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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내내 날씨가 좋지 못했다. 십여 년 넘게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비가 오고 흐린 날을 본 적이 없어서 이런 날은 어떤 여행을 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기대했던 뷰포인트는 오픈이 되지 않아서 되돌아와야 했다. 의욕도 떨어지고 여행에 대한 기대가 한없이 낮아지기만 했는데, 다행히도 오늘 날씨는 햇살과 따뜻한 바람이 함께였다. 이 햇살이 로포텐 여행 끝까지 이어지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로포텐을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항공을 이용하는 것과 보되 Bodø에서 페리를 타고 가는 것인데, 우리는 렌터카를 가지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두 번째 방법으로 이동한다. 보되 선착장을 가기 전 유명한 소용돌이를 보러 간다.
조수가 바뀌면서 엄청난 양의 물이 150미터의 좁은 해협을 통과하면서 피오르 사이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 낸다는 살트스트라우멘. 우리는 만조 시간이 되지 않아 작은 소용돌이만을 볼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신기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만조와 간조의 차이는 3미터에 달할 수 있는데, 해류가 강할 때는 훨씬 크고 강한 소용돌이들이 춤추는 듯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인상적인 자연현상은 나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이 작은 소용돌이를 위한 뮤지엄까지 만드는 것을 보면 노르웨이는 이렇듯 자연을 해치지 않고 활용하면서 자신들만의 관광기준을 만들고 있는 듯하다. 시간 때를 맞추지 못한 경우, 썰물 때는 잔잔한 소용돌이는 커녕 아무것도 볼 수 없을지도.. 자세한 물때 시간이나 정보를 확인하고 방문해야 한다. 최상의 뷰는 소용돌이 바로 위를 지나가는 살트스트라우멘 다리 위에서, 다리 밑 양쪽 개울을 따라 볼 수 있다. 우리는 페리 시간 때문에 작은 소용돌이만 보고 돌아서야 했다.
페리항에 도착했을 때가 페리 출발시간보다 무려 세네 시간 빠른 시간임에도 페리를 기다리는 긴 대기줄을 보며, 미리 예약을 했다는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보되페리항에는 예약대기줄 외에 예약을 하지 못한 일반 대기줄에는 난민처럼 길게 늘어선 차들로 꽉 채워졌다. 성수기인 여름에는 페리에 타지 못해 돌아서는 차들도 상당하다고 하니 서너 시간은 기본으로 미리 도착해서 줄을 선다고 한다. 급한 용무나 섬사람들의 사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예약만으로는 운행할 수 없기 때문에 예약으로는 40%만 받고, 현장 대기로 나머지를 충당한단다. 우리는 만일을 대비해서 예약을 했음에도 페리에 탑승할 때까지도 불안한 마음이었다. 로포텐으로 들어가는 많은 차량을 소화하기 위해 모스키아행 페리는 사이즈도 크고 2층으로 되어있었다. 크기에 따라 나눠져 차고가 낮은 차들은 지하로, 캠핑카나 버스는 위층에 들어섰다. 노르웨이 페리는 자전거나 사람은 무료로 탑승한다.
드디어 모스키야 행 페리에 올랐다. 어느새 밖은 망망대해, 저 뒤로 로포텐 섬들이 검은 띠마냥 바다수평선위에 걸쳐있다. 미리 멀미약을 복용했다. 그 탓인지 울렁거리면서 졸리기 시작했다. 무기력해지는 매우 기분이 좋지 않은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 배보다는 비행이 낫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3시간을 넘게 이동했지만 파도도 잔잔하고 멀미약까지 먹어서인지 뱃멀미 없이 금세 모스케네스 Moskenes 선착장에 도착했다.
사실 북극 겨울의 풍경이 압도적인 로포텐에 반해서 가게 되었지만, 겨울만큼 여름풍광도 완벽하다는 그곳. 울퉁불퉁한 산봉우리, 작고 조용한 어촌 마을, 수정처럼 맑은 바닷물이 있는 하얀 해변의 조합으로 숨 막힐 듯한 경치가 쉼 없이 이어지는 곳, 로포텐에 왔다.
어업은 로포텐 역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지역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으로 남아 있다. 레이네 Reine, 누스피오르 Nusfjord, 오 Å, 헤닝스베르 Henningsvær의 어촌 마을을 하나씩 찾아갈 예정이다.
숙소인 어부의 집, 퍼부어 Rorbuer에 도착해 짐을 푼다. 빨간색 나무로 물 위에 지어진 로부어는 원래 겨울 동안 북극 대구를 낚시하기 위해 이주한 어부들이 살던 전통적인 오두막으로 고기잡이 산업이 점점 쇠퇴하면서 대부분 관광용 숙소로 개조되어 과거의 매력과 현대 호텔의 편안함을 모두 가지고 있다.
로포텐의 끝인 오Å 마을을 지나 노르웨이에서 가장 많이 사진이 찍히는 장소라는 레이네 다리 전망대를 찾았다. 매년 수천 명의 여행객이 레이네 Reine 마을과 레이네피오르 Reinefjord의 입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아직은 겨울도 여름도 아닌 그 중간쯤 어딘가에, 겨울의 쓸쓸함이 묻어있는 여름을 애타게 기다리는 조급함이 느껴지는 아름답지만 아쉬운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머릿속에서는 겨울 풍경 속 눈 덮인 아름다운 레이네 마을이 펼쳐진다.
470 M, 900개의 계단을 올라서
마을 근처에 주차를 하고 레이네브링겐 트래킹을 시작한다. 470 M, 가파른 산비탈에 900개의 셰르파 계단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트래킹은 레이네브링겐 정상에서 바라본 경치가 어마어마하다는 루트로 유명하다. 한 계단 올라설 때마다 계단 옆으로 아찔한 낭떠러지와 먼바다가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가도 가도 끝도 없는 계단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정상에 가까워질 때부터 먹구름과 세찬 바람이 몰려와 나를 흔들었다. 하산하는 사람들의 엄지 척과 어매이징한 풍경에 대한 찬사가 없었다면 중간에 멈추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트래킹으로, 정상에 오르면 그 이유를 곧 이해할 수 있다. 그림 같은 레이네 마을과 야생 피오르가, 360˚로 펼쳐진 섬과 바다의 하모니는 멋지다는 말로는 부족해 보인다. 이 짧은 순간을 즐기기 위해 올라왔구나!!!
서둘러서 하산하자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어제 내린 비로 바위 계단은 다 마르지 않은 상태로 미끄러웠는데, 비와 안개라면 트래킹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푸른 바다와 웅장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하얀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해변을 향한다. 흰모래가 이토록 부드럽다니… 람베르그스트란다 Rambergstranda에서는 나무 침목으로 만든 좁은 산책로가 해변으로 이어졌다. 브룬스트란다 Brunstranda 넓은 백사장은 옥색 투명한 바다와 잔잔한 파도의 흔적으로 덮였다가 멀어진다. 아직 물은 차가웠는데 수영하는 현지인도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바다수영과 스키는 당연한 일상인 듯하다.
두 번째 숙소인 스볼베르 로부어로 향한다. 대구가 유명한 로포텐에서 이곳만의 대구요리를 맛보기 위해 현지인느낌이 물씬 풍기는 레스토랑을 찾아 저녁을 먹었다.
따뜻한 대구 요리와 함께 하루가 또 지나간다. 스볼베르 숙소는 어부의 집을 최소한으로 고친집으로 나무벽들과 지붕, 다락방까지 있는 곳이었다. 오랜 바닷바람과 어촌 특유의 생선 비릿한 냄새가 가득 배인 곳이었다. 호텔 로부어였는데, 샤워도중 뜨거운 물이 떨어지고 찬물이 쏟아져 한바탕 호들갑을 떨며 샤워를 마쳤다. 얼떨결에 이곳 사람들처럼 차가운 바닷물 수영을 간접경험한 것으로 치부해 본다
로포텐 문화의 중요한 역사, 대구 덕장
형색색의 집들이 있는 멋진 항구 헤닝스베르 Henningsvaer는 로포텐에서 가장 중요한 어촌 중 하나로, 대구덕장과 가공식품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 지금은 예술가들이 정착해 수많은 레스토랑, 카페, 현지에서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 덕분에 힙스터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무엇보다 바위와 물로 둘러싸인 섬 끝자락에는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축구장이 있다.
스볼베르 끝에서 대구 덕장을 발견했다. 이번 여행에서 노르웨이는 연어보다 대구가 풍부한 맛을 가졌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