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밤에 112를 누르다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9월 18일) 밤이었다.
나는 좀 뒤숭숭했다.
자고 일어나면 출근이란 걸 해야 하는 부담도 없는데
(아시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저 백수입니다)
뒤숭숭한 까닭은 ‘개소리’ 때문이다.
보름 가까이 거의 매일 밤 깨갱 깽깽하다가 울부짖는 개소리가 꽤 길게 들렸다.
개 키우는 내가 나의 개한테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
매질이나 괴롭힘을 당할 때나 날법한 괴로운 개의 소리였다.
정확히 어디서 나는 소리인 줄만 알아도 경찰에 신고할 텐데
(내 방 내 책상을 기준으로) 왼편에서 나는 소리란 것밖에는
정보가 없어 신고를 못 했다.
추석 연휴가 끝나가던 18일 밤도
개의 울부짖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렸다.
추정대로 개를 패거나 괴롭히는 자의 소행이라면
그는 연휴도 없이 부지런한 악마이리라.
나는 반드시 해야 할 무언가를 방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그 느낌은 내 검지손가락이 기어이 112를 누르게 만들었다.
그사이 개소리는 끊겨있었고, 창밖은 어둠과 귀뚜라미 소리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하나의 소리는 휴대폰에서 들리는 경찰의 목소리.
- 긴급신고 112입니다.
나는 휴대폰에 대고 개를 학대하는 듯한 소리가 거의 매일 밤 들리는데
거기가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다고, 그러면 신고가 안 되는 거냐고 물었다.
경찰은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경찰이 출동해서도 식별이 가능한 소리인지,
전화를 건 내가 어디 사는지 등을 물었다.
다시 말하지만 소리의 출처는 나도 몰랐다. 내 왼편에서 나는 소리란 거 밖에는.
왼편은 내가 사는 아파트 정문 쪽이었고, 정문 맞은편(그러니까 단지 밖)으로는
교회가 있었고 또 그 뒤로는 산과 접한 집과 밭들이 있었고
작은 절도 있는 모양이었다. 가보질 않았으니 그 정도만 알지,
개소리의 출처로 짐작되는 정문 맞은편은 나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참고로 내가 사는 곳은 국립공원 인근으로 산과 들 시냇물을 접한 자연 친화적 동네다)
또다시 경찰이 질문했다.
- 그러니까 소리가 산에서 나는 거예요? 주택에서 나는 게 아니고?
- 산 쪽이긴 한데 거기 집들도 있고 해서 산에서 나는 건지 주택에서 나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 지금도 소리가 나고 있어요?
- 지금은 안 나는데.. 좀 전까지는 났었어요.
대답 끝에 (좀 전까지 내 귀를 괴롭혔던) 개소리를 녹음해 두는 거였는데, 하고 후회했다.
- 저희가 출동해서 확인해 볼게요. 출동 경찰이 신고자 분한테 전화드릴 수 있거든요. 받아주세요.
전화를 끊고 나서 엄마 방으로 갔다.
개의 절규를 나만 들은 것 같진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티브이를 켠 채로 잠이든 엄마를 깨워 물었다.
“엄마, 엄마도 아까 개 울음소리 들었지?”
“..두어 번 들었어.. 깨갱.. 깨갱 깽깽...”
귀 어두운 엄마도 들었다면 분명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었다.
“엄마, 개를 팰 때나 그런 소리 나지?”
“그러제.. 확 때리면 깨갱 깽... 산 밑에.. 그쪽에서 나는 소리 같던디...”
문자음이 울려 보았더니 신고접수 됐다는 문자가 와 있었고,
10여 분 뒤엔 출동한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다.
- 안녕하세요. 경찰관입니다. 지금도 개 우는 소리가 들리나요?
- 지금은 안 들려요.
- 그럼 신고하신 것처럼 아파트 정문 쪽으로 순찰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 정문에서 좀 더 떨어진 곳이 아닐까 싶은데요.
- 아파트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그 맞은편에서 나는 소리예요?
- 그럴 것 같아요. 아파트에서는 그럴 수가(개 비명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개를 학대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 우리 신고자분은 몇 층 사세요?
- 6층이요.
- 6층까지 들려요?
- 네
- 아래층이나 위층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맞은편에서 들리는 소리가 6층까지 들린다?
- 네
- 일단 저희가 순찰 한번 돌아볼게요.
- 네, 감사합니다.
경찰이 출동해 준 건 진정 감사한 일이었으나
경찰이 어떤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밤이었고, 개소리는 진즉 끊겨있었으니까. 그렇다고 가가호호 방문해
여기서 개를 팼나요? 잡았나요?라고 물을 순 없을 테니까.
뒤숭숭하고 심란했다...
확실한 것도 없고 해결된 것도 없고
더 해볼 수 있는 뭔가도 없었다.
내일 밤에도 개의 절규가 들린다면 어떡하지?
소리를 따라 나가볼까?
나는 이 고민을 둘째 언니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소리 따라갔다가) 니가 두들겨 맞는 거 아니냐며
심드렁하게 말하는 언니였다.
나는 또 그 괴로운 개소리가 들릴까 두려웠다.
두려운 건 내가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귀를 쫑긋 세울 거라고..
녹음을 해둘 거라고...
용기가 생긴다면 나가 보기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경찰이 물었을 때 좀 더 많은 정보를 주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걸 경찰이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