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떻게 놀까?

by 훈연
"세진이 피아노 학원 보낼까? "

태권도와 미술학원은 이미 다니고 있다. 전인교육 같은 거창한 목표를 세운 건 아니지만, 아이에게 음·미·체를 골고루 접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다. 단순히 학업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을 경험하고, 취미로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인생이었으면 하는 바람. 아마 대부분의 부모 마음이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다양한 활동을 접하게 하려면, 부모는 낮에 일하고 퇴근 후에도 아이와 함께 놀아줘야 한다. 부모의 취미는 무엇인가? 취미를 누릴 시간은커녕, 개발할 여유도 없다. 시간만 있으면 눕고 싶은 게 현실이다. 취미를 권하는 엄마 아빠는 정작 일과 육아 이 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래도 한두 가지는 했던 것 같다. 취미는 삶의 활력을 주니까.

그것을 알기에 아이도 취미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이들 책에 밀려 뒤켠에 방치된 나의 취미 목록을 살펴본다. 먼지 묻은 채 기력을 잃어가는 기타, 살 때만 몇 번 쳐보고 처박아둔 전자피아노(의자는 그나마 화장대로 쓰인다), 아이들 침에 익사한 리코더, 앞장만 채운 캘리그래피와 보태니컬 아트책. 무엇 하나 진득하게 해내지 못한 나의 성향 탓도 있겠지만, 그럴 여유와 시간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휴직 후 육아에만 올인하는 내가 싫어 집에서 할 수 있던 취미로 처음 시작한 것이 캘리그래피였다. 몇 번 열심히 썼지만 원하는 펜이 없어서, 아이 울음에 쓸만하면 멈춰서, 늘지 않는 실력을 이유로 금세 접었다. 보태니컬 아트는 전문가용 48색 색연필까지 사서 만반의 준비를 마쳤지만, 그리기를 좋아하는 큰아이의 손에 쥐어져 부러지고 닳아 없어졌다.

“아니야, 이런 게 아니야.”
나만 할 수 있는 것을 사자. 이번엔 리코더였다.

“예전엔 내가 한 리코더 했지!”

초등학교 때 반 대표로 항상 나가 리코더를 불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마침 가격도 저렴하다. 악보까지 사서 몇 곡은 불었지만 이내 아이들에게 뺏겨 침 범벅이 되고, 나는 조용히 리코더를 서랍에 넣는다.


“이런 건 안 되겠어. 오랜만에 기타나 꺼내볼까.”
“퉁… 둔…”
줄을 튕기자 힘없고 둔탁한 소리가 늘어진다. 몇 년을 방치된 기타가 나를 원망하는 소리를 내는 것 같다. 줄 갈이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줄만 사놓고 기타는 다시 구석에 세워둔다.

그래, 피아노!

어차피 첫째도 배울 거니 오래 두고 함께 할 수 있겠지.큰맘 먹고 전자피아노를 샀다. 건반의 묵직한 느낌, 맑은 소리에 잠깐 설렜다. 그러나 부피를 생각지 못했다. 마땅한 자리가 없어 구석에 두었다 연주할 때마다 꺼내야 했다. 그러나 거치대를 꺼내고 각종 선을 연결하는 일은 생각보다 번거로워 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아이들도 몇 번은 흥미를 보였으나 곧 피아노 건반이 장난감 자동차의 도로가 되자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마음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화를 내게 되었다. 결국 아이와 함께 피아노를 치는 장면을 상상하며 큰마음먹고 산 고가의 전자피아노는 작은 방구석에 물구나무선 채 나의 손길만 기다리게 되었다.


나의 취미들은 늘 ‘언젠가’의 목록으로만 남았다.
성장하는 아이들에게만 취미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는 CNN 인터뷰에서 “성인도 유년기의 취미를 즐겨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뇌의 변연계와 뇌간을 자극해 정서적 회복력을 키우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의 취미를 이어가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활력이 넘치고, 보다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았다.


취미는 단순한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삶에 리듬과 활력을 준다. 취미가 있으면 하루가 달라지고, 대화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가 더 생생해진다.

매일 퇴근하여 직장 일과 육아 얘기만 할 수는 없다. 물론 이 둘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삶의 다양한 색깔과 즐거움을 놓치게 된다.


움직이는 것을 싫어했던 내가 유일하게 즐겁게 했던 배드민턴. 퇴근 후 배드민턴을 치던 날이면 유난히 힘이 났다. 주말에 남편과 공터에서 라켓을 휘두르며 함께 땀 흘리고 스매시를 날리던 시간. 그 순간의 나는 확실히 에너지가 넘쳤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나의 소소한 즐거움은 미루거나 포기하였다. 별것 아니라고 여겼지만, 사실 삶은 육아와 직장이라는 두 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잊고 있던 친구와의 전화 한 통, 오랜만에 꺼내 입은 옷이 주는 즐거움, 뜻밖의 선물, 피어나는 꽃 한 송이, 달라진 하늘빛. 이렇게 별 것 아니라 생각하는 작은 것들이 모여 삶을 이룬다.


나를 지탱하는 무언가가 빠져 허무함과 우울에 빠져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내 삶에서 사라진 ‘취미’가 원인일수 있다.

취미는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삶에 의미를 더해준다.

‘내일은 반드시 기타 줄을 갈아야지. ’

그렇게 다짐하는 내 곁에서, 놀이터에 나가려 공을 챙기던 남편이 말했다.


“우리, 배드민턴도 챙겨 갈까?”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그래, 오늘은 이렇게 놀아보자.
목요일 연재
이전 05화4.나를 살리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