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엘리아의 일기

선입견(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by Elia

한국에 돌아오고 나니 조금씩 나의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들의 상태도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는 아니지만 가장인 아빠의 의견에 따라 이사를 하기로 했다.

태어나서, 자라고, 공부하는 동안 나의 일부 같은 공간과 이젠 영원히 헤어진다니...

이 작은 방에 꽉 찬 피아노가, 책상이 슬프게 보였다. 어차피 너 시집가면 정리하는 건데 뭐. 하면서 웃는 고모가 얄궂다.


이사를 하고 정리가 미쳐 끝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함께 한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 어떻게 지냈어?"

" 응.. 좀 바빴어. 우리 부모님도 이사 가서 너네 집 연락처도 변하고."


친구는 음악을 놓지 않고 국립 관현악단에 들어가 매일 바쁘고, 입덧이 심해 겨우 출근한다고 그랬다.

만나자는 얘기에 망설이더니 자기가 많이 몸이 힘들다고 한다.

그렇구나 하며 통화 마무리를 하려는데,

" 그 일본인 남자는? 아직도 연락해?

그런데 왜 하필 일본인이니? 좀 그렇다 애.

좋은 소식 들리면 연락 줘. 그때까지 내가 몸이 가벼워지려나."

하며 다시 연습 시작한다며 한숨을 쉬더니 전화를 끊었다. 마치 재촉하듯.


무엇이 그녀를 힘들게 하는 걸까? 무거워진 몸 때문인가 아니면 나와의 공통 관심사가 찾기 힘든 대화였을까.

전화를 끊고 대면해진 '친구' ' 일본사람'에 대한 선입견에 놀랐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반감을 느끼는 사람은 많이 있다.

일본이 아닌 일본인에 대한 선입견에 의아했다.

그 나라를 미워하면서도 생산된 제품은 선호한다. 그 나라 음식의 맛집을 웨이팅 하며 찾아간다.

그렇지만 그 나라는 혐오한다.


컵라면 만드는 3분도 채 안 되는 짧은 통화.

10여 년 친하다고 생각해 온 친구에 대한 감정.

몇 년 안 되는 시간의 부재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에 놀랐다.

'시간의 양이 아닌 질'이라는 진의 말이 생각났다.


고등학 입학 할 때 재일교포였던 아이가 있었다.

전공 수업 중, 전공과목 담당 선생님이 그에게,

" 넌 한국인의 감성이 없어. 일본인이나 다름없잖냐? 거기서 태어나고 자랐고. 한국말 그렇고.

네가 아무리 영산회상 (靈山會相) 전 곡을 연주해도 그건 영산회상이 아니야."라고 했다.

그 장소에 있었던 아이들이 수업 후 의견이 분분했.

영산회상(靈山會上)은 본래 불교에 바탕을 둔 노래곡이었으나 유교 사회인 조선왕조에 이르러 불교적 색채가 약화하고노래곡은 기악으로 변해 정악(正樂)의 대표적인 악곡이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나와는 다르지만 부모가 아이를 한국으로 보낸 것은, 한국 음악을 통해 자기의 뿌리와 재능의 근본을 살리기 위함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열심히 연습하고 자신의 음악성을 더 빛나게 해 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쳤다.

현재 한국음악을 대중에게 여전히 알리고 있으며 대학 강단에서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신한악×트라이소니크' 공연 (2015년 12월, 토쿄. 연주가 민영치 제공)

편견(偏見)과 선입견(先入見)은 다르다.

편견(偏見)은 한자어 그대로 한쪽으로 치우쳐 바라본다는 뜻이다. 공정하지 못한 한 편으로 치우친 생각이다.

개인보다 사회, 집단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한다.

네 편, 내 편의 표현처럼 어느 쪽으로 치우쳐 있는 고정된 생각인 것이다. 이러한 편견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선입견(先入見)은 어떤 집단이나 그 집단에 속한 개인들에 대한 근거 없는 부정적 태도(attitude)이다.

그 대상에 대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가지고 있는 주관적인 생각이다.

'사실적인 근거 없이 타 집단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디 출신은 이기적이다, 어디 사람들은 과격하다, 어느 나라 사람은 돈만 안다, 저 지역은 그런 동네이다.


전화 통화 이후 그 친구와는 연락을 끊었다.

상대도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다.

서로가 바쁘니까.

같은 길을 걷지 않으니까.

그 친구는 관현악단을 거쳐 모교에서 국악을 지도한다고 들었다. 어떤 교사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길 마음 한편으로 기도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 어느 날 히로에게서 연락이 왔다. 방금 우편물을 보냈으니 검토해 보라며,


" 나 취직했어. 역사 깊은 회사야. 일본에서 이제 월급쟁이가 되나? 하하하"

기뻐했다.

크게 웃는 웃음 소리에 그 모습이 상상이 갔다.

역사와 SF를 좋아하던 개구쟁이 같던 소년인 히로가 넥타이 맨 정장 차림의 어른이 되어감을 느꼈다.


" 축하해! 아버지 기뻐하시겠다!"

" 응, 대학 입학할 때 보다 더 좋아하시네...

그리고 우편물 잘 읽어 봐줘. 엘리아와 나의 미래가 들어 있는... 일부야. 시작이고."


며칠 후 이사 온 곳에 묵직한 서류 봉투가 FedEx로 배달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