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직후 군 복무를 앞두고 속리산 부근 삼년산성에 있는 작은 암자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그 주변에 머물며 역술을 공부한다는 처사를 만났고 그때 그는 내가 남다른 복이 있다 하였다. 인복 곧 좋은 사람을 만나는 복이다.
새삼 그 말을 떠올리게 된 것은 군 복무를 마치고 교직에 몸 담고 좋은 인연으로 다가온 많은 제자를 만나게 되면서였다. 학급 담임으로 처음 만난 1977년에 태어난 학생들부터 31번째인 2007년에 태어난 학생들까지 선물처럼 다가온 좋은 제자들과 함께 해 온 교직 생활 35년, 올해가 정년이다.
유년기부터 좋은 교사를 꿈꾸었다. 사범대학 재학 중에 소통하고 신뢰를 주며 좋은 수업을 할 수 있는 교사가 되기 위한 소양과 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노력을 하였다.
1990년, 한영고등학교에서 교직을 시작하며 따뜻하게 챙겨주는 여러 선배 선생님들을 만나 2년 동안 준비하고 담임을 맡게 되었다. 담임으로서 학급 학생 모두를 정성으로 챙기며 격려하고 응원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인생의 많은 것들이 구체적으로 정해진다. 학생들이 그걸 느끼고 알게 되면서 절실함을 갖게 될 때, 진심으로 다가서면 학생들과 소통이 되고 그 시점부터 학생에게 긍정적인 변화의 모습이 보인다. 담임 반 학생들 중에어느 해는 서너 명, 어느 해는 10여 명, 절반 이상까지 큰 변화가 느껴진 때도 있었다. 떠나보낸 제자들이 세월을 넘어서 다가왔고 함께 한 그 시간에 대한 감사를 전해 왔다. 그때부터 목표를 구체화하고, 좋은 습관을 만들며 진정성을 가지고 큰 성취를 만들 수 있었다며, 그 시간이 자기 인생의 전환점이라 말하는 제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더욱 노력하고 분발할 수 있었다.
18년 동안 고 3 담임을 연속해서 맡았다. 첫 3학년 담임 반 제자들이 1996년 ‘한영고 DP 사단’ 모임을 만들었고, 대학 1학년 재학 중에 멘토로 후배들을 지원하고 주기적으로 학교를 방문해서 격려해 주었다. 멘토로서의 지원과 격려는 담임을 이어가는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해마다 졸업한 제자들이 보태지며 17년간 이어진 ‘한영고 DP사단’ 모임이 2015년에 동기부여를 통한 후배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동필 장학회’로 이어지면서 책상 한 부분에 놓인 장학회 총회 사진은 학급 관리, 수업, 학교 생활에 늘 큰 힘을 보태 주었다.
교직을 10년 남긴 때부터 얼마 남지 않은 기회라는 생각에 절실함이 다가왔다. 모든 교육 활동에 각별한 애정을 더했다. 마지막 담임이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동기부여를 통해 큰 성장을 만들어가는 적지 않은 제자들의 모습은 살아온 시간에 대한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학교 생활은 더없이 행복했다.
돌아보면 늘 긴 종례를 했다.
이웃 반보다 서너 배에 달하는 그 시간을 적지 않은 학생들은 불편해했다. 학기가 시작되고 건의 사항을 받을 때 종례 일찍 끝내 달라는 요청은 늘 있었다. 그럴 때마다 큰 성취를 만들고 함께한 시간에 감사하는 제자들을 떠 올렸다. 고등학교 생활을 잘하고 미래를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좀 더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학습법, 자기 관리, 자기 계발, 삶의 지혜를 살필 수 있는 동서양 고전, 삶의 지침서 등을 가까이 했다. 언제부턴가 긴 종례 시간 안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경청하는 모습을 보았다.
동기 부여를 통한 학생들의 변화에 의미를 둔 교육 활동을 확장해 갔다. 학업에 대한 목적의식을 갖게하기 위해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날로 다듬어졌고 이 과정 속에서 학생들의 큰 성취와 성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다 많은 제자들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도록 격려하고 힘을 보태주기 위해 기대와 희망을 품고 담임의 책무에 힘썼다.
교육이 사람을 바꾼다. 처음 마음 그대로 소신을 가지고 만들어 온 의미있는 시간의 기억에 감사한다. 담임 반 교실은 삶 안에서 가장 행복한 공간이었다. 35년의 교직 생활, 그간 들려 준 이야기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아 본다.
교육에 관심이 있는 모두에게, 특히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에게 의미있는 울림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