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rit
안도야에서의 길은 바다와 뾰족한 봉우리 사이에 사람들이 사는 경작지의 넓은 들판을 따라간다. 따뜻한 멕시코 만류 The Gulf Stream 영향으로 다양한 조류와 동물의 서식지로, 운이 좋으면 바다표범, 고래, 독수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최고의 조류 관찰 명소라는 마르멜크로켄 Marmelkroken bird-spotting을 지나간다. 이 조류관측소는 모든 방향에서의 바람으로부터 보호가 되면서 커다란 유리창이 너머 퍼핀, 길레못, 가마우지, 거대한 바다 독수리 등 다양한 새의 관찰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형적으로 습지가 많은 안도야, 관측소를 가는 길은 흙과 물이 반반이 섞인 듯 걸을 때마다 발이 반쯤 잠기고 자갈돌과 이름 모를 풀과 새들의 부속물들로 가득 차 있어 걷기가 쉽지 않았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잠시 머무른 탓에 제대로 새를 보진 못했다. 우연히 마주친 친절했던 노르웨이 아가씨가 기억에 남는다. 관측소 가는 길을 알려주고 급한 화장실을 사용하게 해 준 고마웠던, 미처 이름을 물어보진 못했지만, 한국에 관심이 많아 한글을 배우며 한국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귀여운 분이었다.
노르웨이는 남부와 내륙 중부, 북부가 서로 다른 모습들로 우리를 맞이해 주는 것 같다. 한 나라의 자연이 이토록 다채로운 모습으로 존재감을 발휘하다니 새삼 놀라운 곳이다. 남쪽 내륙의 피오르와 북쪽으로 펼쳐지는 바다와 맞닿은 피오르는 닮은 듯 다른 모습으로, 남쪽의 따뜻한 기운이 푸른 이끼와 설산을 보여준다면 북쪽은 붉은 황색의 이끼와 설산이 어우러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호수는 아직 녹지 않은 얼음으로 시퍼런 색을 띠면서 차갑고 날카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 중간중간 통신 관련 장비들이 나타나고 접근금지 표식들이 등장한다. 이곳에 노르웨이의 로켓 발사대가 있는 안도야 우주기지 Andøya Space가 있다. 안도야는 노르웨이 북부에 위치해 있어 극지방에 가까워 오로라 연구에 특화되어 있는 안도야 우주기지에 최적의 장소라고 한다. 게다가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 위치해 있어, 로켓 발사 시 안전을 확보하기에도 유리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이토록 고요한 곳에 우주기지라니 그래서일까 이름 모를 혹성에 불시착한 듯 신비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부켁예르카 Bukkekjerka
부켁예르카 전망대는 동쪽의 가파른 산비탈과 서쪽 해안에 부딪히는 탁 트인 열린 바다를 분리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각각 틈새와 바위를 의미하는 사미어 "bohki"와 "giergie"에서 유래된 이름처럼, 이곳은 틈새바위로 불린다. 작은 벤치에서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뾰족하게 솟은 산봉우리, 자정의 태양을 볼 수 있고, 옆으로 나있는 길은 두게의 작은 무인 등대가 있는 섬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편도 거울로 된 전면 유리 화장실에 앉아서 잊지 못할 바다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원뿔 모양의 블레이크쇠야 Bleiksøya 섬의 새 절벽을 바라다 보이는 클레이보덴 Kleivodden 휴게소는 가파른 산기슭에 있는 휴식 공간이다. 자연석 의자에 앉아 바다 지평선위 일몰이 멋지다고 한다. 백야에 일몰은 커넝 흐린 하늘에 비가 당장에라도 쏟아질 듯한 날씨에 서둘러 숙소를 향했다
센야로 향하는 페리를 타기 위한 기착지인 안데스 Andense 숙소는 바다낚시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아지트였다. 리셉션부터 낚시용품들로 가득하고 낚시꾼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당구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크리스털은 리투아니아 아저씨와 신나는 포켓볼 한판을 벌였는데 그녀의 경쾌한 웃음소리와 한 톤 높은 목소리가 당구장에 울러 퍼졌다.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스포츠로 친구가 되는 듯하다.
북쪽으로 올라올수록 밝은 세상은 3시가 되어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해가 지지 않은 ‘벡야’를 실제로 경험하게 되니 자연현상이란 게 신기하기도 하지만, 노을과 별을 볼 수 없다니 이상하게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북극권 맑은 하늘에서 보이는 별자리를 기대했기 때문이었을까.
안데스에서 첫 번째 페리를 타기 위해 서둘렀다. 이곳은 페리가 하루에 두어 번밖에 없어서 이 시간을 놓치면 긴 육로를 돌아서 가야 하기 때문에 페리를 꼭 타야만 했다.
먼바다로 나가자 페리는 파도에 따라 좌우위아래로 크게 흔들렸다. 불길한 생각이 드는 동시에 내 속도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멀미약이 수면제처럼 졸리기에 아침부터 먹기가 꺼려진 데다, 페리시간도 아주 길지 않았서 먹지 않은 탓일까. 얼굴도 하얗게 질려가니 페리를 관리하는 청년이 와서 갑판으로 나가 바람을 쐬면 괜찮을 거라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히 앉아 술도 마시고 먹고 대화를 하면서 가는데, 나는 안절부절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리며 한 시간 반가량을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페리가 선착장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폭죽을 터뜨리며 환호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른 채 박수를 받으며 선착장을 떠나간다.
센야섬 루트는 안도야처럼 해안선을 따라 바다를 보며 따라가는 일정이다. 평화롭고 고요한 안도야와는 다르게 센야의 해안경관은 가파르고 사납지만 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바위와 돌섬, 높은 파도와 짙푸른 바다가 어둡게 소리치고 새소리가 높이 울려 퍼진다.
인증샷을 찍어야 하는 곳, 베르그스보튼 Bergsbotn 전망대
손가락처럼 들쭉날쭉한 센야의 깊은 피오르드를 따라 구불구불한 길을 가다 보면 목재와 금속 플랫폼으로 만들어진 베르그스보튼 전망대를 만난다. 44m 길이의 플랫폼은 웨이브진 형태로 그 위에 서서 베르그스 피요르드 Bergsfjord와 주변 봉우리의 웅장한 전망을 바라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 위에서 점프하는 인증샷을 찍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느긋하게 산책을, 퉁게셋 Tungeneset
통게네셋 휴게소는 슈타인스피오르 Steinsfjord와 에르스피오르 Ersfjord를 나누는 곶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시베리아 낙엽송으로 만든 목조 산책로가 길게 바위 위로 이어져 서쪽으로는 북해가, 북쪽으로는 날카롭고 뾰 봉우리들이 날카롭게 병풍처럼 줄 지어 서있는 산을 볼 수 있다. 날씨에 따라 평온한 얼굴을 드러내다가도 험악해진 몸짓으로 거친 바람을 쏟아내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금빛 매력의 에르스피오르스트란다 Ersfjordstranda
에르스피오르스트란다 해변은 에르스피오르 안쪽에 있으며 로포텐 해변을 떠올리게 하는 흰색의 고운 모래사장을 자랑한다. 휴게소 건물은 삼각형의 금도금 외장으로 마치 물고기의 반짝이는 비늘처럼 보인다. 내부 벽은 사방이 강렬한 붉은색으로 채색되어 있는데, 꼭대기는 투명한 유치창으로 오픈되어 있어 하늘을 투과해서 지나가는 구름을 볼 수 있다. 흰모래해변 인기 때문인지 주변에 캠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캠핑카에 자전거를 매달고 마음이 가는 곳이 보이면 멈추는 자연의 삶을 즐기는 것은 일상의 연속으로 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북쪽 오로라가 숨을 멎게 하는 곳, 메피오르베르 Mefjordvær
경치 좋은 길에서 우회전을 하자 오늘 숙소가 있는 메피오르베르가 보인다. 마을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에는 캐러밴과 캠핑카를 위한 위생 덤프 스테이션 외에도 버스 정류장이 있는 매력적인 휴게시설과 화장실이 있다. 특별히 디자인된 가구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방파제를 따라 걸으면서 바다와 가까이 갈 수 있다.
센야섬이 바라다 보이는 후소이 섬을 향한다. 섬을 들어가기 전 후소이는 작고 반짝이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섬 끝 등대에서 센야산을 마주한다. 5월의 센야는 눈으로 가득하다. 아침 일출로 빛나는 센야는 거친 하이킹을 통해서만 보여주는 민낯으로 나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더구나 이곳은 지금 백야가 이미 시작되어 하루종일 해가 지지 않을뿐더러 노을도 구경하기 힘들다. 창문마다 암막커튼이 필수인 동네다.
메피오르베르는 석기시대부터 정착해 살아온 역사적인 어촌 마을로, 센자 섬 북쪽에 위치한 활기찬 휴양지다. 숙소인 메피오르 브리게 Mefjord Brygge는 수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지어진 리조트로 센야에서 피오르를 보기 위해 오는 이들을 위해 숙소와 액티비티를 서비스, 낚시를 위한 이들이 필요한 것들을 가준 곳이다. 도보, 자전거, 자동차 등 다양한 스타일로 센자섬을 탐험하는 출발지로서 인기가 높고 피오르 외곽에 있는 노르웨이 최고의 낚시터로 가는 보트도 대여해 준다고 한다.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는 인근 언덕 꼭대기 크누텐 Knuten으로 저녁 트래킹을 떠난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바다와 피오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앉아서 편하게 전망을 보며 쉴 수 있는 의자가 있고, 추운 날씨를 잠시 피할 수 있는 쉼터 오두막도 있다. 먼바다 위로 설산들이 720도로 펼쳐져 있다. 어디를 보아도 설산이다 걸어서 15분 정도면 정상에 이르는데, 앞뒤 어촌마을과 해안선, 바다가 펼쳐졌다. 시원하고 속이 확 트이는 전경이다. 바다와 산속 품에 살포시 안겨져 있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서 보던 병풍처럼 서있는 봉우리들이 바다에 서있는 광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오늘 이후 며칠간 휴식에 들어간다는 '솔테리엣 레스토랑 앤 바 Salteriet Restaurant & Bar'에서 운 좋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세프가 운영하는 곳으로 현지 식재료인 대구와 연어를 노르웨이 북부 전통식 요리로 맛볼 수 있었다. 생대구와 반건조 대구 모두를 맛보았는데, 생대구는 부드러워 입안에서 살살 녹았고, 반건조대구는 쫄깃한 뒷맛이 일품이었다. 평소 비릿한 것을 싫어해서 생선은 쳐다보지도 않던 크리스털도 이곳 대구맛에 푹 빠져 처음으로 생선요리를 실컷 맛보게 되었다고. 스타일리시한 바에서 바텐더가 제공하는 음료를 마실수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