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나만의 공간은 없다.
안방은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부터 아이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결혼 전에는 나만의 방이 있었고, 결혼 후에는 부부의 책상이 나란히 있던 서재가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고 이사를 하면서 내 책상은 재활용품으로 분리되었다. 새집의 안방에는 부부침대와
이제 막 돌이 된 아기가 쓰기엔 꽤 큰 침대가 들어왔다.
화장대는 아이의 화장품과 자기 전 아이가 갖고 놀던
장난감으로 점령당했고 욕실은 아이 전용 화장실이 되었다. 아이가 크자 신체 발달에 맞춰 작은 책상이 들어왔고, 조금 더 자라자 더 크고 튼튼한 책상이 또 추가되었다.
반면, 내 자리는 식탁이었다.
아이를 재우고 노트북을 켜려면, 식탁 위를 부랴부랴 치워야 했다. 서재는 여전히 있었지만, 그곳은 남편의 공간이었다.
검은색 책상과 의자, 두 개의 모니터, 알 수 없는 장비들이 온몸으로
여기에 네 자리는 없어
라고 말하는 듯했다. 불만은 없었다. 남편은 재택근무와 회의가 많았기에 반드시 서재가 필요했다.
하지만 남편의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그곳은 점점 더 그만의 공간이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왠지 이방인이 된 듯했다.
게다가 옷방이 둘째 차지가 되면서 내 옷을 서재에 걸자 남편의 불편한 기색이 눈에 띄게 늘었다.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
남편이 옷에 대해 뭐라고 할 때마다 이 방의 주인이 그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부부의 책상이 나란히 있을 때는 각자가 좋아하는 책과 취미가 함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의 책상만 있고, 그나마 남은 내 책장은 아이들 책으로 가득하다.
한때 내가 모았던 피규어들도 비닐봉지에 둘둘 쌓여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
첫째는 안방을 당연하게 자기 방이라고 부른다.
공용 공간을 제외하면 사적인 공간의 상징은 결국 ‘개인의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존재감이 있는 건 ‘책상’이었다.
7살 아이도 크기별로 자기 책상이 두 개나 있는데, 내게는 책상 대신 식탁이 있다.
아이들을 재우고 어두운 거실과 부엌의 가운데쯤에
은은한 조명을 켜면, 그제야 나의 공간이 시작됐다.
그래도 괜찮았다. 짐이 많은 어린아이가 둘이나 있는 집이고, 남편에게는 방이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 마음도 속삭였다.
나에게도 작은 방이 필요하다고.
나만의 물건으로 채워진, 오롯한 내 공간이.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작은 화장대를 하나 사는 게 어때?’
아마도 자기 책상이 침범당하는 게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화장대가 아니라 책상을 찾기 시작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노트북과 몇 권의 책을 올려도 충분하며, 무엇보다 내 취향을 저격하는 책상!
마침내 하나를 고르고, 다음날 배송을 받았다.
남편이 조립을 해주고 드디어 내 책상이 다시 생겼다.
비록 작은 책상이지만 마음 한켠이 저릿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이건 단순히 가구가 아니었다.
그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며 나는 다짐했다.
여기가 내 자리야.
이제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