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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림 Oct 10. 2024

계절도, ○○○도 배신하지 않는다. 그런데...

배신: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림

내가 왜 강아지를 키우는지 아니?”


내 나이 스무 살 때 배우의 꿈을 품고 극단에 들어간 적이 있다.

대본 연습의 장이기도 했던 극단 (여)대표 집에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는데

한번은 극단 대표가 나에게 “내가 왜 강아지를 키우는지 아니?”하고 묻는 것이었다.

강아지를 왜 키우는지 대해 궁금해한 적 없던 나에게 

대표가 답을 말해주고 싶어하는 것 같아

“왜 키우시는 건데요?” 하고 물었다. 

배우를 꿈꾸는 나였기에 매우 궁금한 척 연기하면서.

그때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애들은 배신을 안 해. 배신은 인간들이나 하는 거지.” 

대표의 말은 ‘웬 배신? 누구한테 세게 뒤통수라도 맞으셨나?’ 하는 

진짜 궁금증을 유발했다. 그리고 당시 내가 알아먹지만 못했을 뿐

배신은 조폭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가르침을 주었던 것도 같다.   

  


그녀가 배신했는지는 모르겠지만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전 직장에서는 나는 A팀장과 공공연하게 사이가 좋지 않았다.

A팀장이 내 말을 자꾸 왜곡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길래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왜 그렇게 전하냐고 카톡을 하니

그 모든 게 다 농담이었다는 듯 ㅋㅋㅋㅋ, ㅎㅎㅎㅎㅎ 식의 답만 돌아와서

그냥 말을 섞지 말자 한 것이 사내 앙숙 관계가 돼버린 것이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B차장도 A팀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이도 직급도 A팀장보다 아래인 데다 일로도 엮여있어서

나처럼 대놓고 싫은 티를 못 낼 뿐 B차장은 A팀장을 

“또라이”라고 까지 하며 싫어했다.

내가 싫어하는 A팀장을 B차장도 싫어한다니 나쁠 건 없었다.

아니, 나쁘긴커녕 솔직히 확실한 내 편인 것만 같아 좋았고, 의지도 됐다. 

꼭 그래서 친했던 건 아니지만 B차장과 나는 

퇴근 후 같이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며 친분을 더 쌓아나갔다.

그러던 중 나는 (지방)본가에 들어가 대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좀 해볼 생각으로

회사에 사직서를 내게 되었다. 퇴사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나를 비롯한 예비 퇴사자들(나 말고도 한둘 더 있었다)의 

송별회 겸 회식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당연히 B차장이 내 옆자리로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옆이 비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옆자리가 아닌 A팀장 옆자리로 가는 것이 아닌가! 

내 앞에 있던 C차장이 B차장에게 굳이 내 옆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냈음에도 

B차장은 A팀장 옆자리를 고수했다.

B차장은 앞으로도 계속 A팀장과 얼굴 보며 회사 생활을 해야 하니

A팀장 앞에서 나와 거리를 두는(A팀장 라인으로 급선회한 듯한) 

나름 영리하고 현명한 처신을 한 것인데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배신‘감’은 단감인 줄 알고 먹었는데 떫은 감일 때 

그냥 뱉어버리면 그만인, 간단한 기분이 아니었다.

뱉고 싶지만 쉬이 뱉어지지 않는, 

두고 두고 곱씹게 되는 그런 기분이라고나 할까...

퇴사 전날 서로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B차장은 회식자리에서의 일을 내게 사과했고 

나는 B차장을 이해했지만, 그건 머리의 일이었다. 

나의 마음은 머리와는 별개로 계속 떨떠름한 상태였다.

 


댕댕이는 배신하지 않는다


우리집 댕댕이 ‘봄이’는 큰언니가 키우던 푸들이다.

자영업에, 아들 둘 양육에, 개 두 마리(큰언니는 서로 사이가 안 좋은 푸들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까지 

감당해야 했던 큰언니의 짐을 덜어주는 차원도 있었고, 

나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던 터라

4년 전 언니가 키우던 두 마리 중 봄이를 데리고 와 지금껏 내가 키우고 있다.

봄이는 데리고 와서도 얼마간은 나보다 큰언니를 더 따랐는데

1년 정도가 지나니 완전 내 껌딱지가 되었다.

큰언니 집에 데리고 가면 행여 저 두고 올까 나만 보고 나만 졸졸 따라다녔고

며칠 전 큰언니가 우리집에 놀러왔다가 현관에 서서

봄이를 향해 양팔 벌려 “봄이야∼ 이리와, 엄마랑 집에 가자!” 하는데

그때도 나만 보며 꼼짝 않는 봄이였다.

언니들이 날 보고 ‘봄이 몸종’이라고 놀릴 만큼 애지중지 키운 봄이였다.

그것의 부작용이라고 한다면

사료 잘 안 먹기로 유명한 가시 몸매 푸들에서

지금은 먹보 푸들이 되어 먹는 걸 말려야할 지경이라는 것 ㅋ 

어쨌든 봄이가 나의 애정을 배신하지 않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과거 극단 대표의 말처럼 나를 배신하지 않아서 댕댕이를 키우는 건 아니지만

배신하지 않는 건 인간이 배워야 할 댕댕이의 미덕인 건 분명한 듯하다.

     

엊그제 둘째언니한테 이번엔 '배신'을 주제로 글을 써볼까 한다고 했을 때

“집에만 있는 애가 무슨 배신?” 하며 의아해했다.

그래, 언니말대로 나는 집에만 있다.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을 엄마, 그리고 개와 함께...

그러니 배신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나도 배신하지 않는 존재가 될 것이다. 

엄마와 봄이뿐만 아니라 집 바깥의 인연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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