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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림 Oct 02. 2024

일상의 평화가 깨질 때가 있다

밤과 새벽 사이에 쓴 두서없는 이야기

며칠 전 브런치에 ‘(학대 의심) 개소리 신고 썰’을 썼었는데

쓰고 나서 좀 후회했다. 결론도 없는 얘길 뭐 하러 썼나 하고..

그런데 나는 또 결론 없는 얘길 쓰고 있다.  


거의 매일 밤 들리곤 했던 자지러지는 듯한 개의 소리가 며칠 뜸하더니

그제 자정을 넘긴 1시 반경 또 들리는 것이었다. 아니, 들렸다기보다는 

내 양쪽 귀를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찔러댔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나는 휴대폰의 녹음 앱을 켜고 그 소리를 녹음했다.

고통에 경기를 일으키는 듯한 개의 소리가 끊길 듯 끊이지 않고 계속됐고

이럴 게 아니라 소리가 끊기기 전에 경찰을 불러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또 112를 누르고야 말았다. 


며칠 전처럼 출동한 경찰이 나에게 전화했다.

개의 소리는 거짓말처럼 또 뚝 끊겨있었다.

“네 선생님 출동 경찰관이에요. 저희가 아파트 한 바퀴 돌고 있는데...”

경찰의 다음 말은 내가 대신했다.

“소리가 안 들리네요.” 

“네네”

“제가 녹음을 해놓긴 했거든요.. 며칠 전에도 신고를 해서 순찰을 돌아주셨고

그 뒤로 며칠 안 들렸는데 오늘 또 들리는 거예요.. 별 방법이 없겠죠?” 

“그죠.. 혹시 관리사무소에 얘기해 보셨어요?”

“아니요.. 아파트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교회 뒤쪽 산 밑에서 들리는 소리 같거든요.”

우리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저녁 6시 이후론 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 받았다 해도 

글쎄... 아파트 밖에서 나는 소릴 두고 관리사무소 소장 또는 직원이 해줄 수 있을까? 

“저희는 소리가 아예 안 들려가지고.. 소리가 난다 해도 찾기가 힘들 것 같아서...

그냥 순찰 도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아요.”

“한두 번 들리고 마는 게 아니라 계속 들려서 신고를 하긴 했는데, 

그렇죠.. 방법이 없겠죠?” 나는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고, 

그러고 나니 경찰이 하지도 않은 말이 들리는 듯했다. 알면서 왜 신고하셨습니까?

경찰은 녹음본을 문자로 보내달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경찰에게 녹음파일을 보낸 뒤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나의 댕댕이를 쓰다듬었다.

새삼 여리디 여리고 약하디 약한 존재처럼 여겨졌다.

하루 중 마음이 가장 약해지는 때가 이맘때(밤과 새벽녘 사이)라던데, 

그래서 그렇게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경찰이 또 연락할까 싶어 잠자리에 들진 않았다.

마음이 뒤숭숭했다. 마치 저 밖에 전쟁터라도 있는 것처럼...

          



어제 둘째 언니를 만난 일이 떠올랐다.

투병 중인 건 형부인데

(현재 둘째 형부는 대장암 4기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이다.) 

덩달아 살이 쏙 빠진 언니였다.

몸고생, 마음고생하느라 살이 빠진 걸 테고

마음고생에는 돈 걱정도 포함돼 있을 터였다.

암보험도 실비도 없는 상태에서 덜컥 암 진단을 받았고.. 

치료는 길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표정은 밝았다. 요즘 마음공분지 정신 수양인지를 한다더니 

그 효과인 것 같았다. 언니는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전화가 왔었다는 얘기도

무슨 재밌는 얘기처럼 밝은 얼굴로 하고 있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국경없는의사회에 후원해 온 지 꽤 됐거든. 

근데 거기서 전화가 온 거야. 왜 전화했나 했더니 어디 또 전쟁이 터져서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며 나보고 만 원 정도 후원금을 증액해 줄 수 있냐고 묻더라.

그래서 니 형부 아픈 얘길 했지. 신랑이 대장암 4기 진단받고 수술하고 

항암 중인 상황이라 후원을 더 할 순 없을 것 같다고... 그랬더니 

‘많이 힘든 상황에서도 후원금 유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바로 끊더라(웃음).”     


좋은 소식은 1도 없고 속 터지는 소리뿐이라

뉴스를 멀리한지 좀 돼서 전쟁 소식과도 멀어져 있던 나였다.

나는 언니 얘기에 전쟁을 생각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언젠가 뉴스에서 본 전쟁 장면들이 전부였는데 그마나도 잠시에 그쳤다.

내 눈앞에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는 둘째 언니가 있었으니까.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남의 상처보다 내 손톱 밑에 가시를 더 아프게 느끼는 모양이었다.

남의 나라 전쟁보다 내 언니, 내 형부 앞에 닥친 시련이 

언니 본인에게도 그렇겠지만 내게도 더 크고 아프게 느껴졌다.



출동한 경찰로부터 더 이상의 전화는 없었다.

믿는 신이 없으니 나는 그냥 허공에 대고 기도했다. 

방법이 없다고 했지만, 방법을 찾아주기를...

우리 동네에 밤만 되면 개를 괴롭히는 미치광이가 사는 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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