고 있었으니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잔소리를!

나는 엄마 몫의 마라샹궈를 엄마 앞에 가져다드리며 말했다.


“근데 엄마는 허구한 날 술 먹는 오빠한테는 알코올중독이라고 안 하면서 왜 나한테는 배민중독이래?”


이 말은 어이 없어서라도 웃으시라는 뜻에서 말이기도 했고, 엄마의 잔소리를 중단시키기 위한 나만의 전략이기도 했다. 엄마는 딸들 입에서 아들에 대한 안 좋은 소리가 나올 것 같으면 암말 안 하시곤 하셨으니까. 역시나 아무 소리 안 하시고 마라샹궈를 '맛있게' 드시는 엄마였다. 그런데 다 드시고 난 후가 또 문제였다. 울 엄마, 갑자기 과거 점쟁이의 말을 소환하며 나의 기를 죽이는 것이 아닌가.    

 

“(점쟁이가) 사주가 좋다고, 돈이 많다고 나보고 그랬거든.. 아까워서 시집을 어떻게 보낼 라냐고.. 돈이 그렇게 많다고 ‘니가’. 글믄 시집보낼 때 팬티라도 꼼쳐놓고 보내라고 그랬어. 니가 복을 다 가지고 가불믄 내가 못 살고 너만 잘 산다고.. 긍께 속옷이라도 빼놓고 보내믄 그게(복이) 쪼끔이라도 남아 있다 그런 말인갑제? 그란디 지금까지 돈도 없고, 시집도 안가고 이라고 있으니 내가 답답하지”   

  

“엄마, 인생 아직 다 안 끝났어.”     


“아이고 다 됐다 인자...”     


나는 엄마의 체념 투에 화가 났다.

“엄마, 그렇게 말하지 마!”     


하지만 엄마는 계속 같은 투와 톤으로 말했다.

“인자 너는... 돈 많은 사람 만나 시집가는 거밖에 없어.”     


갑자기 내 입에서 실소가 터졌다. 어이없게도 기대를 거둔 듯했던 엄마가 너무나 큰 희망을 품고 있어서. 사실 난 엄마가.. 나 시집가는 것도 포기하신 줄 알았다. 그런데 돈 많은 사람을 만날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계실 줄이야...     


엄마랑 살아서 안 좋은 점은 이런 거 같다.

첫 번째는 잔소리...

두 번째는 내 인생에, 내 계획에는 없는 엄마의 바람이 자꾸 끼어들려 한다는 것..

     

그래도 엄마랑 살아서 안 좋은 점보다는 좋은 점이 훨씬 많다. 

엄마가 보실 수도 있으니 이번 편은 이렇게 훈훈히 마무리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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