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갑질? 비뚤어진 시민의식? 아무튼 그중 하나인 이야기
백수인 나는 가끔 이렇게 정신 승리를 한다. 직장에 계속 다녔다면 직장 상사나 클라이언트의 갑질을 받아주느라 너덜너덜해져 버는 돈보다 병원비로 쓰는 돈이 더 많았을 거라고, 그러니 지금처럼 안 벌고 안 아픈 게 인생의 마이너스만은 아닐 거라고. 실제로 직장을 관두고 위염이 사라졌고, 심지어 허리디스크 증상도 완화됐다.
나는 진심 우리 사회의 '갑질'을 만병의 근원으로 생각한다. 특히나 나와 같은 유리멘탈에게 갑질은 쥐약이다. 그런데 엄마(75세)의 공공근로 짝꿍 할머니(77세)가 나와 같은 유리멘탈인듯 했고, 최근 민원인지 갑질인지를 당하시곤 멘탈에 쩌억 쩍― 금이 가신 듯했다. 게다가 그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기까지 하신단다. 월 급여 30만 원이 채 안 되는 일에도 갑질이 끼어들 틈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무슨 얘기냐고? 지금부터 그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울 엄마는 정부의 공공형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공공근로자로 매주 3회,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하루 세 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청소 일을 하신다. 작년까지만 해도 집에서 10여분 떨어진 단지 밖 공원에서 공공근로란 걸 하셨는데, 올해 들어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로 일터가 바뀌었다. 나는 공공근로 장소를 집 가까운 데로 배정받아 좋겠다고 했고, 정말로 더 좋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건 속 모르는 소리였다. 엄마는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같은 아파트 사는 안면 있는 주민들이다 보니 건건이 인사를 나눠야 하는 것도 불편하고, 일하고 있는데 운동한답시고 뭇 남성들이 주변을 돌고 있는 것도 불편하고, 놀이터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동 몇몇 주민이 무슨 참견 거리라도 찾듯 베란다에 미어캣처럼 서서 공공근로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도 불편하다고 했다. 나는 엄마한테 “그깟 거 얼마나 준다고 불편하면 하지 마”라고 말했다. 백수가 던진 맘에 없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러저러한 불편을 감수할 만큼 엄마가 받는 돈이 크지 않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 또한 뭘 모르는 소리였다. 노인 일자리 사업의 취지가 집에만 있다가 고독해지기 쉬운 어르신들의 사회 참여를 끌어내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영위하게끔 하는 데 있지,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공공근로를) 안 하긴 왜 안 해?”라고 정색하며 내년 신청서에는 작년에 일했던 공원으로 다시 배정해달라고 써야겠다는 말만 하셨다.
엄마는 말로는 불편하다고 하셨지만, 별 불편한 내색 없이 공공근로에 임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은 엄마의 낯빛마저 불편해 있었다. 이유를 여쭈니 같은 아파트 사는 한 아주머니가 엄마의 공공근로 파트너인 짝꿍 할머니에게 누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놀이터 공공근로와 관련해 민원을 넣었다는 말을 전한 모양인데, 알고 보니 민원 넣었다는 ‘누가’가 짝꿍 할머니에게 말을 전한 바로 그 아주머니였던 것. 그래서 그 아주머니와 짝꿍 할머니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고, 그 뒤로 짝꿍 할머니가 앓고 있다는 거였다.
“잇몸이 솟아부렀어.(잇몸이 들떴다는 엄마 식 표현 같음) 또 어지럽다고 병원서 주사 맞고 왔는디도 안 좋아진다고.. 그 뒤로 그래, 그 여자랑 옥신각신한 뒤로 계속 아퍼..”
나는 도대체 뭘로 민원을 넣었다는 건지 궁금했다.
“민원을 뭐라고 넣었는데?”
“일하다 잠깐 앉아 쉬는 꼴을 못 보고 민원을 넣었는갑제. 일도 없는디 노인네들 일 시킴써 세금 축낸다고 그라고 전화를 한 사람들이 있어.”
엄마는 말하고 보니 화가 난 듯 “아니 세금은 지들만 내? 우리도 내고, 우리 자식들도 내제”라며 구시렁대셨다. 순간 나는 진짜 세금 도둑은 따로 두고 을들끼리 다투는 형국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좀 앉아 쉬었다고 민원을 넣어?”라고 묻노라니 예전에 보았던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근무시간보다 이르게 나와 잠깐 앉아 있던 (교통 정리 담당 공공근로) 노인을 본 행인이 사진을 찍어 지자체에 민원을 제기했는데, 그런 사실관계가 틀린 갑질성 민원 때문에 결국 노인 공공근로자 여러 명이 근무지를 옮기게 됐다는 기사였다. 기사를 보던 당시엔 몰랐다. 기사 속 노인이 내 엄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사장이 없는 일엔 모두가 사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엄마는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이어 나갔다. “인자 보믄 듬성듬성 풀들이 있어. 청소하다가 걸리적거리믄 뽑기도 한디 자잘한 건 냅둬버렸어. 풀 뽑는 것이 우리 일은 아니거든. 긍께 우리가 앉았으믄 그라고 앉아 있느니 풀이라도 뽑지 하고.. 대놓고 말하진 않는디 그런 식으로 민원을 넣는다고.. 시니어클럽(노인 일자리 지원기관)에서도 시간 잘 지키라고만 하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일 많이 해라 그런 소리는 안 해. 풀 뽑으란 소리도 안 하고.. 먼젓번 했던 사람들도 풀 뽑지 말라 했거든, 그거 한 번씩 하면은 원래 해야 되는 일이 되가지고 하네 마네 하니 아예 손을 대지 말라고... 근디 민원 넣는 그 모난 것들 때문에 저 위에 ◯◯아파트 공공근로도 없어져 불고, 요 밑에 아파트 공공근로도 없어져 부렀어... 단지 안에는 일거리가 별로 없기는 없어. 그란디 인자 노인네들 일자리 만들어 줄라고 그런 거제. 그래도 또 안 하면 안 되잖아. 놀이터나 공원 이런 데 봄가을로 (벚꽃, 낙엽 등등) 엄청 떨어져...”
엄마는 곧 올 낙엽 떨어지는 완연한 가을에도 짝꿍 할머니와 같이 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했다. 그만큼 짝꿍 할머니의 상태가 안 좋은 모양이었다.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한다면, 갑질은 춤추던 고래도 쓰러뜨리는 게 분명했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는 노인 고독사 문제, 노인 빈곤 문제 등을 감소시키기 위해 주로 70대 이상의 저소득층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복지’ 차원의 사업이라고 알고 있다. 그 점에서 나는 어르신들이 ‘사부작사부작’해도 괜찮은 일이 공공근로라고 생각한다. 40대인 나도 골골한데, 7, 80대 노인들에게 쉼 없이 빡세게 일하라는 건 너무 야박한 일 아닌가. 부디 그런 엄격한 잣대는 월 급여 29만 원의 공공근로자가 아니라 국민 세금으로 수백, 수천만 원의 월급을 따박따박 받으면서도 할 일 하지 않거나 혹은 엉뚱한 짓하는 저기 저 위에 있는 분들께 들이대시길! 공공근로자 딸로서만이 아니라 공공근로자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깨끗해진 거리와 공원을 이용하는 평범한 시민으로서, 또 언젠가는 노인이 될 예비 노인으로서 얘기해 본다.
#공공근로
#노인복지
#갑질
* 연재 요일을 화, 목에서 월, 목으로 변경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