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rit
센야에서 페리를 타고 트롬쇠로 넘어오자마자 현지인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풍악을 울리면서 마을거리로 나와 행진하고 있었다. 차량들이 줄줄이 그들의 뒤를 따라 멈추고 느리게 이동하는 것을 반복했다. 집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새로운 가족이나 일행이 행렬에 추가되었다. 집집마다 차량마다 노르웨이 국기를 달리고 그들의 양손에도 국기가 들려서. 여기저기서 바람에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작은 마을을 간신히 빠져나와 트롬쇠 시내로 들어가는 거대한 터널로 진입했다. 트롬쇠는 산악 지형인 특성과 혹독한 기후 조건에서도 안정적인 교통을 제공하기 위해 도시의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터널도로를 만들어놓은 것 같다. 터널도로는 움직이는 차들보다 주차된 차들로 가득 차 있었고 외부로 나가는 입구는 차단되어 있었다. 우리는 돌고 돌다가 겨우 들어갔던 원래의 지점으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행히 숙소까지는 멀지 않았고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오늘이 노르웨이의 5월 17일, 노르웨이의 국경일 축제일 Norway's national day이었던 것이다. 지하도로는 축제를 즐기기 위해 근교에서 도시를 찾아온 차들을 위한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차량의 운행을 막은 거리에는 행진하거나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술을 마시면서 축제처럼 들뜬 사람들로 가득하다. 브라질에는 카니발이 있고 아일랜드에는 성 패트릭의 날이 있듯이 노르웨이에서는 1814년 5월 17일 헌법에 서명하는 날을 기념하는 제헌절을 모든 사람, 특히 어린이를 위한 축제로 보낸다고 한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약 10만 명의 사람들이 주요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도심으로 이동하고, 작은 마을에 있든 대도시에 있든 퍼레이드와 축제가 전국적으로 행해진다고 한다. 노르웨이 전통문화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행사도 많이 열리며, 현지 주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로 유명하다. 큰 퍼레이드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깃발을 흔들며 " 만세"를 외치고 왕실은 왕실 발코니에서 지나가는 군중을 향해 지칠 줄 모르고 손을 흔든다고. 보통 애국적인 날이면 경건하게 보내는 나라가 많지만, 노르웨이에서는 포용적이고 즐거운 분위기로 아이스크림과 핫도그를 먹으면서 연설과 음악을 듣고, 지역 학교에서 게임을 즐기기도 한다고 한다고 한다.
국경일에 자신들의 전통의상인 부나드 The bunad를 불편해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입는 것을 보니 보기가 좋았다. 부나드는 스코틀랜드 킬트처럼 노르웨이에서 조상이 어디에 있는지 나타내는 색상과 스타일로 다양한 변형된다고 한다. 부나드를 입고 한쪽 손에는 매주를, 아이스크림을 들고 먹고 있는 남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우리도 명절이나 국경일에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그날을 축복하면서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된다면 그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유명 관광지는 모두 문을 닫아서 우리는 이곳 사람들과 어울려 거리를 걷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바라고 알려진 로케튼 바 앤 펄스 Raketten Bar & Pølse 에서 순록핫도그를 맛보기 위해 줄을 섰다. 작은 매장 안에서 어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이 주문과 동시에 핫도그를 만들어 준다. 핫도그에 뿌려주는 소스는 마치 젖소의 그것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순록핫도그는 순록과 비프가 섞인 소시지로 맛은 그냥 소고기맛으로 느껴졌다. 이맛을 위해 이곳을 올 정도는 아니지만, 이곳에 왔다면 먹어볼 만한 하다.
트롬쇠 다리를 건너 북극대성당 Arctic Cathedral, Ishavskatedralen 을 다녀왔다. 북극교회는 이미 대단한 유럽 다수의 교회를 보고 난 내게 그다지 특별하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빙하와 극지방 얼음을 형상화한 형태가 주는 의미를 알고 나면 그렇구나 하는 생각은 든다. 트롬쇠 다리 Tromsø Bridge에는 안전을 위한 높은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는 데다, 전망이 멋지게 보이는 오른쪽 편은 자전거 전용으로 되어 있어, 교회와 전망대의 경관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터덜터덜 다리를 되돌아 건너와서 노르웨이 대표적인 맥주를 생산하는 워홀렌하우스 Ølhallen에서 라거와 필스너를 마시러 갔다. 비어하우스는 양조장 Kjeller 5으로 연결되어 견학도 할 수 있었으나 공휴일로 닫힌 상태, 우린 신선한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직접 만드는 맥주를 포함해 72종의 맥주가 3종류 크기의 시음잔에 판매되고 있는데 북극곰으로 상징되는 맥 맥주를 이번 여행에서 실컷 마셔보는 것 같다.
호텔에서 마무리 짐을 꾸리고 휴식을 취하는 걸로 마지막 날을 마무리한다. 오랜만에 호텔 업그레이드로 조식을 제공받았지만, 오슬로로 향하는 이른 비행시간으로 조식은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노르웨이는 유로연합이 아니기 때문에 입국과 출국 시 각각 심사와 함께 여권에 선명하게 도장을 남길 수 있었다. 새로운 여권의 첫 번째 도장이었다. 센스쟁이 출국사무원은 입국도장 아래 출국도장을 줄 맞춰 찍어주었다. 나는 그에게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인사를 건네며 출국장을 지나쳐갔다.
여행을 마무리하고 보니,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느슨했던 북부보다 남부는 너무 빠듯한 일정인 데다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아 놓치게 된 곳이 꽤 있었다. 지금껏 여행 중에 날씨가 이토록 변덕스럽고 좋지 않기는 처음이었다. 노르웨이가 일 년 365일 중에 310일이 비가 오는 최악의 날씨를 가진 나라라지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여행에는 맑은 하늘과 뜨거운 태양이 함께해야 하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해온 여행의 기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5월임에도 변덕스러운 눈으로 인해 길이 막혀버렸고, 갑자기 바위가 떨여 저 도로를 덮은 바람에 되돌아야만 했다.
언제나 푸릇한 초록을 보여주던 5월이 북부지방에서는 나무들이 푸른 잎을 막 입기 시작한 때라 풍경은 왠지 어설프기도 쓸쓸하기도 했다. 나뭇가지들은 앙상한 날카로움으로 봄을 밀어내듯이 겨울을 보호하는 느낌으로 다가왔고, 산 위의 눈들은 마치 겨울왕국을 지켜낼 듯 단단해 보이고 호수는 깊고 어두운 색으로 잠겨있었다. 이런저런 여행의 팁도 알게 되었다. 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만큼 여행경비도 수직상승했다. 렌터카 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과는 다른 몇 가지 중요한 정보도 업데이트된다. 베스트드라이버가 아닌 이상 좁은 도로나 상태가 좋지 못한 산악도로는 운전 시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주유비 또한 지역별로 차이가 커서 비용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미리 저렴한 주유소에서 충전을 해야 한다. 숙소에는 주차정보를 확인해야 하고, 무거운 케리어를 매번 들고 다니지 않기 위해 작은 배낭이나 보스턴 백을 챙겨 다니면 편리하다. 이번 노르웨이에서는 트래킹이 꽤 중요한 방문 목적이다 보니, 바람막이 재킷과 트래킹화도 반드시 챙겨야 했다.
여행은 직접 다녀와야 한다더니, 또 그렇게 지식이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