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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a Nov 15. 2024

학교 가자

#12. 이야기 열둘, 아이도 어른도 아닌 사람

3월 중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처럼 두려운 마음 아닌 두근거림.


버스 장류장에는 인근 여자중학교로 가게 된 아이들주소만 옮겨 좀 더 먼 거리의 대학부설 여중으로 간 아이들 붐볐다.

남자 중학교는 여중 보다 거리가 가까워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모두 부러워했다 

며칠 전 만 해도 학교 교실과 복도에서 떠들고 놀던 아이들이 달라진 모습으로 만났지만, 서로어색한 듯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대면대면 하다.

긴장한 탓일까.

버스로 네 정거장을 거쳐 학교 근처에 도착했다.

지하철역, 양화대교, 또 잘 모르는 동네를 지나... 또 걸어가는 길이였다.

누가 이리가라 저리 가라 지시를  안 했지만 그 무리들에 묻혀 걸어갔다.

그냥 그렇게 가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문 앞에는 학생 주임선생님과 선배들이 서서 복장을 검사했다.

' 뭘 검사하는 거지?'

두 명씩 짝을 이뤄 선배 중 한 명은 어떤 아이의 등을 손으로 쓰윽 대니,

" 몇 반? 이름! 내일 브래지어 하고 와!" 하였다. 

무표정으로....

다른 선배는 명찰을, 다른 한 명은 얼굴과 복장을 검사했다.

" 너! 이리와바."

" 거기! 잠깐 여기 서."

마치 기계로 불순물을 제거해 내는 로봇처럼 순식간에 걸린 아이들이 교문 앞에 나란히 서있.


1학년 1반.

담임 선생님은 '지리'를 담당하시는 중년의 남자 선생님이었다. 1학년 아이들을 맡은걸 무척 귀찮아 해 보였고 학급행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입학 첫날부터 약간 화난 얼굴로 자신은 노력 안하는 사람이 제일 싫다며 급훈도 '노력하자' 로 정해버렸다.

노력하자... 무얼 노력하란 말이지?


학기 초 학급 꾸미기부터 합창대회 준비까지 모든 것을 '니들이 알아서 해'였다.

결국 반장 수현이에게 떠맡겼다.

부반장 정이가 내게, " 연아, 좀 도와줘." 라며 종종 SOS 신호를 보냈다.  하는 수 없이 도서부장이지만 봉사부장맡게 되었다.

옆반 ' 가정과'  담당 생님 반에는 교탁 위에 꽃 놓여 있었고 교실 곳곳에 예쁜 장식으로 꾸며  공주님 방 같았다.


신기한 것은 같은 초등학교 때 급우나 학원이 같은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을 법 한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 학급에 나만 혼자 분리되었다.  

전학 온 반장 수현이도 아는 아이가 없어서 나와 장난 치면서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 이 반은 꼭 남자 중학교 교실 같지 않니?"

금테 안경테 너머로 쇼트커트가 잘 어울리는 수현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응, 좀..... 교실 내부도 썰렁하고 삭막해.."

 내가 휘이 둘러보며 말했다.

칠판 위 중앙에 걸린 태극기 옆에 '노력하자'라고 쓰인 액자만 달랑 하나 있었다.

" 참! 5월 교내 합창대회 전에 환경미화 해야 한데. 어디서부터 해야 하냐..."

반장에게 맡겨진 살림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

학급비 모아 행사 준비하는 것이나 임원들하고 학급 행사를 분담해야 하는데....


담임 선생님은  얼굴이 예쁘거나 부모님이 사회적으로 유망한 직업의 아이에겐 더없이 상냥하게 대했다.

교회 장로님 처럼 인자한 그 미소가 점점 거짓으로 느껴졌다.

하루는 종례시간 끝나고 같은 반 아이가 '가정실태 조사문' 이 든 봉투를  담임 선생님께 전하려 뒤를 뛰어 나갔다.

선생님을 불러 복도에서 드렸더니,

" 이게 뭐냐?"라고 그 아이에게 물었다.

" 부모님 확인 도장이 늦었어요." 하며 제출하자,

" 너 몇 반이?" 하는 거다.

그런데 그 얼굴이 진짜 몰라서 묻는 얼굴이었다.

1학년 1반이라고 말하자 담임은 얼굴이 뻘게지며,

" 어... 아! 그래.. " 하며 낚아채듯 조사문을 들고 복도를 걸어갔다.

그 광경을 목격한 반장과 나는 어이가 없었다.

눈으로 내가 반장에게,

' 야... 이거 진짜 몰라 저래?' 하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 참나....' 하듯, 반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안경을 끌어올렸다.

 

비 오아침이다.

학교 다니면서 지금껏 지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내가 30분이나 늦 버렸다. 

가방을 서둘러 메고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그 많던 아이들로 가득했던 버스 장류장에는 아무도 다.

비는 오고 버스도 사람도 없는 정류장은 시간이 정지된 것 같다.

다행히도 버스가 도착 예정 시간보다  빨리 와 학교에 일찍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가방 끈이 부지직하고 끊어져 버렸다. 교과서 무게를 감당 못했나 보다.

예쁜 게 좋다며 엄마한테 우겨서 산 '산리오' 캐릭터 가방을 샀던 게 문제였다. 운동장  흙바닥에 위에서 끈이 끊어지지 않아 다행이다.

이러다 더 늦겠다 싶어 우산은 목과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가방 안고 뛰었다.

정문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문은 잠기지도 않았고 선생님도 경비아저씨도 안보였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1학년 1반 교실 뒷문을 조용히 열고 자리 쪽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반장 수현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입으로 , ' 빨리 앉아' 하는 표정이었다.

아침 자습 시간이라 담임 모습이 안 보였다.

자리에 앉는 순간 갑자기 앞문이 열리더니,

" 오늘 늦은 놈 누구야!" 하고 담임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숨기고 가만히 입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더 혼날 것 같아  일어서려는데 수현이가 나를 향해 ' 안돼. 그냥 앉아' 하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얼굴을 아래로 한채 ' 어떡해?' 하고 뻥긋거렸다.

수현이가 책상 밑으로 열심히 내게 손짓했다.

' 안돼!'

그러는 동안 앞 문이 다시 열리더니 여자애 두 명이 들어왔다. 담임은 그쪽으로 방향을 틀재빠르게 두 명을 향.

미친 듯이 흥분하며 한 명씩 때렸다.

한 아이는 너무 세게 맞았는지 날아가 버릴 정도로 휘청댔다. 그걸 본 아이들이 " 아악!" 하고 소리 질렀다. 넘어지는 아이가 바닥으로 쓰러지는 쿵! 하는 소리는 조용한 교실 안에서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


" 이 새끼야! 초등 졸업한 지 한 달도 안 됐다. 담배를 피워? 그것도 교에서? 네가 제정신이야?"  

담임의 말에 학급 전원 할 말을 잊었다.

어떤 변명도 태도도 받아들이지 않을 순간이다.

바닥에 주저앉다 발딱 일어난 그 아이...

머리는 약간 염색과 파마를 한 듯했고 연하게 화장 도 한 거 같아 보였다. 맞은 얼굴 한쪽이 약간 붉게 부어 올랐고 머리는 헝클어 버렸다.

담임이 애들을 출석부로 때리는 소리만 들렸다.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반장 수현이가, 

" 모두 가정과 준비 해." 하고 말하자, 그제야 담임은 자기의 머리와 복장을 가다듬더니 일교시 끝나면 교무실로 오라고 하고 나가버렸다.

한바탕 난리를 일으킨 종순이라는 이름의 아이는,

 " 에이씨... 발. 재수 없네, " 하며 가방을 자기 책상으로 내던졌다.

아직은 어려 보이는 젖살 같은 통통한 뺨을 가지고 욕을 해 대는 입술에 핑크빛 글로셔가 반짝거린다.

아이 같지만 어른 같아 보이려는 것 같다.

어른처럼 되고 싶은 건 왜?

순간 소동이 정리되고  수현이가 일어나 말했다.

" 담임선생님이 교장선생님 하고 아침에 교무실에서 좀 안 좋았다. 오늘 되도록 조용히 하자."

가정과 수업을 위해 수예도구를 준비하면서 모두 알았다며 끄덕였다.

" 반장이 담임이 되는 게 낫겠다...."라고 내가 옆에 앉은 은아에게 말하자, " 종순이 저렇게 때리는 건 안 하겠다.." 라고 했다.


아직은 아이 같은,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시간이 우리에게도 왔다.

무게가 조금씩 점점 늘어나고 크기가 커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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