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는 법
웃음이라는 갑옷
그러던 어느 날부터,
나는 부모님을 뵙고 온 날이면
되도록 피하려 했던 공황장애 약을
다시 찾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각성제와 공황 약을 함께 복용하는 건
나에게 맞지 않다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남편의 추천으로
상담 전문 병원으로 병원을 옮기게 되었다.
첫 상담에서 선생님은
우울도 검사 수치가 꽤 높게 나온 점과,
간단한 신체 상태, 가족 관계 등을 확인하더니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율무 씨는… 그만 웃으세요.”
나는 깜짝 놀라
“네?”
하고 되물었다.
선생님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율무님은, 아주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면서도
듣는 사람이 불편해할까봐 계속 웃고 계세요.
그런데요, 이제는 본인부터 돌봐야 해요.
감정에 솔직해지세요.
그렇게 꾹꾹 눌러두고 살아가는 건,
자기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에요.”
그 말은 따뜻한 꾸짖음처럼 다가왔다.
순간, 안도감이 섞인 눈물이 흘렀다.
울음조차 마음 편히 할 수 없었던 내게,
그 눈물은 뜻밖에도 반가운 감정이었다.
선생님은 휴지를 건네며 말했다.
“괜찮아지고 싶어서 오신 거잖아요.
감정을 털어내고 싶어서요.
그래서 제가 여기 있는 거고요.
이제는 조금 덜 웃고,
더 솔직해지는 연습을 해보세요.”
그 말들은
어떤 전문적인 이론보다도,
친구가 건네는 진심 어린 조언처럼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내가 웃으면
엄마와 아빠는 조금씩 누그러졌고,
사람들은
“네가 웃으면 주변이 환해진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내 웃음에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웃음을 슬픔을 가두는 데 사용했다.
사람들이 날 좋아하게 만들기 위한,
무기이자 방패로 삼았다.
그리고 안도했다.
그 웃음 덕에, 세상이 나를 덜 불편해하니까.
그 웃음 덕에, 내가 덜 상처받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 웃음을 꿰뚫어본 단 한 사람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주 작고 말갛게 무너졌다.
-
그렇게 20여 분간의 상담을 마치고
선생님은 나에게
추천해주고싶은 약을 처방해주셨다.
약값까지 포함해 지불한 금액은
2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한때, 1시간에 40만 원을 내고
상담을 받았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만큼 저렴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작지 않은 울림이 담긴 그 상담료 속에서,
나는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곳을 찾는 모든 사람이
조금 더 가볍고 편안해지길 바라는
의사 선생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는 걸.
-
가족이라는 단어가 너무 아플때
두 번째 상담에서,
가족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작은 고슴도치 인형 네 마리를 꺼내 보여주며 말씀하셨다.
“여기 고슴도치 가족 보이시죠?
서로가 서로를 껴안고 있을 땐 괜찮지만…
보세요, 한쪽이 등을 돌리면
가시가 다른 쪽을 아프게 찌르잖아요.
이럴 땐,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해요.
저는 상담 오시는 분들께
너무 아프게 만드는 관계는,
가족이라도 잠시 멀어지라고 말씀드려요.”
그리고 이어진 말.
“애써 효녀가 되려고 하지 마세요, 율무님.
나부터 챙겨야,
나중에 가족도 더 건강한 방식으로 챙길 수 있어요.”
전문의인 선생님조차
‘가족 관계는 잠시 내려놔도 괜찮다’고 말하다니—
나는 처음으로
그 말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언제나 조용히 곁을 지켜준,
나만의 고슴도치 같은 남편의 조언도
조금 더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고.
그는 누구보다 오래 내 옆에서 나를 보며
고민하며 바라봐 준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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