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쓸모없는 비용 손실, 의회 업무보고와 행정사무감사
5. 행정사무감사
노동조합에 단체협상과 단체협약이 있다면 이들 지방의원과 의회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보여주는 순간은 역시나 행정사무감사다. 지방자치법상 온갖 것들을 요구할 수 있게 돼있고 12월에 있는 예산 확정을 위해 1년간 농사를 검증하겠다는 취지인데 국정감사 못지않게 엉망진창이고 정말로 이 사람들이 지방행정을 감시하는 데 목적이 있는 건지, 자기네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목적이 있는 건지 무척이나 헷갈리는 시간을 수차례 경험 했다.
의회는 9월 본회의 일정에 따라 법상 몇 안되는 권한 지방행정에 대한 감사기능인 행정사무감사의 일정을 조율한다. 본의회 의결 사항이나 전체 일정은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정한 바를 따르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일정이나 시간만 봐도 이 행정사무감사라는 게 기관들을 길들이는 공식적인 갑질용 행사라는 걸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그해 좀 마음에 안들었던 기관들 혼을 좀 내줘야겠거나 기분이 좀 나쁘거나, 혹은 자기네들의 사사로운 청탁을 무시한 기관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또 오래도록 혼나도록 준비한다. 내가 있던 기관은 하루 종일 털린 적이 있는데, 이때 털린다는 게, 나이 육십 다된 기관장이 자기들 보다 학교도 안좋고 배운 것도 없고 대부분 어디서 굴러 먹었는지도 모르는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한테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말들에 하루 종일 혼난다는 뜻이자 이 답을 찾기 위해 회사 전원이 하루 종일 달려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미리 밝히지만 세상에 이렇게 한심한 일이 없고 이렇게 멍청한 낭비가 없다. 그 시간에 일을 하면 행정 효율이 얼마나 늘어날까.
일정이 정해지면 회사가 바빠진다. 지난 1년간 농사 진 내용들을 두꺼운 책으로 만드는 건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 남짓 회사가 올스톱된다. 미리 얘기하지만 행정사무감사의 책자를 읽고 그놈에 지방자치법상 의무를 다하는 이분들은 공공기관 사람들이 쓴 보고서의 뜻을 이해할 만한 경험이나 학습 능력이 거의 또는 전부 없다. 그나마도 국회 보좌진 출신 쯤되면 다행인데 대부분은 지방 유지나 정치인들 자원봉사단 출신들이라서 썩 기대할 만한 게 없는 게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 보여주자고 열심히 자료를 만든다. 실적이 어쩌고, 성과가 어쩌고. 물론 이 실적과 성과가 실제로 집계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어떤 기업이 매출액이 늘었다면 그 성과가 어떻게 한두 개 지원기관의 성과일 수 있겠나? 경영자의 의지와 시장 상황, 뭐 이런 것들 옆에 아주 작은 변인을 정책 효과 등이 기여를 했을 것이라고 보는 게 과학적 사고, 아니 투입과 산출에 관한 합리적 연산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계산 일거다. 한 번은 예산을 30억짜리 사업의 성과가 조 단위로 나온 적이 있다. 집계 기준이 다르고 여기저기 짜 맞추는 엑셀에 숫자가 다르고 누군가의 오기가 들어가고.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숫자가 한번 뻥 튀기 되면 이듬해부터는 거기 맞게 뻥튀기가 이어진다. 1조를 했으면 최소 1.1조라고 해야 하는 거다. 웃긴 얘기다. 예산을 전년이랑 똑같이 줬으면 해당 예산의 실물 가치는 물가상승률과 화폐 가치 변화 등을 감안할 땐 떨어졌을 텐데 같은 예산을 줘놓고 전년 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라는 거다. 최소한의 경제학적 상식이랄 것도 없다. 그냥 대학 생활을 할 만큼의 수학 능력도 없는 사람들의 질문 수준인 것이다. 그런 질문을 하니 답변도 그렇게 준비다.
미리 털릴 기관장을 앞에 놓고 본부장이며 팀장들이 열심히 예습과 복습을 시킨다. 어느 때인가부터는 사전 질의응답도 준비해야 한다. 기관장이 준비해야 하는 오픈북 페이지가 무한으로 늘어난다. 다행히 학습 능력이 있으면 나을 텐데 그게 안 되면 그땐 정치랑 영업이다. 그 과정에서 사소한 오타나 앞 뒤장 숫자가 다르거나 단위가 헷갈리면 또 완빵 작살이 난다. 사업과 정책의 근간을 읽지 못하는 의원님네 들이 제일 불쾌한 게 예의다. 처음부터 끝까지 백만 원으로 써야지 왜 어디는 천 원이고 어디는 백만 원이고 어디는 억이에요? 앞에는 25인데 왜 뒤엔 23이에요? 뭐 이런 질문들이 날아올 거라 그런 질문을 대비해야 한다. 누구는 신규 사업이 눈에 안 띈다고 따로 폰트를 바꾸건 표시를 해달라며 자기네들을 무시하는거냐며, 행정사무감사와 의회, 의원들과 유권자 모두를 무시하는 거냐고 성화를 낸 적이 있다. 뭐, 개념적으로야 맞다. 선출직이란 게 그런 거니까. 그런데 당신들을 뽑은 유권자들 대부분은 당신들을 모를걸요? 그놈에 시도의원들. 나도 이 지역구에서 7년을 살았지만 누가 우리 동네 시의원이고 구의원인지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런 사람들 보라고 그들보다 좋은 학교에 석사며 박사 학위 받은 수십에서 수백의 사람들이 달라붙어 보고서를 만든다. 한 번은 출력된 책자에 오탈자가 있어서 이른 시간에 의회에 가 오기가 발생한 페이지 전부를 시트지로 발랐던 적이 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그렇게 힘겹게 행정사무감사를 시작하면 기관 사람들은 긴장한다. 이날만큼은 거의 막내 직급 까지도 신경이 곤두선다. 막내 직급 직원이 하는 사업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다. 어디서 어떻게 의원한테 제보가 들어가 괴상한 질문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고, 저 대단한 두뇌를 갖고 계신 분들이 어느 자료를 어떻게 잘못 읽어 한심한 질문을 할지 모를 일이다. 내가 있던 기관은 기관장을 비롯해, 이사며 경영본부장 이하 각 사업 본부장, 각 실장급들 그밖에 주요 보직자 등 스무며 남짓이 행정사무감사가 일어나던 회의실에 몰려갔고, 대기실에서 라이브로 중계를 보는 현장 대응 인력이 또 50명 남짓 대기한다. 의원의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조실 담당 직원은 질문을 타이핑해 뿌리고 해당 부서는 급하게 대응 자료를 만드는 거다. 떠나고 보니 이처럼 우스운 이야기가 없다. 사업에 관해 가장 잘 아는 건 담당자인데, 이 사업과 가장 거리가 먼 기관장과 관리자들은 답변거리를 찾고 정작 자신의 사사로운 동기가 없는 한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온갖 질문들을 쏟아낸다. 자신이 속해 있던 각종 협회나 지역구 따위의 민원을 비롯해, 아마도 개인적인 민원과 청탁들이 공식적인 형태로 기관을 공격하는 자리가 바로 이 행정사무감 사다.
우리는 의원들의 질문을 보면서 어느 본부장이 작업했네, 어느 팀장이 작업했네 하는 시나리오를 역산한다. 저 의원이면 지역구가 여기고 이 사업과 관계있고. 고등학교 동창이란 얘기, 같이 밥 먹었다던데, 사실 동네 누나 동생 사이라는 둥둥의 온갖 하잘 껏 없고 한심 스런 얘기들이 이 시나리오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직원들은 참으로 열심히 열에 여덟쯤 도무지 의미를 찾을 수도 가치를 살펴볼 수도 없는 소모적이고 소비적인 이야기에 답변을 하느라 타이핑을 해댄다. 우리의 청년들이 이런 일을 하라고 회사에 나옵니다. 네. 가뜩이나 공공기관은 이제 물이 많이 빠져서,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편이었던 내 기관 직원들 마저도 이런 한심한 사회의 단면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우스꽝스러운 생태계의 최말단에서 도무지 쓸모를 찾기 어려운 무용한 것들을 위해 노동을 받치는 것이다. 그리고 행정사무감사는 바로 이런 공공 분야의 무용함을 보여주는 철저한 단면이다.
*더는 생각할 수록 화가 나서 마음을 다해서 쓸수가 없다. 참으로 천박한 사람들, 질 떨어지는 낭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