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퇴 이후 나의 시간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새벽 두 시요? 그때 일어나신다고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피곤하지. 그런데 그 시간 아니면 내 시간이 없어. 퇴근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잠들면, 집안일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많으니까.”
“그럼 일어나서 뭐 하시는 거예요?”
“빨래도 개고, 청소도 좀 하고, 그 다음엔 팟캐스트를 듣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찾아보고. 그러다 보면 아침이 되고, 다시 아이들 밥을 준비해야 하지. 그럼 출근 시간이야.”
“와… 진짜 체력이 대단하시네요. 너무 피곤할 것 같은데…”
“피곤은 해. 하하~그런데 그렇게 안 하면 내 시간이 없거든. 자기도 나중에 이해하게 될 거야. 적응하면 다 돼.”
아이들이 자는 새벽 시간, 그렇게 개인 시간을 가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전혀 와 닿지 않았다.
남들은 곤히 자는 시간에 일어나 활동한다는 것보다, 그렇게 조금 자고 바로 출근을 하는 삶이 가능할까?
전혀 상상이 안 됐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이해가 된다.
4살, 6살 남매의 엄마였던 그녀처럼, 나도 ‘육퇴 이후’에야 비로소 내 생활이 시작된다는 것을.
육퇴가 빠를수록 내 시간이 늘어나니, 아이들이 빨리 자지 않으면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가 잠들기만을 기다리며, 나만의 시간을 위해 눈을 부릅뜨고 거실로 나오는 날이 많았다.
나의 시간이 시작되면, 나는 늘 텔레비전을 켰다.
남들이 다 봤다는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도파민 터지는 예능을 보며 시시덕거렸다.
사실 육아의 피로가 풀리는 것이라기보다, 육아에 관한 모든 것을 잠시 잊고 싶었다.
진지한 프로그램은 피했고,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코미디나 연예인 가십 위주로 시간을 채웠다. 그렇게 세상과 조금씩 단절되고, 날짜 감각마저 흐려졌다.
늦게 잠들고 일찍 일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면서, 아침이 즐거울 리 없었다. ‘엄마’에 집중하느라 ‘나’의 삶은 균형을 잃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래서 변화를 주기로 했다.
하나. 아주 짧더라도 나만의 시간을 갖자!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활동 시간이 짧고,
아이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것.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방법으로 ‘책 읽기’를 선택했다. 준비물은 필요없다. 작은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니까.
아이들이 티비를 보는 동안, 저녁 준비를 하면서, 언제든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엄마를 찾고, 화장실에 따라가줘야 하고, 형제가 싸우는 순간이 계속 되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혼자라면 몇 시간에 읽을 책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니 일주일이 걸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짧지만 나만의 순간을 갖기 시작하자, 마음에 이전보다 한결 안정감과 여유가 찾아왔다.
책을 읽다 아이들이 달려온다
“엄마 뭐 해?”
“엄마가 좋아하는 책 읽는 중이야.
무슨 내용인지 알려줄까?”
아이들은 점점 익숙해졌고, 그 시간만큼은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짧고 소소하지만, 엄마가 아닌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 가는 일.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