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의심
9월이 되고도 날은 더웠다.
남은 여름이 이글거리는 아스팔트를 밟으며 지친 구직은 계속되고 있었다.
동시에 생일도 다가왔다.
나는 생일날까지 노력해 보고 상황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나아지지 않으면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다.
정말 죽기에 분했는지 이력서를 돌리고 면접 날짜를 빽빽하게 잡았다.
든든히 밥을 먹고 나와도 모자랄 판에 빈속으로 지하철 노선도 대로 서울을 오가는데 허기가 졌다.
역사에 있는 편의점에서 1+1 홍차 같은 걸 사 먹으며 버텼다.
동시에 두 페트를 단번에 마셨다. 어쨌든 나는 (여러모로) 허기가 져있었다.
원래 하던 촬영일 관련 면접과, 전혀 관계없는 무인양품 면접도 있었다.
아직 무인양품이 한국에 들어오지 얼마 안 된 초기부터 가방이니 신발이니 많이도 샀던 나는 구인이 뜨자 바로 지원했다. 10년 전쯤 한 아르바이트 외에 서비스직 관련 경험도 없으면서.
어쨌든 서류 합격을 하고 면접을 기다리던 중에 앞서 면접 본 곳에서 합격 연락이 왔다.
추석이 낀 특성상 입사일은 9/19. 내 생일이었다.
나는 이걸 어떻게든 ‘살아’가라는 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입사까지 일주일 정도의 남는 시간. 웹소설을 쓰거나 잠을 자거나. 아니면 쿠팡 오전 알바를 가기로 했다. 사실 쿠팡은 평소 운동도 안 하는 나에게 체력적으로 정말 무리였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집에만 있는 것보단 나았다.
그 밖에도 나를 위해 오랜만에 영화를 예매했고, 마크 로스코의 전시를 가기로 했다.
이우환 작가와 함께 하는 전시였다.
전시를 가는 아침. 나는 새벽에 자서 새벽에 깨어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 죽기 전에 실제로 보고 싶었는데.
많은 작품은 아니지만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실물로 볼 수 있다니 대단히 의미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새벽이 틈틈이 밝아오는 걸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고. 반면 다가오는 입사 날짜가 나를 긴장되게 했다.
너무 오래 쉬었다. 제대로 일할 수 있을까?
나는 사회에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
의심은 끝 모를 구덩이 안에서 마술처럼 계속 건져졌다.
나는 식은땀이 났다. 이것은 자존감과는 또 다른 얘기였다. 나는 겁먹어 있었다. 최대한 무던한 척 애쓰고 있었다.
바꾼 약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애매했고 그래도 꾸준하게 먹으니 2,3시간이라도 잘 수 있었다.
가면 다 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야.
내 자신에게 타일러 봐도 찰나의 용기뿐이 되지 않았다.
더운 침대에서 안 좋은 자세로 기대어 앉아 멍하게 새벽이 밝아오는 걸 보고 있었다.
마크 로스코의 제목 없는 그림 같은 오늘은 9월 11일 수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