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고부터
바깥 나들이는 꼭 필요할 때만,
날씨가 좋을 때만, 고르고 골라서 나갔다.
나를 위한 약속은
상대가 기꺼이 응해줄 때,
집 근처에서 한 두시간이 전부였다.
엄마가 아이를 두고
나가는 것은,
아파서 병원에 가지 않는 이상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이가 3살쯤 되어 복직을 하자,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에 대한 미안함,
육아해방에서 오는 편안함에 따른 죄책감이 겹쳐
칼퇴와 함께 주말 붙박이가 기본값이 되었다.
그렇게 항상 함께 했던 친구의 생일도,
언제나 빠지지 않았던 모임도
다음엔 갈게
문자만 남기는 불참러가 됐다.
‘그래도 내년엔 좀 나아지겠지.
가끔은 친구도 만나러 나갈 수 있겠지.’
그렇게 석방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아이가 자라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곧 둘째가 태어났다.
친구와 얼굴보며 제대로 대화를 나눈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6년, 7년전인가?
그제야 깨달았다.
내 삶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음을.
책을 읽고, 나를 위한 밥도 정성껏 차려보았지만
모두 집 안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왜 밖에 나가면 안 되지?
몇 시간 내가 없다고 큰 일이 생길까?
회식은 어쩔 수 없이 나가면서
정작 내가 원해서 나가고 싶은 자리는
다음에 보자며 미뤄왔다.
내가 없다고 세상이 무너지진 않았다.
아이들은 잠깐 엄마를 찾다가도
곧 자기 놀이에 빠져들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걱정하며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느니,
가끔은 다 잊고 친구들을 만나도 괜찮지 않을까?
집 근처 말고, 멀리 나가
맛집을 찾아도 되지 않을까.
뭐 어떤가.
애들은 충분히 잘 크고 있다.
나도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1년 365일 중 단 며칠이라도
나를 위해, 나만을 위해 써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평소라면 거절했을
퇴근 후 한잔 하자는 동료의 말에
흔쾌히 말했다.
그래, 오늘은 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