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나를 살리는 힘

by 훈연

식탁 위엔 각종 약으로 가득하다.

아이들의 감기약, 철분제, 비타민D, 유산균, 아연, 오메가 3, 칼슘젤리, 율무영양제.

상비약 칸에는 종류별로 준비된 세 가지 해열제, 배탈에 먹는 약이 두 종류, 변비약, 알레르기 약, 비염약, 코스프레이에 밴드까지 크기와 모양별로 다양하다. 공룡이 웃는 밴드, 뽀로로가 수영하는 밴드, 열이 나면 붙이는 카봇 패치까지.



누가 보면 어디 많이 아픈가 싶겠지만, 어린아이를 키우는 집에 이 정도는 기본이다.

안방의 구급함은 아직 말도 안 꺼냈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먹는 약은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을 목표로 준비해 놓는 것이 대부분이다. 맛없다는 이유로 잘 안 먹어도 있어야 마음이 놓이고, 하루 이틀 건너뛰고 먹여도 먹이고 나면 뿌듯했다. 유행하는 열감기를 행여 지나치기라도하면 새로 산 영양제 덕이라 믿으며, 긓렇게 약은 마치 부적처럼 집을 채워갔다.


그 옆으로는 어른들의 약이 놓여 있다.

목감기약, 피로회복제, 소염진통제, 근육이완제, 소화제, 식도염약, 두통약, 탈모방지약, 방광염약, 칼슘약, 비타민 D, 인공눈물, 안약, 습진약, 멍연고..

대부분 몸 어디가 고장이 나야 먹는 약이다. 남편은 종종 (목디스크로 의심되지만, 굳이 아니라고 하는) 목이 찌릿찌릿한 증상이 있어 근육이완제를 먹는다. 작년에 갑자기 담관염으로 수술하고 나서는 간에 좋은 약을 매일 먹고, 몇 년 전 녹내장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은 뒤로는 6개월마다는 안압 검사를 한다. 그나마 탈모방지약은 미용을 위해 먹는 것이니 다행이랄까?


나는 늘 소화제를 달고 산다.

임신 이후부터 생긴 역류성 식도염, 어릴 때부터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위염과 편두통. 컴퓨터와 휴대폰 탓에 생기는 눈병. 거기에 아이들을 돌보느라 여기저기 멍드는 건 덤이다.


친정 엄마는 남편과 내가 건강해야 한다며 아이들 영양제 말고 부부의 것도 사라고 하셨다.

엽산, 칼슘, 철분, 유산균, 비타민D, 오메가 3.

제일 비싸고 좋은 것으로 사서 빠짐없이 먹었던 내 첫 영양제. 먹을 필요를 못 느꼈던 영양제를 본격적으로 찾아보고 먹은 것도 임신을 하면서부터니까, 그때도 나보다는 아이를 위한 것이었다.


출산 후에도 나를 위한 약은 산후 보약이 전부였다.

100일도 안 된 아가는 비타민 D 한 방울부터 시작해 온갖 영양제를 접하기 시작했다. 근육과 뼈의 성장을 위해, 황금 변을 위해, 면역력을 위해.

나도 출산 후 관리가 중요하다는 말에 영양제 두어 가지를 사봤지만, 매번 먹는 걸 잊은 채 쓰레기통에 버리기 일쑤였다. 지금도 건강을 위해 챙겨 먹는 건 거의 없다. 세일할 때 산 홍삼스틱, 선물로 받은 비타민 C, 급할 때 먹는 유산균 정도.

아이들 영양제는 빠짐없이 먹이면서, 나와 남편의 건강은 늘 뒷전이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스스로를 합리화했지만, 사실은 방치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더 이상은 안 돼. 내 건강은 내가 지킨다!!

산부인과에서 골다공증 주의 신호를 받은 뒤로는 칼슘과 비타민D를 매일 챙겨 먹는다.
내 유산균도 빠지지 않고 먹고, 홍삼도 잊지 않는다.
2주째 이어진 목감기를 위해 도라지청도 구입했다.

잊지 않기 위해 냉장고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내가 먹어야 할 약 이름을 붙여두었다. 최소한 이틀에 한 번은 챙길 수 있겠지.



하지만 약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내 몸을 근본적으로 튼튼하게 만드는 일.

직장 동료의 권유로 압박 밴드와 아령을 사서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주말마다 아파트 계단 18층을 세 번씩 오르내리며 땀을 흘렸다. 출근할 때, 회사에서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택했다.

그래서 전보다 조금 건강해졌냐고 묻는다면, 인바디 점수가 약간 오른 것과 계단 오를 때 전보다 숨이 덜 찬 것 정도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돌보겠다고 마음먹은 사실 그 자체였다.

아이들에게만 주던 좋은 것들을,

이제는 나에게도 주려 한다.

나를 더 챙기고,

스스로 움직이며,

건강한 습관을 갖고자 노력하는 것.

그것이 진짜 나를 살리는 힘이었다.


오늘도 나는 한 계단씩 나의 삶을 오른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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