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랑 대충 먹자.”
아이들이 남긴 반찬,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통 몇 개가 모이면 그게 우리의 저녁상.
언젠가부터 부부의 식사는 늘 ‘대충’이었다.
예전엔 여유 있게 하루를 정리하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저녁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난 뒤, 저녁 식사는 최대한 빠르게,설거지는 최소로 끝내야 하는 미션이 되었다.
시각적인 즐거움이 아이들의 식습관 형성에 중요하다는 글을 읽은 뒤로는 플레이팅에도 신경을 썼다.
아이들의 접시는 늘 생기가 넘쳤다.
곰이 뛰놀고 돌고래가 헤엄치는 그릇 위에 알록달록한과일을 담았다. 나는 늘 투박한 접시, 그리고 아이들이 남긴 음식이 전부였다. 남은 재료를 대충 모아, 아이들이 쓰던 접시에 담아 허겁지겁 먹기 바빴다.
메뉴를 고를 때마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옵션을 선택했다. 항상 순한 맛에 '아이와 함께 먹어요'를 체크했다. 결국 남편과 나는 심심한 맛만 씹어야 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임신 때부터 줄어든 위의 용량,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식어버린 음식들. 그 속에서 내 식욕은 점점 사라졌다.
그리고 ‘엄마들은 다 이러고 살지’라며, 그것을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였다.
어느 순간 애들이 남긴 건 먹기 싫더라.
내가 너무 초라해져서..
동갑내기 아이를 키우는 친구의 말을 들어서였을까?
나도 먹다 남은 음식이 아닌 나를 위한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 밥을 준비하면서 내 몫의 음식을 함께 준비한다. 내가 먹을 과일도 예쁘게 자르고, 좋아하는 접시에 담는다. 배달 음식을 시킬 때도, 이제는 처음부터 어른 몫을 따로 주문한다.
“이건 엄마 아빠 음식이야. 너희들은 매워.”
지난 주말 아침, 아이들이 먹을 샌드위치를 준비하면서 남편과 내 몫까지 네 개를 한꺼번에 만들었다.
늘 아이들 것만 부랴부랴 먼저 챙기고 내 몫은 뒷전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기다려, 곧 다 돼.”
아이들의 보챔에도 흔들리지 않고, 네 명 모두의 샌드위치를 정성껏 완성했다. 예쁘게 깎은 과일을 곁들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접시에 담아 남편에게 내주었다. 말은 없었지만, 고마움이 묻어나는 그의 표정이 보였다. 그날 아침, 우리 가족은 함께 앉아 행복하게 아침을 먹었다.
그러나 ‘어떻게 먹느냐’는 더 중요하다.
대충 때우는 식사는 배를 채울 수는 있어도,
마음까지 채워주지는 못했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끼를 정성껏 준비했을 때, 내 안에 여유와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오늘도 수고했어.”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그 한 끼가, 나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