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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림 Sep 30. 2024

엄마만 좋다면 그걸로 된 건가? 그래, 그럴지도...

누군가의 동생, 시누이로 사는 일도 피곤하다

엄마가 집에 없다. 

나와 댕댕이만 있는 집안은 적막강산이다.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계시던 엄마의 존재가 크게 느껴진다. 

특히 귀신 꿈꿀까 걱정인 밤에.. 엄마의 존재는 더 커진다. 

그런데 1박 2일 일정으로 오빠집에 가신 엄마가 

오빠집에서 며칠 더 있을 거라고 전화하셨다.

나는 묻는다. “새언니는?” 

엄마가 대답한다. “없어.”

엄마가 오빠집에 며칠 더 있겠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오빠 밥해주게?”

엄마가 대답한다. “응” 

나의 표정은 뾰로통하다. 

오빠 얘기만 나오면 왜 이렇게 못마땅한지... 아무래도 그날의 앙금이 남아서겠지 싶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엄마는 오빠네와 합가해 오빠네와 한집에서 살고 있었다.

집의 형태가 2층짜리 상가주택이었는데, 위층 주택은 오빠네가 썼고 

아래층 가게에 딸린 조그마한 원룸을 엄마가 썼으니 

한집에 살기는 해도 어느 정도 분리돼 생활하고 있었다.

어쨌건(문간방 같은 데에 엄마를 모셨건 어쨌건) 

아빠 돌아가시고 혼자되신 엄마가 혼자 지내지 않고 

아들, 며느리와 살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오빠와 새언니의 잦은 부부싸움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것이 엄마에게 미칠 파장에 대해서도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만큼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야밤에 오빠집에서 쫓겨나 자기네 집으로 왔다는,

엄마가 여기서(언니집에서) 좀 지내도 되겠냐고 말한 뒤 펑펑 우시는데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는 전화였다.

그때 둘째언니의 목소리는 부글부글 끓고 있기도 했고, 

부들부들 떨고 있기도 했는데, 그걸 듣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울 엄마가 며느리한테 쫓겨난 이 사건(?)은

울 엄마를 신식시어머니로 오해한 새언니가 부부싸움 뒤

엄마가 제 편 들 줄 알고 엄마 앞에서 오빠의 잘못을 성토했다가

엄마가 오빠의 역성을 드니 시쳇말로 ‘열폭’해 일어난 일이었다.

(더 세세한 내막은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알고 싶지도 않아 여태까지 그 정도로만 알고 있다.)

아마도 그때 새언니는 오빠랑도 살 마음이 없지 않았나 싶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시어머니를 내쫓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야밤에.

부모와 자식 간이든, 고부간이든

같이 살다가도 서로 맞지 않으면 따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서로에게 모욕을 주지 않고도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새언니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엄마의 지분도 있다는 걸 망각하고 

엄마한테 ‘쫓겨났다’는 모욕감을 줬다. 난 그게 쉽게 용서가 안 됐다.

이 사단을 만든 장본인은 오빠일 텐데, 시누이라 그런지 솔직히 새언니에 대한 미운 마음이 더 컸다.


오빠와 큰조카가 엄마를 찾아와 다시 집에 들어오시라고 했지만

엄마는 둘째언니 집에 머물며 혼자 살 방도를 찾았다.

그때 혼자 살겠다는 엄마의 뜻은 완강했다.

새언니는 엄마를 찾아오지도 사과하지도 않다가

1∼2년의 시간이 흐르자 별 계기랄 것 없이

오빠를 따라 다시 (혼자 살게 된) 엄마를 보러 왔고, 가족 대소사에도 오빠와 함께 얼굴을 내밀었다.

그렇게 새언니는 시집식구들과 다시 왕래하기 시작했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예전처럼 웃고 떠들었다.

   

새언니한테도 다시 잘해보려는 노력 같은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본 적은 없지만, 부디 있었길 바란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들 생각해서라도 며느리와 척지고 살고 싶지는 않았을 테고.

엄마와 새언니 사이에 화해 아닌 화해는 그렇게 이루어진 듯 했다.

그래도 엄마는 새언니의 사과를 받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빠집에서 며칠 더 묵을 거라는 엄마의 전화에서 보았듯

엄마와 오빠네는 여전히 서로 왕래하며 잘 지낸다.

그런데 나는 왜 불만인 것일까.. 그날의 앙금 때문이기도 했지만 

최근의 상황 때문이기도 했다.


오빠 부부는 현재 본가를 따로 두고 관광지 인근 시골에 펜션 4개 동을 짓고 있다.

엄마가 가 계신 오빠집은 그 펜션을 말하는 것이었다.

시금치 좀 심고 오겠다고 가셨지만

나는 밥 해주러 가신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도 어딜 며칠 가야 하는 자기를 대신해

오빠랑 공사 인부들(서너 명 정도) 밥 좀 해달라는 새언니의 전화를 받고 다녀오셨으니까.     

“엄마집 지어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 집 지으면서 

왜 엄마한테 밥을 해 달래? 엄마 발목도 안 좋은데 진짜 왜들 그래?”

그땐 정말 오빠 부부에겐 절뚝거리는 엄마가 안 보이나 싶어 투덜댔는데

엄마는 그 뒤로도 몇 번 더 밥 해주러 다녀오셨다.

나는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지지난 제사 때 오빠한테 한소리했다.

엉덩이 한 번을 안 뜨고 엄마한테 이거 달라 저거 달라하는 통에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오빠 너가 좀 갖다 먹어. 엄마 시키지 말고. 그리고 엄마 발목도 안 좋은데, 

무슨 밥을 해달라고 시골로 자꾸 불러?”

오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집에만 계시면 뭐 하냐. TV만 보시고.. 

와서 바람도 쐬고 아들 밥도 해주고 그게 더 낫지”

“엄마 심심할까 봐 와서 밥 해달라는 거야? 남들은 그럴 때 해외여행 보내드린다는데?”     

 

내 말의 약발도 없이 엄마가 또 본가에 간 새언니를 대신해 

밥 해주러 며칠 더 있겠다 하니 나도 모르게 뚱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하지만 같은 시누이라도 큰언니의 반응은 나와는 사뭇 달랐다.

“야, 아들 밥 해주고 있으면 엄마도 좋지.. 

나도 내 아들한테 가서 밥 해주고 싶다.(언니의 아들들은 

한 명은 군대에, 한 명은 대학에 가느라 둘 다 집을 떠나 있다. 언니는 빈둥지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다.)”     


딸이 차려준 밥을 먹는 엄마(나도 내가 차린 밥이 더 맛있고, 엄마도 그렇다 하여

우리집에선 주로 내가 식사를 준비한다)와 아들의 밥을 차려주는 엄마, 둘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울 언니 말대로 울 엄마는 후자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오빠 부부한테 무한 애정을 쏟고 헌신하는 엄마를 보는 것이 편치만은 않았다.

엄마는 내 엄마인데, 오빠는 내 아들이 아니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최근 나의 숙제는 엄마와 오빠 부부를 이해하는 일이 돼버린 것 같다.

'새언니보단 엄마의 음식솜씨가 좋으니까 그럴 수 있어..

완공 단계라 같이 일하는 일꾼도 한두 명으로 줄었다잖아, 밥 해주는 게 많이 힘든 일은 아닐 거야.. 

어쩌면 큰언니말대로 즐겁기도 일일 수 있고...

돈에 쪼들리면서 짓고 있다던데.. 그런 아들을 돕는 게 엄마한텐 기쁨이자 보람일 수 있어.

경치 좋은 곳에 예쁜 펜션을 짓고 있는 아들을 보는 게

집에서 티브이만 보고 있는 것보다야 백배 낫겠지. 암 그렇겠지...'

 

10년 전 그날의 일에 대해서도

엄마와 오빠 부부 사이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맥락들이 존재하고

그 속엔 내가 이해할만한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이해를 시도했지만

그일 만큼은 쉽지가 않다.

엄마가 괜찮다면 괜찮은 걸로 알면 될 것을

불필요하게 생각이 많아진 걸 보니 백수생활 청산하고 일을 해야 할 때가 오긴 온 것 같다.

일이란(또는 직장이란) 나에게

가족 문제로 골몰할만한 (심적,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을 테니까.


어서 일을 찾아야겠다.

나의 에너지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멀디 먼 바깥을 향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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