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로드트립 드라이빙의 하이라이트, 트롤스티겐이다. 북유럽 신화 속 괴물인 트롤(Troll)과 사다리(Stigen)의 합성어로, 우리나라에서는 요정의 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해발 1000m의 산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11개의 U자형 급커브를 지나는데, 그 풍경은 바라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험준한 산맥지대과 무성한 계곡이 펼쳐지고, 구불구불한 커브길과 전망대의 경치는 마치 트롤이 다니는 길 같기도 하고, 웅장한 아름다움에 마치 요정만이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트롤의벽, Trollveggen
이번엔 돌 때문에...
가파른 산을 따라 굽이굽이 도로를 따라 운전하는 것을 기대하며 트롤스티겐에 왔는데, 우리는 다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혔다. 이번엔 낙석으로 인하여 들어갈 수 없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조심히 달리는 길 위에 갑자기 중장비로 길을 막아놓은 것을 보았다. 드문드문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우리처럼 부푼 기대를 갖고 달려왔다가 다시 돌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기념품 샵에서 점원에게 물어보니 돌이 떨어져서 한 달이나 두 달 정도 막아놓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확인하니 올해 여러 차례 낙석 사고가 있었고 앞으로도 낙석 사고가 발생 가능성이 높아 2024년 동안 통째로 도로를 통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쉬움에 트롤 조각상만 쳐다보다가 발걸음을 돌려 트론헤임 도시로 향했다.
노르웨이 중세 시대의 모습은
트론헤임은 천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며,노르웨이 제3의 도시이자 중부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이다. 997년 바이킹 왕이 무역거점으로 설립하여 13세기까지 바이킹시대 노르웨이 첫 수도였다. 이렇게 역사가 오래된 도시에는 역사적인 건물과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한 건물이 공존하고 있다.
올드타운 브릿지 Gamle Bybro는 노르웨이어로 행운의 관문이라고도 불리며 1681년에 건설된 목조 다리이다.약 350년의 세월 동안 화재와 노후화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쳐 재건되며 현재까지 이어지는데, 특히나 우리가 간 날에는 종려주일을 맞아 노르웨이 전통의상을 입은 분들이 이 다리를 통과하여 성당으로 가는 모습을 보니 중세 유럽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다리는 니델바 운하를 가로지르며, 오래된 목조주택과 카페, 갤러리 등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연결한다. 다리 위에서 니델바 운하와 목조주택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중세 노르웨이의 옛 정취를 느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트론헤임의 옛거리를 따라 걸어오면 새로 건설한 다리가 나온다. 뉴브릿지 위로 강을건너면서 과거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천 년의 역사를 이어가는 성당
트론헤임의 이 성당은 니다로스 대성당으로,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중세 성당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킨 바이킹 왕 울라프를 기리기 위해 1070년에 건축되었다. 여러 차례 화재와 복원을 겪으며, 비교적 최근인 20세기 초까지 노르웨이 왕가 대관식이 거행될 정도로 노르웨이를 상징하는 아주 중요한 성당이다.
아쉽게도 성당 내부는 보지 못했다. 우리가 찾아간 날은 기독교에서 부활절 직전의 일요일인 종려주일로 예배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장 금지는 아니었지만 성스러운 시간을 단순한 관광목적으로 방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다양한 세대의 가족들이 한데 노르웨이 전통 복장을 입고 서로 인사 나누면서 성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거의 천년의 세월 동안 아직도 신앙의 중심지라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여긴 빵집도 120년 전통
돌아가는 길에 빵집에 들렀다. 1902년부터 시작했다는, 무려 120년이나 된 베이커리라는 간판을 보고 나서 들어가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규모가 크기 않는 소박한 동네 빵집이었다. 현재 4대째 전통의 장인 정신을 이어 운영 중이라고 하는데 트론헤임 시내에 지점이 몇 개 더 있다고 한다. 트론헤임 역사 그 자체의 맛을 기대하며 우리는 막 구워 나온 포카치아 피자빵과 샌드위치, 시나몬 패스츄리 등의 빵을 몇 개 집어서 숙소로 돌아갔다.
대학의 도시니까 대학 기숙사에도
트론헤임은 역사만큼 유명한 것이 교육이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NTNU)이 있어 젊은 활기로 넘치는 도시이다.
우리가 머무는 곳은 바로 이 학교의 기숙사를 여행자들에게 머물 공간으로 빌려주는 게스트하우스였다.건물옆에는 우리가 머무는 건물과 동일하게 생긴학생전용 기숙사 건물이 있었다. 세상을 향한 지식이라는 학교의 모토답게 각 방의 이름은 세계 각국의 도시 이름으로 붙여졌다. 우리는 뉴델리에 머물렀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대학생처럼 치열하게 남은 일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며칠 동안 예기치 않은 자연재해(재해까지는 아니고 장해정도이지만, 우리에겐 거의 재앙이나 다름없었다)로 인하여 일정대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가 와서 들어가지 못했고, 막상 도착해도 비가 오면 장관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도 했고, 또 트롤스티겐에 떨어졌다는 돌덩이는 무엇이고, 또 쌓여 있는 눈 때문에 가지 못하고 보지 못한 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 북쪽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데, 위도가 높아질수록 앞으로 더 많은 비와 눈을 보게 될까 불안이 가득했다. 이런 걱정은 처음이었다.
"우리 이대로 갈 수 있을까?"
"그만 멈출까요?"
다시 화창한 날씨를 보았던 남쪽으로 내려가서 오슬로를 즐길지, 아니면 눈이 걱정이지만 북쪽에 있는 로포텐 제도와 제2의 항구도시 트롬쇠를 보러 모험을 강행할지 결정해야 했다. 남은 기간 동안 일기예보는 흐리고 비가 올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노르웨이에 온 만큼 과감하게 모험하기로 했다. 그렇게 뜨거운 논의를 마치고, 120년 역사의 빵을 맛본 우리는, 또다시 북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