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나오는 주인공 베르테르야. 친구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모은 작품인데. 베르테르가 샤를로테, 로테라고 하지. 로테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 여자가 이미 약혼한 상태임을 알게 되면서 소설이 시작돼. 로테에 대한 사랑, 고통, 절망의 편지야. 끝에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해. "
애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학습부장 은하가 설명을 마치자 " 호오...." 하며 모두 은하를 쳐다보았다.
한 아이가 " 막장 드라마네...." 하자 꺄르르 웃음보가 터졌다.
연경이는 씨익 하고 웃더니, " 이제 알았지? 10분 남았다. 야, 엘토! 메조소프라노 따라가지 마!"라고 말하고 손바닥을 치며 집중시켰다.
'뭐냐... 이 노래. 너무 슬프잖아.'
속으로 생각했다. 작품 설명이 머리에 떠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가 이해가 가는 듯 마는 듯.
"아, 내가 태양처럼 타오르는 온 마음을 자연의 모든 장면 속에 부어 넣을 수 있다면! 그리고 나를 둘러싼 이 광대한 세계가 내 가슴속에서 더 큰 세계로 흘러넘친다면!" (5월 10일 자 편지)
좋아하는 사람을 태양처럼 따뜻하게 느낀다.
목련꽃에 그늘 아래 펼쳐진 베르테르의 슬픔이 아름답지만 마지막 편지의 결말에 아름다움이 잔인하게 느껴졌다.아름다운 슬픔.
누구 잘못도 아니였고, 헤피엔딩은 아니구나...... 내가 좋아하는 상대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거나 나와 이어질 수 없는 상대라면 얼마나 가슴 아플까...
" 은하야, 너 책 좋아하는구나? 어려운 책도 많이 읽는다.."
하교 시간에 내 앞자리에 앉은 은하에게 말을 걸었다.
" 아. 숙제하고 할 일이 없으면..." 라며 조용히 답했다.
같은 열세 살인데 숙제하고 할 일이 없다니!
" 어... 그래? 또 요즘 무슨 책 읽어?"
"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그림이 재밌어."
언젠가 서점에서 본 책... 코끼리가 뭔가에 덮혀진 그림. 목에 스카프 맨, 별 아래 우뚝 선 남자아이.
아! 그 책?
" 그림이 예뻐. 남동생도 가끔 읽어줘.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이거든."
" 와... 내 동생하고 전혀 다르네. 걔는 맨날 전쟁 놀이하러 밖에서 노는데."
" 하하하. 재밌다. 승리하라고 전해줘."
신비한 느낌의 아이다.
말투와 단어가 어른스럽고 몸에서 나오는 태도가 아이 같지 않은 차분함이 있다.
" 은하야, 넌 어른 같아. 너 화도 잘 안 내지? 난 맨날 집에서 신경질만 내는데..."
은하는 미소 지으며, " 하핫, 내가 그래 보여? 집에서 화낼 상대가 없어. 부모님 매일 늦게 퇴근하셔서. 남동생은 학원 가고."
" 넌 학원 안 가?"
" 으응, 별로."
하기사 전교 1등 하는 애가 학원 갈 필요가 없겠지...
" 피아노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하기로 정했어. 남동생도 그러기로 했고. 그럼 내일 보자."
초등학교 때와 다른 여러 환경에서 자라온 아이들이 모여 학급을 이룬다고 말은 많이 들었다.
점점 내 주위를 바라보는 눈, 알아가는 것이 흥미로워 짐을 느꼈다.
합창 연습을 하면서 환경 미화에도 바빴다. 청소를 마치고 커튼을 주름을 예쁘게 묶고 게시물에는 신문 기사를 잘라 스크랩한 것을 드문 드문 부쳤다.
담임은 종례시간에,
" 다들 잘하고 있냐? 뭐. 이 정도면.
중간고사 준비들은 하냐? 좋은 대학 들어가려면 공부 열심히들 해."
우리를 남자중학교 애들로 대하는 기분이였다.
반장은 담임에게 받은 학교 통신물이나 행사에 관련된 편지를 받아 분단에 나눠 주며 말했다.
" 합창 대회 때 까지 감기 걸리지 말고, 지금 나눠주는 프린트 이번주 안으로 제출해. 꼭 풀로 붙여야 해."
받은 프린트는 설문지였다.
내용은 학급 안에서 학습 환경이 학생들에게 적합 여부를 판단하는 20여 개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였다.
(질문 1) 어려운 일이나 곤란한 일이 생길 때 담임선생님에게 말하기 쉬운가?
①정말 그렇다
②그렇다
③조금 어렵다
④어렵다
⑤ 잘 모르겠다
이런 문형의 질문이 1번에서 19번까지였고 마지막 20 번째 질문이 학급에서 가장 어려운 점을 자유롭게 적으세요 ( 이 앙케이트는 본인의 담당선생님께는 절대 비밀로 하니 모든 답변이 끝나면 봉투를 풀이나 테이프로 밀봉하여 주세요)
나의 답은 대걔 '잘 모르겠다 '였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담임 선생님 외에도 몇몇 선생님 들은 1학년들 눈에도 이상하게 보였으니까.
생물시간이였다.
담당 선생님이 시작 종과 함께 들어오시더니대뜸,
" 너희들! 내가 누구 차별하는 것처럼 보이냐?" 말씀하셨다.
수업시작부터 무슨 말인가 알 수 없었다.
애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서로를 쳐다보다가 몇몇 아이들은 그냥 교과서만 보고 있었다.
" 선생님, 수업해요..." 하고 누군가가 말했다.
" 그래, 알지. 중간고사. 그런데 내가 누구 차별하냐고."
두꺼운 검정 안경테에 네모난 얼굴이 상기돼서 질문을 이어가셨다.오늘따라 수염이 더 검게 보인다.
무슨 말인지 생각해 보니 엊그제 설문조사 얘기인가 싶었다. 모른 척 노트만 보고 있는데,
" 솔직히, 선생님. 한 아이한테만 수업 중 개인적인 말 거시잖아요. "
창문 쪽에 앉은 성실이가 생물 선생님을 향해 말했다.
모두 놀랐다.
" 오... 너구나?"
" 선생님, 저는 말씀하시는 ' 너'가 아니고 1학년 1반 최성실이에요. 그리고 저는 선생님에 대해 차별하신단 말 어디에도 쓴 적 말한 적 없어요. 선생님이 수업 중 은아한테 이쁘다며 여자애 머리밴드를 왜 말씀하시는 건데요? 은아도 말씀 못 드리는 것뿐이라 생각해요."
몇 분 동안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은아는 그 하얀 얼굴이 빨개지더니 책상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생물 선생님의 네모난 얼굴이 더 넓적해 보였다. 저 선생님 애들한테 뭐라 말할지....
생물 선생님은 입을 손으로 가리는 시늉을 하시더니, 잠깐 교실 바닥을 봤다.
짧은 몇 분이지만 되게 길게 느껴졌다.
" 음.... 그래. 내가 사과한다. 너희들 한테. 수업하자. 그리고 성실이는 이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잠깐 내려오고. 교과서 36페이지 펴라."
은아도 훌쩍거리며 책을 펼쳤다.
체육부장인 성실이는 육상부 캡틴이라 항상 체육복을 입고 있었고 머리도 짧은 어떻게 보면 남자아이 같은 인상이였다. 그런 성실이가 수업 중에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생물선생이 희한하게 보였다.
타인의 모습을 관찰하고 상대의 모습이 좋다거나 싫다의 감정 없이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조금씩 배워가는 듯했다.
어떤, 옛날 가요의 가사가 생각났다.
"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성실이는 그걸 말해버린 것이다.
교무실에 다녀온 성실이는 다녀와서 자리에 풀썩 앉더니 아무 말도 없었다. 반장이 " 뭐래?" 하니까,
" 별다른 말은 없고 자기가 수업시간에 그런 거 있음 왜 말을 안 했냐고 그러네?"
그러자 학급일엔 관심 없는 종순이가 " 뭘 알겠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하고 엎드려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