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스물 아홉 번째 이야기
상담센터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다.
친구의 권유로 상담센터에 등록했다. 1회 상담비는 감당하기 버거운 금액이었지만, 그때의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내가 찾은 곳은 상담사 두 명이 함께 사용하는 조용한 공간이었다. 작고 따뜻한 미국 가정집 거실처럼 꾸며진 방은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한 기분을 주었다. 나는 쿠션이 가득한 소파에 앉아 상담사를 바라보았다.
벽 한쪽에는 샘 토프트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강아지와 남자가 함께 있는 그림. 상담 시간 내내 나는 상담사 대신 그 그림만 바라보았다. 상담사의 눈빛보다 그 그림이 나를 더 위로해주는 듯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마음을 굳게 닫고 있었다. 그녀의 따뜻한 눈빛조차 부담스럽고 싫었다. 나는 감정 없는 단답형으로만 대답했고, 대화라기보다는 메마른 질의응답에 가까웠다.
상담사는 부모님과의 관계부터 어린 시절 기억까지 끄집어내려 했다. 나는 지금의 문제에 집중하고 싶었는데, 자꾸만 과거에서 모든 원인을 찾으려는 듯해 불편했다. 과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왜 잊고 있던 기억을 굳이 파헤치려 하는 걸까.
나는 현재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공황장애를 겪고 있어 상담을 신청했다. 그런데 왜 지금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는 걸까. 내가 그 큰 금액을 지불하며 내 과거 얘기만 하고 있을 때인가. 나중에는 상담사에게 화까지 났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 질문에 나는 멈칫했다. 늘 자연스럽게 해오던 자기소개였는데, 그 순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조차.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는… 제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마치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아 눈만 껌벅이는 시체처럼, 내 자신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