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란 사람 3
늘 입던 옷. 늘 가던 길. 늘 보던 풍경.
목이 늘어진 보기 싫은 티셔츠를 입어도
구불구불 언덕진 길을 걸어도
멋질 거 하나없는 온통 초록뿐인 풍경을 보아도
언제나 익숙한 이 상황이 편하다.
편한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조금의 변화도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사가 익숙한 것에 젖어 있는 내 생활에 돌을 던진다.
파장이 인다.
당장 버려도 아깝지 않을 거 같던 늘어진 티셔츠도 아깝고,
때론 무릎이 아파 평지를 꿈꾸던 언덕도 아쉽고,
다소 시골스런 풍경과 맑은 공기도 놓기 싫다.
이사를 결심할 때에는 익숙해진, 별다를 것 없이 똑같은 일상이 지겨웠는데 막상 그 익숙함을 떠나려고 하니 그때와는 마음이 다르다.
옷쯤이야 버리고 새로운 걸로 하나 사면 그만이겠지?
평지로 가면 운동도 많이 하게 될 테지?
서울의 공기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 왠지 잘못된 선택을 한 것 마냥 마음이 흔들흔들.
길을 걷는다.
익숙한 길을 따라 옷을 고치러 수선집으로 향한다.
수선꺼리가 있어도 좀 먼 듯해 귀찮아하며 늘 하루 이틀씩 미루곤 했었는데, 아침 일찍부터 나선다.
수선이 급한 옷이기는 했지만 한번이라도 더 들러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도 했다.
이제 이 길을 걸을 일이 없다니 왠지 아쉽고 쓸쓸하다.
뭐 별거도 없는데 이 오솔길이 생각날 거 같고, 이 나무들이 그리울 거 같다.
익숙함이란 정이 든 걸까?
돌아서면 곧 잊혀질지 모르지만 아직 떠나지 못하는 건 정을 떼지 못해서인지 모르겠다.
사람에게만 정이 들고, 정을 떼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달고 다니던 옷의 작은 브로치부터 늘어진 옷, 오솔길, 단골 수선집까지 모든 것에 다 정이 드는 모양이다.
그 정은 바로 ‘익숙함’이고.
그 동안 수없이 오가며 아무 감정 없던 그 '익숙한' 길을 촉촉함이 묻은 '지나간' 길로 걸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