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LIVE/DIVE

1막 스물 네 번째 이야기

by 라라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던 당시,

나는 이미 공황장애 증상을 겪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고

자리에서 벗어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30분 정도는 쉬어야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과에 가는 일에는 여전히 편견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억울함이 먼저였다.

‘내가 왜 병원에 가야 하지?’

상처를 준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나만 아파야 하나 싶었다.


친구의 권유로 중간에 심리검사를 받아보기도 했고, 상담센터를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상담 세션 1회당 10만 원이 넘는 비용 앞에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버텼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내 머릿속에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방아쇠가 당겨졌다.


총성이 울린 순간, 내 뇌 속 구석구석에서 불꽃이 튀는 듯한 느낌이 퍼졌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귀 가까이에서 쿵쿵거리는 나의 심장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심장 두근거림이 이번엔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갈 수록 더욱더 빨리 뛰었다.

업무를 하다가 갑자기

“나 이러다 죽겠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강하게 꽂혔다.

그러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감이 온몸을 덮쳤다.


나는 업무 도중 급하게 연차를 내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정신과로 향했다.

운전 중에도 심장은 멈추지 않고 미친 듯이 뛰었고,

스스로도 ‘정말 위험했다’고 느낄 만큼 아찔한 순간이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고, 눈앞은 아득했다.

다행히 취소 자리가 있었다.


중년의 의사가 나를 쓱 한번 보더니 왜 왔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공황장애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럼 기본검사 등을 받아보고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당시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고백하면서 자신의 증상을 이 병으로 착각하여 내원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나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심리검사 질문지는 무리 없이 작성했다.

하지만 자율신경계 검사가 시작되자,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멈출 수 없었다.


내 뇌에 연결된 선들이 터져버릴 것 같은,

그동안 쌓였던 것들이 전류처럼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의사는 검사결과를 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번엔 안경 너머 그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지금 일상이 가능하세요?”

나는 그 질문에 다시 눈물을 쏟았다.


내 자율신경계 기능은 일반인에 비해 급격히 낮은 수준을 보였으며,

당시 나의 심박수는 120에서 130bpm 사이였다.


몸은 이미 모든 것을 경고하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