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넋두리에 이어 이번엔 명절 넋두리입니다
나에게 있어 가장 행복했던 명절을 꼽으라면 엄마가 코로나에 걸려 차례 준비도 하지 않고, 집에 아무도 오지 않았던 2022년 추석이 되겠다. 엄마가 코로나에 걸렸는데 행복했다고? 하며 내게 돌을 던질 사람은 던져라! 돌 맞아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도 그때가 행복했노라고 나는 당당히 말할 것이다.
그때 나는 어수선한 공기와 먹기도 전부터 질리게 하는 음식 냄새와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지는 형제·자매·또 그들의 배우자와 자식들의 방문에서 해방된 채 55부작 중드를 단숨에 해치웠더랬다.(그때는 한창 중국 드라마에 빠져있을 때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아무 스트레스가 없었고, 그 無 스트레스 덕분에 면역력이 올라갔는지 격리랄 거 없이 코로나 걸린 엄마와 한 집에서 자유롭게 있었음에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멀쩡했다.
지난 추석은 나에게 있어 엄마와는 달리 더할 나위 없이 건강했던 추석이었고, 무엇보다 명절 음식 준비로 중노동을 하는 엄마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행복했던 추석이었다. 하지만 그건 다 추억의 옛 장이 되어버리고 2024년 나는 여느 추석과 다름없는 암울한 추석을 맞이했다.
주방에서 찌고 삶고 데치는 열기가 불쾌지수를 확 높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더운 추석이 아니던가. 방에 에어컨을 틀어놓긴 했지만, 바깥 열기 못지않게 내 안에서도 부글부글 무언가가 끓고 있었기에 더위도, 불쾌지수도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엄마는 명절이나 제사 때만 되면 저 혼자 끓고 있는 막내딸을 이미 여러 해 보아왔던 터라 일거리가 많아도 뭘 도와달라고 안 하셨다. 내가 그냥 알아서 거들 뿐. 엄마와 동선이 겹치지 않는 선에서 청소나 설거지 같은 걸 말이다. 그런데 그것도 하지 말아야 했나 싶었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다가 언뜻언뜻 보게 된 장면에 한숨 연발이었으니까.
울 엄마 얼굴에 피곤과 비지땀이 맺혀있구나. 저러다 몸살 나실라..
병나시면 그 병시중 누가 드나? 내가 들지.. 후유∼(*후유: 시름이 있을 때 크고 길게 내쉬는 소리)
날 더운데 주방에 가스 불이 꺼질 줄을 모르는구나.
깜빡깜빡 잘하시는 울 엄만데 저러다 불이라도 나면 어쩌나, 후유∼∼
울 엄마 또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가시는구나.
벌써 세 번짼데 차례 지낸 후에는 또 얼마나 나올까.. 후유∼∼∼
관절 상하는 줄 모르고 억척을 부리시더니 울 엄마 결국 다리를 저시는구나.. 후유∼∼∼
이 꼴을 '제사는 꼬옥 지내야 한다'는 장남은 못 보고 나만 보는구나, 나만 봐.. 후유∼∼∼
이번에도 오빠와 새언니는 작은아들, 큰아들, 며느리까지 대동하고 손님처럼 왔다가
엄마가 다 차려놓은 상에서 명절 기분만 내다 가겠구나... 후유∼∼∼∼∼
소리 내 한숨 쉰 것 같진 않은데, 엄마가 아픈 사람 보듯 날 보며 묻는다.
“너 얼굴이 왜 그래?”
나는 솔직히 말한다.
“엄마... 명절만 되면.. 숨이 잘.. 안 쉬어져...”
엄마도 나의 말을 엄살로 듣진 않았는지 “내년 설부터는 오빠집에서 차례 지낼 텐께..”라는 말로 나의 숨구멍을 열어주려 하신다. 나는 차마 입밖으로 못 내고 맘속으로 외친다. 그냥 안 지내면 안될까?!!
저녁상 앞에 온 가족(오빠네, 큰언니네, 둘째언니네) 모여 있는 거실로 나가지 않고, 나는 그냥 내 방에 있었다. 거실 에어컨이 고장 나 내 방 에어컨을 켜고 그 바람이 거실까지 가도록 방문은 열어두었기에 거실에서 나누는 얘기 소리가 들렸다. 특히 엄마가 오빠한테 내년 설부터는 오빠집에서 차례를 지내자고 말하는 소리가. 오빠는 그러자고 하는데, 새언니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거실에 있다가 내 방으로 온 둘째언니에게 새언니의 반응을 물으니 “별말 없이 시큰둥?”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내가 ‘제사 가져가서 정 뭐하면 안 지내도 되고, 지내도 되고..’ 했더니, 오빠가 자기 맘이 불편해서 제사 지내야 한다고 하던데”라고 한다.
“새언니.. 계속 아무 말 안 해?”
“새언니는 제사 얘기 나오면 암말 안 하잖아. 화투 칠 땐 말이 얼마나 많냐.(가족끼리 화투칠 때 보면 새언니한테서 은근 타짜 냄새가 났다) 근데 제사 얘기만 나오면 암말 안 하지. 저번 아빠 제사 때도 암말 안 했고.”
‘저번 아빠 제사 때’란 내가 제사를 못 참고 가출했던 때로(‘6화: 엄마랑 사는 딸의 제사 넋두리’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나 없는 집에서 장남인 오빠가 제사를 가져가는 쪽으로 얘기가 오갔던 때를 말한다.
둘째언니가 농이랍시고 “암말 안 하고 있다가 자기 집 가서 오빠 조정하겠지”라고 하며 웃길래, 나는 “조정이 아니라 조지겠지”라고 하며 웃었다. 그 웃음에는 분명 새언니에 대한 나의 마뜩잖은 감정이 섞여 있었다.
새언니는 지지난 제사 때 제 손으로 제사음식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종갓집 시어머니마냥 자기 며느리한테 제사를 가르쳐야겠다고 했다. 어디서? 자기집이 아니라 우리집에서. 난 그때 “언니, 우리집에서 며느리 교육을 시킨다고요? 언니도 제사를 모르면서 그 교육은 누가해요? 울 엄마가요? 여기가 무슨 제사 체험 현장이에요? 가르치려거든 언니 며느리니까 언니 집에서 가르치세요.”라는 말을 꾹 참고 있었다.
내가 본 새언니는 늘 그런 식이다. 자기도 못하는 걸 자기 며느리한테 가르치려 한다. 그게 뜻대로 안 될 땐 엄마나 큰언니한테 자기 며느리 뒷담화를 한다. 뭐 해온 것도 없이 시집을 왔네, 자기 아들한테 잘 못하네, 집을 잘 안 치우네, 전화를 안 하네, 전화를 안 받네 등등… 시댁 식구한테 자기 며느리 흉을 보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그러면 엄마도 “너는 나한테 전화하냐?”라는 말을 꿀꺽 삼키셔야 했다. 울 엄마는 평화주의자니까.
첩이 첩 꼴 못 본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며느리가 며느리 꼴 못 본다는 말은 못 들어본 것 같은데, 어쨌든 새언니는 며느리로서의 자아보다 시어머니로서의 자아가 쓸데없이 비대한 게 분명하다.
내 방에서 계속 둘째언니와 수다를 떨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오셨다. 그런데 말짱한 걸음으로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나는 그게 기쁘기보다 좀 어이없었다.
“엄마. 아까까지만 해도 절뚝거렸잖아. 근데 또 왜 지금은 잘 걸어? 왜 언니오빠들 있는 데선 말짱하냐고.”
내 말에 대답한 건 엄마가 아니라 둘째언니였다.
“야, 아들 보니까 좋아서 싹~ 나은 거지. 아들 보는 게 얼마나 좋은데, 그지 엄마?”
잠시 후, 엄마가 나가고 큰형부가 들어왔다. 덥다며 들어와 우리집에 새 에어컨(거실용)을 선물해 주겠다는 큰형부에게 농반진반으로 “당분간은 그냥 두세요. 좀 덥고 불편해야 여기서 제사 안 지내지”라고 했더니 마침 떠오른 생각인 양 “그래, 제사는 아들이 지내는 거잖아”라고 하며 거실로 나가서는 오빠 부부를 향해 “내년부터는 형님집에서 제사지내게요, 집도 넓고 시원하니까”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아까 엄마가 다 한 얘긴데 왜 또 해? 꼭 내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하며 황당해했다가 지난번 아빠 제사 때 큰언니가 했다는 얘기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언니의 전언에 따르면 그때 큰언니가 새언니의 눈치를 보며 “내가 그냥 우리집에서 울 아빠 제사 지낼까?”라고 했고, 그 말에 (제사 없는 집안에서 자란) 큰형부가 큰언니한테 “그럼 우리 아빠 제사도 지내”라고 한 모양이었다. 큰형부 입장에서는 큰언니가 덜컥 울 아빠 제사를 지낼까 겁(?)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자기 아버지 제사도 안 지내는 마당에 무슨 장인 제사를 지낸단 말인가.
제사와 차례... 어째 서로 맡지 않으려는 폭탄 돌리기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 폭탄이 어디에 있든 일하는 사람은 엄마겠지만. 장담컨대 엄마는 제사를 오빠집에서 지내더라도 제사음식을 며느리 손에 맡겨놓지 않을 것이다. 본인이 직접 다하실 것이다. 그래도 새언니한테는 부담이고 싫은 일이겠지만 어쩌겠는가. 제사를 고집하는 건.. 새언니 당신의 남편인 것을.
요즘 나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요즘 창작중인 스토리의 장르가 ‘사극’이라 역사책을 좀 들여다보다가 이참에 자격증을 하나 따둬도 좋겠다 싶어 준비하고 있는데, 그 준비란 별 게 아니고 유튜브로 한능검 강의를 듣는 것이다. 나는 이번 편을 고려 관영상점 중 하나인 다점(차 마시는 곳)에 대한 설명에서 나온 최태성 강사의 다음 얘기로 마무리하고 싶다.
“여러분, 우리는 기본적으로 차를 굉장히 많이 마시는 나라였습니다. 근데 돌아가신 조상들에게도 차를 바쳐요. 그게 뭔지 아세요? 그게 바로 추석이나 설 때 하는 ‘차례’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차례는 ‘차를 올리는 예’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차례 하면 한 상 거하게 차려야 되는 걸로 알잖아요. 그건 오해예요. 그건 조선 후기의 잘못된 관행이지, 우리에게 차례는 옛날부터 가볍게 좋은 차를 올리면서 서로 간 교류하고 나누는 거였습니다. 특히 여자분들 동원해서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 만들고.. 먹지도 않고... 그런 거 있잖아요, 그거 차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