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rit
아침부터 잔뜩 흐려진 하늘은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제 우아한 올레순을 떠나 <게이랑에르 - 트롤스티겐 루트>의 하이라이트인 트롤스티겐을 향한다. 아래쪽은 눈으로 가로막혀 게이랑에르 피오르는 우회해서 가야 했지만,, 루트 반대편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는 트롤스티겐은 접근이 가능했다. 전망대로 가는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구불구불 올라가는 11개의 헤어핀 커브 도로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 중 하나다. 성수기에는 차량들이 줄지어서 오르고 내리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트롤스티겐은 방문객 센터에는 콘크리트, 강철과 유리로 만들어진 전망대로 이어지는 산책로와. 부지 입구에는 계단식 물웅덩이가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과 갤러리가 있는 각진 콘크리트 산장도 있다.
트롤스티겐 전망대는 트롤스티겐 도로 위로 200m 높이에 있는 난간 위로 튀어나와 있어 험준한 산과 깊은 피요르드의 경이로운 풍경을 가로질러 아찔한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경로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그러나, 길은 낙석이 떨어져 임시로 급하게 막혀 있었고 기대하던 것들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여행을 하면서 이토록 날씨와 예상 못한 일들로 힘든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지금까지 우산 한 번을 쓰지 않고 여행을 했었는데…
기운을 내서 오늘의 기대작인 아틸란틱 로드 The Atlantic road로 간다. 바다가 만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정, 노르웨이 대서양 도로는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로, 이 구간은 노르웨이의 '세기의 공학적 업적'으로 선정되었으며,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드라이빙 여행으로 알려져 있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노르웨이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등 엄청난 형용사들은 다 가지고 있는 듯한데 Lonely Planet의 여행 가이드에서는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고 했단다.
총길이 8.69km에 걸쳐 12개의 낮은 다리를 통과하면서 서쪽 피오르 Molde와 크리스티순 Kristiansund을 연결하는 도로로, 구불구불 한 길이 바다 끝까지 이어지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바다경관이 펼쳐진다.. 섬에서 섬으로 우아하게 곡선을 그리는 시각적 즐거움과 자연과 현대공학이 만난 매우 독특한 드라이빙 경험을 할 수 있다. 1983년에 시작되어 1989년에 개통된 건축 프로젝트 동안 노동자들은 최대 12개의 허리케인을 경험했다고.
루트에는 흥미로운 명소들이 많이 있는데,
해안 산책로를 따라 바위와 언덕사이에 여러 개의 흰색 기둥 모양의 조각 Columna Transatlantica이 있는 하가 Hågå 와 방파제 끝에 위치해 바람과 파도로부터 보호해 주는 유리벽으로 지어진 아스케보겐 Askevågen 전망 베란다에서는 바다, 군도, 산악 해안을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스토르세이순데 다리 Storrsandt Bridge는 가장 높은 아치형 교량으로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강한 돌풍과 거대한 파도가 들이치는 아찔한 날씨를 고려해 다리의 설계 시 직선이 아닌 곡선형 다리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 곡선형태는 보는 각도에 따라 하늘로 올라가 끝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둥글게 말린 모양 위로 차량들이 걸쳐져 있는 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해서 술 취한 다리(Drunk bridge)'로도 불리며 관심을 받고 있다. 세계 자동차 광고 촬영지로도 인기인데 다리를 배경으로 10여 개 이상의 TV CF가 제작되기도 했다고 한다.
미르베어홀름 다리 Myrbærholmbrua 양쪽에 특별히 건설된 낚시 산책로에서 안전하게 낚시를 할 수 있는데, 강한 조류의 맑고 깨끗한 바닷물에서 대구, 명태, 고등어, 송어를 잡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산책로 Atlanterhavsvegen svevesti와 서비스 센터가 있는 엘두소야 Eldhusøya는 가장 큰 피크닉 지역으로, 카페, 관광 안내소, 화장실과 넓은 주차 공간이 있다. 산책로는 보행자 이동에 취약한 습지로 인해 기둥에 고정되어 떠 있는 격자로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데, 안내소 건물 꼭대기까지 굽이굽이 이어져있고 꼭대기에서는 지평선이 보이는 군도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산책로를 걷거나 이상한 다리를 건너가거나 세찬 파도가 있는 날에는 흥분되는 경험을 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이 길은 하늘에서 내려다봐야 제대로다.
종일 내리는 비 때문에 몇 개의 멋진 곳들을 스치듯 지나쳐야 했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맑고 깨끗한 하늘도 볼 수는 없었다. 불편한 날씨로 기대했던 멋진 곳들이 포기되고 차 안에서 시간이 길어진 탓에 분위기는 어두워졌고 침묵은 길어져만 갔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트론해임 숙소에 도착했다. 대학기숙사로도 사용되는 호스텔의 공동주방에서는 여기저기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우리도 가져온 김치와 노르웨이 어묵으로 김치찌개를 끓여 저녁을 먹고 남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쪽으로는 맑은 날씨가 이어지는데 반해 우리가 나아가는 북쪽으로는 비구름이 계속되고 있어서, 이대로 날씨의 고난을 받으면서 북쪽으로 계속 갈 것인지 유턴해서 남쪽에서 맑은 날씨 속 즐거운 여행을 할 것인지 고민이 깊어갔지만... 계획대로 날씨를 이겨보자고 다짐하며 저녁을 마무리했다.
이스라엘에게 즉각 휴전에 응하고 일방적인 팔레스타인 민간인 집단학살을 중단하라는 연대의 목소리다.
트론헤임 Trondheim은 노르웨이 첨단기술의 수도이자 대학 도시로, 올드타운에서는 니델바 강(Nidelva)을 따라 화려한 색채의 오래된 목조주택이 늘어서있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산책하기에 좋다. 걷다 보면 사람들로 붐비는 전망대에서 발견된 종이로 만들어진 아트작품. 그 누구도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치우지 않는다, 전날 저녁에도 다음날에도 그 자리에 놓여있었다.
미국의 문명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 듀런트가 <역사의 교훈>에서 역사에 기록된 3,421년 중 전쟁이 없었던 해는 268년, 7.8%에 불과했다고,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도 "1945년부터 1990년까지 2,340주 동안 지구촌에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고작 3주일뿐"이었다고 했다.
매년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전쟁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Uppsala Conflict Data Program (UCDP),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그리고 국제평화연구소(INSTITUTE FOR ECONOMICS AND PEACE, IEP)에서 관련된 기록을 살펴보면, 인류는 끔찍한 제1,2차 대전을 겪고도 2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전쟁을 하고 있다. 평화에 대한 기대와는 반대로 세계 각지에서 크고 작은 분쟁과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생명과 가족, 삶의 터전과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준비는 되어있는가.
대의명분도 없는 특정세력의 이익에 따른 다툼들, 인류에게 평화로운 공존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가장 나쁜 평화라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
한국에도 번역된 소설 <전쟁의 슬픔>의 베트남 작가 바오닌이 한 말이다.
숙소를 나와 북쪽으로 나아간다. 로포텐으로 이동하는 페리선착장이 있는 보되에 가기 위해 중간지점인 모이라나에서 하루를 쉬어간다.
모이라나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북쪽에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인 노르트란트에 있는 산업도시로, '모 Mo'는 언덕을 의미하고, '라나 Rana'는 강의 이름이다. 북해로 이어지는 피오르에 있는 라나 강어귀에 있는 어부와 농사를 짓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19세기 후반에 철광석이 발견되면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이 광석을 채굴하기 위해 해안까지 이어지는 철도를 건설했다. 지금은 광산, 전력과, 콜라 생산,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제철소, 노르웨이 최초의 배터리 공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이 이끄는 도시로 확장되었고, 트론해임부터 모이라나까지는 기차로도 이동할 수 있다.
도착한 날이 일요일이라 마트나 식당들도 거의 문을 닫은 상태였지만, 다행히도 중국집은 오픈 상태였다. 게다가 구글평점도 높은 나름 괜찮은 음식점이었다. 따뜻하고 매콤한 음식으로 몸과 마음은 점점 따뜻해졌다. 사장님은 메뉴에도 없는 볶음면을 흔쾌히 요리해 주었다. 환한 미소만큼 맛있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는 노르웨이 북부 철도의 "아버지"로 알려진 올레 토비아스 올슨 Ole Tobias의 이름을 딴 것으로 철도 역사를 강조하는 오래된 사진과 역사적인 물건들로 장식되어 있다. 객실은 오래된 기차역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는데, 트론해임의 숙소 방문에도 세계 유명 도시 이름이 붙어져 있었는데 내가 묵었던 방은 ‘뉴델리’였고 옆방은 서울이었다.
아침에는 ’ 열차 칸’에서 아침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는 오래된 기차 세트의 칸처럼 꾸며져 있고 벽에는 액자마다 예전의 모이라나 모습과 철도에서 일하는 인부의 고된 일상을 담겨있다.
잘 보존된 목조 주택이 늘어선 모홀멘의 피오르드 산책로를 따라 저녁산책을 했다. 항구 근처에 있는 키가 큰 화강암 조각상, 하브만넨 Havmannen은 노르웨이어로 ‘바다의 사람’ 또는 ‘바다 남자’"라는 뜻으로, 피오르드의 물가에서 약 15m 떨어진 곳에 서서 마을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무릎까지 물에 잠겨 있다. 인체와 공간의 관계를 묘사하는 조각품, 설치물 및 공공 예술 작품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Antony Gormley의 작품이다. 자체 미술관이 없던 노르트란트 주의 예술 프로젝트 Artscape Nordland의 일부로 바다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현대 예술과 자연환경의 조화를 보여주는 노르웨이의 해양 문화를 상징한다.
조각은 북극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데, 바다에서 어두운 실루엣을 만들고, 젖으면 완전히 검은색이 되고 마르면 은빛 회색이 된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곳에 있고 멀리서 보면 풍경 속 물체로서 존재감을 잃고서 존재하지 않는 영구적인 거주자로서. 공간 속 인간의 존재를 암시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