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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담 유영준 Dec 18. 2024

8화  울지 않기로 했다

단편소설  10-8




‘까악, 까아악, 까아악’까마귀가 처량하다 못해 처절하게 울었다. 아침부터 까마귀가 울지 않는데 머리가 쭈뼛쭈뼛 설 정도로 바로 옆에서 울어댔다. 요즘엔 깊은 산속에서는 물론이고 버젓이 도심지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까마귀가 출현했다. 까마귀에 울음소리가 애절하게 가슴속 깊이 울림으로 이어지다 못해 처절하게 계속 이어지자, 귀에 거슬려 참다 참다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여니 4층 높이까지 자란 느티나무가 잎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았지만 3층 창문에서는 까마귀가 눈에 띄지 않는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좌우를 살펴보니 그제야 나뭇가지 끝부분에 앉아 있는 까마귀가 눈에 띄었다. 창문 여는 소리에 놀라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린다.

“에이, 저리가, 저리가. 쉬이익!, 쉬이익!”

그러나 소용없다. 사람 소리에 인이 박였는지 놀라지 않고 꿈쩍하지 않은 채 계속 울부짖는다. 창밖에 내민 손등에 소름이 돋아 하얀 솜털이 뿌지직 소리를 내듯 일어난다. 몇 차례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탁, 탁, 타아악.’까마귀 울음소리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져 두통이 생길 지경이다. 며칠 전 인근 마트에서 받아 온 두툼한 장바구니를 접어 벽을 내리쳤다. 구석진 벽에 두툼한 장바구니를 내리치자, 생각보다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까마귀가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른다. 앉아 있을 땐 몰랐는데 웬만한 토종닭보다 더 크고, 날갯죽지를 펴자 어느 프로그램에서 본 겨울 철원 독수리만큼이나 커다랗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아 이동하면서 연실‘까악, 까아악’울면서 날아가 버린다. 까마귀도 주변에 나쁜 소식을 어찌 알고 울어대는지 죽음의 냄새를 맡고 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황구의 주검이 의료원에 있다고 했다. 삼일장을 치른다고 했다. 조금은 이른 오후라 그런지 조문객이 많지는 않았다. 함께 조문을 하자는 김 반장과 이 반장을 뒤로하고 따로 찾은 황구의 조문이었다. 이미 배달을 마친 근조화환이 한쪽 벽을 메우고 있었다. 희다 못해 덧칠한 듯 아이보리빛으로 변한 국화가 왠지 모르게 마음을 슬프고 가라앉게 했다. 금방이라도 그 사이에서‘멍멍멍, 황구요.’하고 황구가 익살스럽게 나타날 것 같은 환영이 자꾸 떠올랐다. 지나는 복도에 은은한 국화 향이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친숙한 듯, 예의가 깍듯했던 그였다. 정말 하루아침에 안녕이라니. 이런 게 인생인가 싶었다.

조문을 위해 들어선 곳에 황구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모습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티끌 하나 없는 그런 맑은 표정이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향 내음도 함께 움직이는 것 같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맞절을 하고 상주의 모습을 보았다. 나란히 서 있는 두 아들을 보니 황구와 많이 닮은꼴이다. 특히 둘째 아들로 보이는 사내가 좀 더 황구를 더 닮았다. 꼭 원조 같은, 이목구비가 또렷해 보였다. 붕어빵 틀에서 방금 나온 황구처럼. 식사를 위해 나온 탁자에 앉자, 두 아들이 쪼르르 다가왔다.

“저어, 어르신. 저번에 전화드렸던 황민구의 큰아들 황동수고요. 어서 인사드려라. 내가 말씀드린 그분이시다.” 하며 말하자 작은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황동석입니다.”하고 목례를 한다. 그 중저음 목소리에 영혼이 없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듯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황동수가 넉살 좋게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어르신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말없이 잔을 받아 들고, 상대에게 소주 한 잔을 권했다. 황동수가 그동안의 일들을 전했다. 황구, 황 민구! 그가 특별하게 아픈 곳은 없었지만, 최근 가슴 통증을 호소해서 병원을 모시고 가려 했는데 갑자기 집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따로 방을 쓰신 어머니께서 예전과 같이 일찍 일어나시기에 어디 나가셨는가 싶어 문을 열었는데 그대로 누워계셔서 웬일로 늦잠을 주무시나, 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심근경색이 원인이라고 했다. 그 말을 전해 듣는 내내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적어도 잠자리에서 편하게 생을 마감했기를 빌었다. 큰아들은 평소에 아프신 분이 아니어서 아버지의 죽음이 황망하고 유언조차 없으셨다고 했다. 다만 친한 분이 도서관에서 함께 근무해서 많이 의지했다는 말을 전하며 황동수가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혹여 일 치르고 가족이 모이면 연락하세요. 아버지께서 전해드리라는 것이 있으니….”     





                       #매주 수요일 연재 예정입니다. 수요일에 만나요._운담 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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