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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림 Oct 14. 2024

나에게 가을은.. 울 엄마 뜨개질하는 계절

시간을 뜨는 우리 엄마

며칠 전 엄마랑 거실 커튼 갈이를 했다.

여름용 커튼을 내리고 도톰한 겨울용 커튼을 걸고 나니(울 집에 봄가을용 커튼은 따로 없다)

이르게 월동 준비까지 끝내버린 기분이었다.

그래도 겨울은 더디 오고, 가을은 좀 오래 가길 바랐다. 

난 가을이 좋다!     


나에게 가을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알록달록 단풍과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계절이었다.

그러다 최근 '엄마가 뜨개질하는 계절'이 되었다.

엄마는 재작년부터 이맘때만 되면 뜨개질을 하신다.

그러니까 올해 또 보게 되는 엄마의 뜨개질 모습은 3년째 보는 가을 풍경이다.  

   

뜨개질할 때의 엄마는 아무 번뇌가 없어 보인다.

명상도 모르고, 뜨개질도 잘 모르는 '나'이지만

세상사 번뇌는 낙엽 떨구듯 다 떨어뜨리고

(실제로 엄마는 뜨개질할 때 아무 생각이 없다고 하셨다)

손끝에만 집중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나는 명상하는 인간을 보곤 한다.

보고 있는 나조차도 편안케 하는 그 모습이 좋아 

올가을엔 내가 먼저 슬슬 뜨개질할 때 되지 않았냐며 뜨개질의 운을 뗐다.

그리고 미리 알아봐 둔 실백화점에 엄마를 모시고 가기도 했다. 

    

엄마는 실백화점에서 사위들 조끼를 하나씩 떠주고 싶다며

조끼 뜨기에 적당한 실을 골랐는데, 실값이 생각보다 비쌌다.

조끼 하나 뜨는 데 보통 10~13개 정도의 실이 들어간다 하니

조끼 두 벌을 떠야 하는 엄마는 총 26개의 실을 사야 했는데

실값이 개당 6,000원으로 총 156,000원이 나왔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 싸게 샀다. 

실백화점 사장님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 사는 곳을 말했더니

자기 장모님이 우리 동네 ○○아파트(우리가 사는 아파트와 같았다) 산다며

자기 장모와 한동네 사는 인연으로 몇 천 원 빼주셨다.

속으로 왠지 아내를 많이 사랑하는 사장님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는 거실 소파에 앉아 뜨개질에 돌입하셨다.

식사할 때와 화장실 갈 때 말고는 손에서 코바늘과 실을 놓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뜨셨건만 며칠째 완성을 못 하고 계셨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아직 다 안 떴어?"

엄마는 뜨다 만 미완의 조끼를 보며 말했다.  

"떠 놓은 거 다 풀어부렀어.. 떴다 풀었다 떴다 풀었다 한께 지금 여러 날 걸리고 있제."

"오랜만에 해서 잘 안돼?"

"응.. 코 수도 모르고 대충 하다 본께 자꾸 틀어져서 풀어불고..

또 무늬를 넣어가꼬 해본께 무늬가 삐뚤어져서 풀어불고.. (웃음)

시간 많은께 이러고 있어.. 마음에 안 들면 풀어불고 다시 하고, 다시 하고..."

엄마 말에서 묻어나는 여유로움이 좋았다.

늘 일에 치이고 쫓기던 엄마만 보았던 과거 소원 중 하나가

일하지 않는 엄마, 하더라도 쉬엄쉬엄하는 엄마를 보는 거였는데 

이제야 그 소원을 이룬 것 같았다고나 할까.

나는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안 풀고 한 번에 뜨면 얼마나 걸리는데?"

"한 5일 걸리제."

이미 실값에서 '뜨개질이라는 게 가성비를 따질 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새삼 계산이라는 걸 하며 엄마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조끼 하나 뜨는 데 실값만 해서 7,8만 원에..

5일 뜬다 치면 하루 공임 10만 원 잡고 50만 원에...

엄마, 지금 60만 원짜리 조끼 뜨는 거야?"

엄마가 한바탕 웃으시더니 

"요 밑에 옷집에 만이천 원 짜리 조끼 걸어졌던디 이쁘더라"라고 하며 

또 한바탕 웃으신다. 나도 웃음을 머금고 말한다.

"엄마, 만 이천 원짜리 조끼 놔두고 지금 60만 원짜리 조끼 뜨고 있는 거야?"

"긍께 실 사 논(놓은) 것만 뜨고 안 뜰 거야(웃음)”     


뜨개질을 놓고 엄마와 웃음꽃 피우며 이야길 하다 보니

엄마가 어떻게 뜨개질을 배우게 됐는지 궁금했다.

외할머니나 이모들은 뜨개질을 할 줄 몰랐으니 집안에서 배운 것은 아닐 테고

가난했던 엄마가 학원 같은 데서 배웠을 리도 없다.

돈이 되는 거라면 뭐든 하는 엄마였으니 뜨개질도 

돈벌이 차원에서 익힌 기술이 아닐까 했는데 역시나였다. 

"옛날에 스웨터같이 뜨개질한 옷을 수출하는 데가 있었어.. 그런 데서 일을 했제"

"돈은 많이 줬어?"

"떼어먹었어"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툭 뱉은 말이었는데 나는 놀란 토끼눈을 떴다.

"일 시키고 돈을 안 줬다고?"

"4만 원 뜯겼어(웃음)"

엄마는 웃었지만 나는 또 계산이란 걸 하며 말했다.

"그때 돈 4만 원이면 지금 얼마야? 한 40만 원쯤 될까?"

"40만 원인지는 몰라도 솔찬히 많지, 지금 돈으로 치면..."

".........."

"그때 애 업고 거기 가서 (뜨개질) 배워 가꼬 집에 와서 뜨고, 거기 가서도 뜨고..."

"그 업었다는 애가 나야?"

"아마 그럴걸"

나는 벼룩의 간을 빼먹지, 한 푼이라도 벌어보겠다고 

애까지 둘러업고 다닌 사람 돈을 떼어먹다니, 하며 분개했다.

하지만 엄마한테는 그 또한 웃고 말면 그뿐인 얘기 같았고, 

엄마의 그런 여유는 시간에서 오는 것 같았다.

우리의 다사다난함을 금세 옛날얘기로 만들어버리는 시간 말이다.     


엄마가 여전히 코바느질로 손만 바쁜 채로 말했다.

"뜨개질 하믄 시간이 잘 가.. 쪼끔하다 보믄 금방 한 시간 가불고... 시간이 술술 간께 좋아"

엄마 말에 시간이 빨리 가면 그만큼 더 빨리 늙을 텐데 

엄마는 그게 겁나지 않나? 하고 생각했고,

이내 그것은 엄마의 두려움이 아니라 나의 두려움이라는 걸 알았다.

겨울이 더디 오길 바라는 것도 어쩌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게 

싫거나 두려워서 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종종 '세월을 낚는다'로 비유되는 낚시꾼처럼

다시 보는 울 엄마, 옷이 아니라 시간을 뜨는 사람 같다.

시간을 잡아둘 순 없겠지만 너무 빨리 가진 않기를  

이 가을, 시간을 뜨는 엄마를 보며 생각한다.     


엄마 손에서 바삐 움직이는 코바늘이 좋고

엄마 옆을 나뒹구는 보송보송한 실타래들이 좋고

엄마의 손끝에서 탄생하게 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무언가가 좋아

더 좋은 이 가을은 휘리릭 보내기엔 정말 아까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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