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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a Nov 20. 2024

학교 가자

#14. 이야기 열넷, '나'라는 사람

중학생이 되고 2학기 끝날 무렵이었다

같은 반 이면서도 한 번도 말 안 해 본 아이도 었다. 상대도 공통의 관심사가 없는지 인사조차 안 하는 게 중학생인가 싶었다.

남이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 서로가 관심을 주지 않는 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 나... 너 기억해. 연이 맞지?"

실내화를 발 뒤꿈치로 어 억지로 꾸겨 넣고 있었다. 아침에 겨울 찬기운에 딱딱하게 굳은 실내화갈아 신는 건 힘들다. 두꺼운 양말에 뒤꿈치가 잘 안 들어 가 신발 앞부분을 복도에 콕콕 찍으며 쳐다보았다. 

" 아! 너,. 하니 맞지? 나랑 같은 초등학교."

" 맞아. 1학년 7반. 중학교 일 년  지나도록 말을 안 하니?" 하고 웃었다.

" 그러는 너는!" 같이 웃었다.

"  너 기억나는 거. 맨날 엄마 보고 싶다고 엉엉 울던 거. 참... 희한한 아이도 있구나 싶었어."

" 하하하, 이젠 안 울어."

" 그런데 그때 매일 왜 울었는지 물어봐도 돼?"

" 무서웠어. 그냥 모든 게 싫었나? 학교아이들이. 선생님은 안 무서웠는데 그냥 그 많은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게  무섭고 시끄러운 게 싫어서 울었던 거 같아."

" 정말? 예민하구나..."  

하니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제 얼굴을 자세히 보니 텔레비전 같이 사각형이다. 턱이 각이 졌고 마른 체형에 옷은 항상 유명 브랜드만 입는걸 나중에야 알았다.

" 참, 연아. 1학년 때 담임 선생님 기억나?"

" 응, 선생님 얼굴도 잊않았어. 이름도, 김태두 선생님."

" 선생님 지금 정년 퇴임하셨어. 한번 같이 선생님 댁에 놀러 가자. 선생님이 너 보면 기절하실 거야."

이야기를 듣고 보니 웃음이 나왔다.


금요일 수업이 마치고 나는 하니가 있는 자리 쪽으로 갔다.  1학년 때 선생님에 대해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교사생활 30년 동안 처음으로 나 같은 제자 맡게돼  고생하셨을 걸 상상하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선생님은 나를 다시 보시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


" 하니! 내일 오후에 모이는 거 맞아?"

연경이가 우리 쪽으로 왔다.

" 그런데, 뭐 사가? 너 뭐 갖고 싶어? 말만 해! 천 원 한도 내에서 내가 팍팍 쓸께!"

" 뭐? 크크큭. 그냥 와. 무슨 선물은...."

" 야. 생일 파티 초대받으러 가는데 맨손으로 가서 먹고만 돌아오냐? 도리가 아니다."

" 풉! 뭐래. 와서 점심이먹고 가... 

참! 연아, 너도 와줄래. 우리 집에서 내일 내 생일 모임하기로 했어. 뭐... 차린 건 없지만 와서 먹고 놀다 가라."

" 야! 네가 차리냐. 너네 엄마가 만드시지.

참! 과일샐러드 있냐? 너네 엄마 그거... 아... 침... 침 나와. 그거 꼭 만드시라고 전해줘. 연경이가 먹고 싶어 하더라고. 어웅.. 너무  맛있어. 연이 너도 먹으면 반할껄? 그럼 내일 1시에 봐! 난 지금부터 성악 레슨 간다."


보조가방이 두 개에 책가방을 들고 연경이는 빨리 교문을 빠져나갔다.

교문 밖 조금 떨어진 길에  까만 세단 자가용 뒷좌석 문이 열리고 고학년으로 보이는 언니와 뭐라 말하더니 이내 연경이를 태우고  방향을 도로 쪽으로 향했다.


" 연경이는 대학 성악과 가려나 보네?"

차가 떠나고  하니한테 물었다.

 "아! 저 언니가 연경이 이모 딸. 경기여고 다니는데 같은 선생님께 성악 레슨 받아. 우리 막내 언니도 성악과 대입 준비해."

" 하니 너?"

" 아니. 언니만. 둘째 언니는 미술 하고. "

" 와... 너 언니가 몇 명인데?"

" 언니만 네 명. 내가 막내야."

" 헐... 딸만 다섯이야? 너네 엄마 대단하시다."

" 아빠가 사대 독자. 연이 내일 와서 같이 우리 집에서 놀다 가라. 내가 1시쯤 맨션 정문 앞에서 기다릴게. "

얼떨결에 초등학교 1학년 동창을 중학교 1학년 만나 이야기를 하다니. 네 눈엔 내가 희한한 아이로 보였던 게 당연해.

생일선물을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이거 어떠냐며 손수건을 주셨다. 장미가 그려진 손수건에 난 종이학을 접은 병에 담아 종이가방에 넣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오후에 하니네 집으로 향했다.

맨션 정문에 연경이, 그리고 4학년 때 같은 반 수진이, 희경이가 서 있었다. 모두 웃으며 서로가 변한 모습에, 학교 생활에 대해 수다 떨었다.

하니가 이사를 가서 새로운 집을 몰라 밖에서 모두 같이 가기로 했단다.

" 앗, 희정이 왔다!"

희정이는 주소를 옮겨 대학 부설 중학교를 다니는 아이라고 연경이가 그랬다.

" 연아 처음 보지, 희정이 같은 반이었던 적.... 없지?"

" 응."

희정이는 키가 크고 같은 또래 답지 않은 똑똑한 발음으로 " 안녕하세요? 난 하니 친구 희정이라고 해요." 했다.

옆에서 보던 수진이가 "  야, 연이 같은 중1이다. 웬 세요?입니다? 어우... 왕재수..."

예쁜 얼굴에 욕 잘하는 수진이가 입을 삐죽거린다.

희정이는 " 어머, 수진!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예의 있는 인사법 모름? 그럼. 내가 먼저  틀까? 난 하니 초등 때 단짝."

" 안녕, 연이라고 해."

이제 다 모였나? 하고 하니네 집에 들어갔다.

하니의 두 언니들과 엄마가 반겨주시고 외출하신단다.

" 니들끼리 놀아. "

거실에는 LP 전축에서 계속 클래식 곡이 흘러나왔다. 음악이 다 끝나면 다시 새로운 LP로 교환해서 집안이 계속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공간이었다.

CD의 맑은 음색이 아닌... 먼지에 부딪히는 음악의 소리를 하니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교체했다.

" 우리 집에도 있지만... 거의 안 써. 그런데 CD 안 들어?"

하니는 LP판을 고르면서 " 이게 더 소리가 편안해.

다음 곡은 이거다. 연이 뭐 듣고 싶어?" 하면서 엄청난 LP 판을 보여주었다.

 눈에 띄는 공간에 소녀가 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무언가를 바라보는 유화가 벽에 걸려 있었고 그 아래 사이드 테이블 위에 사진이 올망졸망 예쁜 액자에 담아있었다.

" 어? 이 남자가 하니 아빠? 와.... 미남!"

사진 속에는 하니엄마의 젊을 때 모습과 환하게 웃는 남자가 아빠인 것 같다.

" 응. 히히 잘생겼지. 이 전축도 아빠 꺼야."

" 어? 막 만져도 안 혼나?"

" 응, 이젠 괜찮아. 익숙해."

거실에서 부엌 쪽으로 가는 하니를 뒤따라 갔다.

테이블에는 꽃이 그려진 종이 냅킨이 각각 다 다르게 놓여 있었고 엄마와 언니들이 준비해 준 음식이  맛있어 보였다.

연경이가 생일축하 송을 오페라 가수처럼 불러 놀라서 보았다.

수진이가 " 아... 이건 뭐 고급 레스토랑이네." 하자

연경이는" 이게 벨칸토 창법이라카는 거다! Happy birthday!" 하며 양손을 파닥거리며 박수를 유도했다.

준비한 생일 선물을 풀어보는 시간.

책, 연한 입술 글로셔, 헤어핀, 그림 등등...

말로만 듣던 과일 샐러드는 건과일과 생야채, 과일이 알맞게 믹스되 연경이가 칭찬할만한 맛이었다.

모두 배 터지게 먹고 수다 떨고 영화 보고 각자 놀다 같이 놀다 한다 몇 명은 과외 수업, 교회 활동으로 돌아갔다.

 "하니야, 오늘 재밌었다. 다시 만나 좋았네!"

현관 앞에서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하니가 작은 종이봉투를 내게 주었다.

" 나도 좋았다! 이거 집에 가서 먹어. 쿠키야. 언니가 애들 돌아갈 때 주라고 했거든. 그리고 선물 고마워."  

하니에게 건네받은 종이봉투 안에 작은 메모가 들어 있었다.

친구에게.
내 생일 축하해 줘서 고마워.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상대도 나를 알아주었다.

알면서도 지나가는 타인처럼 무시하지 않고 손을 흔들며 반겨주었다.

가끔은 이름은 잊었어도 얼굴은 기억한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아는 척하기 조차 귀찮아 한다. 바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바빠 내 주변을 볼 시간이 없으니까.


나에 대한 기억.

어떤 모습 이였을까.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어딘가에 미리 적어놓은 대본을 펼쳐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집에 오는 길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올해 첫눈이다.

내가 성장하는 것을 기뻐해 주는 하나님의 편지 같다. 붓으로 그린 하얀 편지.

이제 혼자서도 할 수 있지? 친구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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