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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상 Dec 08. 2024

교장의 역할이 안 보인다 2

- 교장이 변하면 학교가 살아난다

‘교실에 자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자는 아이들은 우리 학교밖에 없습니다...'


한 바퀴 교실들을 순시하고 나서 전 교사들에게 뿌려진 교장의 메시지입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자는 아이들이 없다는 소리에 옆에 있는 교사들이 '외계에서 살다왔나..'하고 이구동성으로 어이없는 듯 한탄을 합니다. 정확한 학교 현실에 대한 인식도 결여돼 있고, 그리고 문제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제공하지 못하면서 그저 교사들만을 질책하고자 하는 교장의 무능함에 대한 교사들의 냉소입니다. 교사로 근무하면서 점차 교장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이미 접은 지 오래이지만 지방학교로 내려와서는 더욱 절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작 이런 현상이 진정 우리 학교만의 문제인지, 우리 학교만의 문제라면 왜 이렇게 됐는지 등 왜 아이들이 자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이에 대한 대책을 교사들과 논의해 보고, 공동 작업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은 보여주지 못한 채 그저 잘하라는 투로 교사들만을 질책합니다.


'멍부'

멍청한데 부지런한 리더를 일컫는 말입니다. 전문성이 결여된 리더가 자신의 소신을 펼치기 위해 부지런하게 움직일 때 조직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구성원들은 더욱 피곤해집니다. 정당한 전문성을 가지지 못한 채 조직 운영에 있어 ‘자신만의 철학’이 가장 중요한 기준, 원칙이라는 확신이 너무 강해서 생겨납니다. 새로운 개혁 정신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서울 공대 이면우 교수는 조직을 망하게 하는 가장 위험한 관리자 유형으로, 무지함에도 이를 모르고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부지런을 떠는 관리자라고 지적했습니다. 기업가들도 이구동성으로 꼽는 가장 최악의 리더 유형입니다. 이 말이 교육현장에 근무하면서 왜 이렇게 자주 떠올려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람직한 교육적 철학과 전문성도 없이 지나친 열의로 그저 자신만의 신념을 밀어붙이고자 하는 관리자들 모습을 마주칠 때마다 자꾸 이 말이 생각납니다. 마치 심리학에서 말하는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는 인지 편향 현상과 맥을 같이 합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인하여 생긴 곤경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 용감하게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한 나라에서는 국민들이, 기업에서는 구성원들이, 그리고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피곤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학교 현장에 있으면서 교장, 교감에게 가장 아쉬운 점은 전문가 다운 지도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직이 전문직이라고 하나 실상 교육현장에는 전문성을 갖춘 교장, 교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더 큰 문제는 교사들을 지도하고 이끌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관리자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상명하달에 익숙해있는 관리자들인지라 지도력과 전문성도 없으면서 교사들과의 협의나 공동 지성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조차 하질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겪고 성장한 그대로 교사들에게 지시와 질책만 합니다. 


능력과 승진, 당연히 상식적인 연관성을 가져야 할 두 단어가 교직 사회에서는 거의 어울리지 못하는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교사들 스스로 교장, 교감을 길러내는 승진제도가 오히려 교육, 그리고 학교 발전에 역행이 되는, 교육현장에서의 전문가 양성을 방해하는 왜곡된 제도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학교현장에 교육전문가가 없는 것으로 입증됩니다. 각 분야마다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경험하고 성장한 전문가들이 그 분야의 지도자로 자리를 잡습니다. 하지만 학교현장에서는 20-30년의 교사 경력을 쌓고, 그 어렵고 힘들다는 승진 과정을 거쳤음에도 대부분의 교사들조차 교감, 교장을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러한 관리자들 밑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왜곡된 교사 성장과정이 제대로 된 전문가를 양성하질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업 시간 아이들 발표 자료에 있던 유럽의 작은 부자 나라 룩셈부르크 관련 다큐 동영상을 보면서 나도 배운 게 하나 있습니다. 어느 회사에 근무하는 나이 든 과장이 회사에서 부사장 자리를 권하는데도 자기 능력 밖의 자리라며 결단코 사양하는 경우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대충 이러했던 것 같습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윗자리에 가게 되면 아랫사람도 피곤하고 회사 일도 안된다. 그리고 능력 없는 나 자신도 일이 버거워 피곤해지고 삶 자체가 힘들어지게 된다.’ 

자기 능력 밖의 일을 맡게 되면 무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을 해치고 결국은 회사를 해친다는 논리였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같겠지만 내가 있는 우리 학교도 이 분이 걱정하는 상태가 아닌가 싶은 생각에 더욱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교사들이 제대로 응집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 힘을 뻗지 못하는 이유도 믿고 따를 만한 관리자, 즉 전문가다운 리더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에 기인합니다. 즉, 롤 모델이 없습니다. 오직 교육적 가치의 추구보다는 승진만을 위해 애쓴 사람만이 바둥거리며 올라간 길, 그리고 그렇게 올라온 사람의 자질이란 당연하게 다른 교사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단지 관리자이기에 따르고자 하는 것일 뿐, 진심으로 그들을 따르고자 하는 교사들도 없습니다. 교육자로서의 철학이나 전문가적 자질을 보이거나, 최소한 인격적인 모습이라도 보이는 관리자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 정작 학교 현장에 교사들이 진정하게 믿고 배울만한 전문가다운 관리자가 없다는 것, 이것이 우리 교사의 전문성 신장에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내가 교직에 근무하면서 보고 경험한 바에 의하면 우리 교장들이 갖추어야 할 전문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이론적으로 단순한 관리자가 아닌 이론적인 지식과 전문적인 식견을 근거로 하는 전문적인 학교 교육지원자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론적인 정의와는 별도로 교육현장에서 이론적인 정의와 최소한 유사한 교장의 역할, 교장의 전문성을 정확히 감지해 본 적이 없습니다. 실제적으로 그런 전문가로서의 교장, 교감을 경험해 본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장의 전문성(전문적 권위) 부족이니 머니 해도 중학교에서는 모를까 고등학교에서는 실제 전문성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발휘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교장이 교사들의 수업이나 평가 관련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지만 수능이라는 입시체제에 갇혀있는 한 교과서 위주의 강의식 수업에 머라 할 수 없는 것이고, 객관식 평가문항에 머라 할 수 없습니다. 교장의 수업 지도성 자체를 교사들이 인정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도 한몫합니다. 교사들은 교장에게 혁신을 주도할 전문적인 식견까지 갖춰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현행 승진제도로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역량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라지도 않습니다. 평소에 전문적 권위와 인간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 교장이나 교감의 수업 참관이나 지도는 단순히 관리적 기능의 일환에 불과한 것이라고 교사들이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신의 능력, 그리고 교육적 소신을 가지고 전문성을 갖추려고 노력하면서 올라간 교감, 교장들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장들이 마치 관공서의 관리자들처럼 주로 행정적, 관리적 기능을 그들의 중요 업무로 보고 있는 듯하니 정작 교육자 역할을 해내는 전문가가 존재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지도 교수의 말로는 주(州)마다 다르지만 3년 이상의 교육경력 교사들 중 교장을 원하는 교사들은 교육학 석사나 박사 학위를 소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교장 자격을 위한 1년 이상의 심화 프로그램(우리의 박사학위 대학원 과정 같은)을 마치면 교육청에서 심사하여 교장 자격증을 제공해 줍니다. 그리고 그 연수과정에서 전문성과 교육철학을 공유하게 되고, 바람직한 교장의 모습을 충분히 체험, 내면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심화 연수과정을 통하여만이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가 지적한 문제점, 즉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는 심화된 훈련 과정을 통해 능력이 매우 나아지고 난 후에야, 이전의 능력 부족을 알아보고 인정하며 성장한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장 지원자들에게도 전문성 신장을 위한 이런 심화 연수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결국 교사 성장 과정에서의 문제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학교 현장에 전문가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교장, 교감을 길러내는 승진제도가 오히려 교육현장에서의 전문가 양성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교육, 그리고 학교 발전에 역행이 되는 왜곡된 제도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교사 승진 점수를 쌓기 위해 워드 자격증까지 따야 하니 대부분의 교사들이 승진 점수에 도움이 안 되는 전문적 능력들에는 시간을 투자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최악의 경우 무능력하고 무지한 교사들이 학교교육을 말아먹을 수 있는 역기능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무능력하고 무지한 교사들에게 오히려 충분히 가능한 탈출구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능력하고 무지한 교사들이 승진하기로 맘을 먹고 죽자 살자 매달리고 버티면 교사의 전문적 능력이 아닌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때울 수 있는 현행 승진제도의 장점(?) 때문입니다. 이러니 교감, 교장의 교육적 전문성이 향상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우리가 바라는 교육적 전문성과는 다른 방향의 능력, 즉 행정력과 관리적 능력만 신장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니 언제 교사로서의 전문적인 자질을 쌓고 학생들에게 맘껏 펼칠 수 있겠습니까? 


또한 학교 현장에서 주로 서류와 관리적 기능에 강조하는 관리자들을 보면서 성장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별다른 사고 없이 아이들만 잘 통제하거나, 주어진 일들만 충실하게 수행하는 교사들을 성실하고 능력 있는 교사로 인정해 주고 적극 지원해 줍니다. 자신들의 운영 철학과 다르거나, 굳이 새로운 대안이나 건설적인 비판을 제시하는 교사는 평온한 학교 사회를 뒤흔드는 불청객 취급을 받을 뿐입니다. 이러한 역할 기대에 힘입어 교사들은 다양한 전문적 능력들을 갖추고자 하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경륜과 감각에만 의존한 채, 그저 교과서 위주의 수업이나 업무에 충실하고, 관리자의 눈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묵묵히 움직일 뿐입니다. 교사로서 정작 갖추어야 할 능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머지 일들은 오직 자신의 감각과 그동안의 경륜에 의하여 대처해갈뿐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교사 성장과정이 비전문적인 관리자들을 양성하게끔 되어있습니다. 말로만 교육 자치이지 여전히 독재 시절의 획일적인 교육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전근대적 수직적인 메커니즘이 학교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교사나 교감이 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교장의 통제하에, 또 교장은 평가자인 교육청의 눈치를 봐야 하고, 또는 학교에 직접적인 정책을 투입하고 관철해야 하는 교육청이나 교육부는 학교를 지시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근평과 연계한 승진제도를 통해 교장들이 자기들의 입장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관리자들을 통제함으로써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해집니다. 그러니 교장은 교사들이나 아이들에 대한 관심보다 교육청의 지도와 감독을 더 철저히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학교를 운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가 변화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바람직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학교현장의 문제를 직시하며 대처할 수 있는 관리자들 보다는 상급기관의 눈치를 보며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관리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교장이 바람직한 교육적 철학을 소유하고 전문성을 갖춘다면 지금의 학교는 엄청나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교장이 전문성을 갖춘다면 교장들이 해야 하고, 또 교사들을 도와줄 수 있는 역할은 무궁무진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교장들은 나서고 싶지만 전문적 능력이 안되어서 스스로 그 역할을 한정시키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같이 꾸역꾸역 승진 점수만 채우면 교장이 될 수 있는 시스템보다는 미국처럼 진정 제대로 하고 싶은 교장이 되고자 하는 교사들에게는 최소한 1년간 전문적이고 심화된 전문가 집중 양성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사들이 힘들어하는 학생들 상담도 해주고, 각 교과 교사들 수업이 어떻게 계획하고 진행되는지 들어보고 교육의 목표라는 큰 틀에서 토론, 보완, 개선도 해줄 수 있는 그런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제대로 훈련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교장이 전문적인 자질을 살려 경험이 미약한 교사들에게 모범적인 수업시연도 해줄 수 있으면.. 하는 소망은 꿈같은 얘기 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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