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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담 유영준 Dec 25. 2024

9화  울지 않기로 했다

단편소설  10-09




 의료원 장례식장을 나서는 길에 한곳으로 눈길이 쏠려 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듯 아닌 듯, 왠지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조금은 떨어진 곳에 분명 몸집이 통통하고 단발머리에 선글라스를 쓴 그녀는 분명 부녀회장이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연신 흘러내리는 선글라스를 올려 쓰며 주변을 살피는 그녀를 한참 만에야 확신할 수 있었다. ‘아니, 부녀회장이 왜 이곳에?’궁금증이 일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의 초조함과 난감함에 갈등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다른 사람의 조문을 온 것인지. 아니면 황구의 조문을 온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황구의 조문이 아니라면 선글라스까지 써 가며 그곳에 있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황구를 조문했는지. 그냥 되돌아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황구의 조문을 하고 돌아가는 내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로부터 사흘쯤 지났을 때, 전화가 왔다. 황구의 큰아들 황동수였다. 가족들이 다 모이는 날이니 저녁쯤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도서관에서 내가 사는 집까지의 거리만큼 더 가면 황구네 집이었다. 신시가지 반대편에 위치해 있고 큰길 뒤편, 주택가 집들의 모습이 비슷비슷하게 모여 골목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위치해 있었다. 그중 일반 주택가 중간에 끼어 있는 단층 양옥집이었다. 보통 한옥이 많은데 몇 채 안 되는 양옥집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이고, 내가 저걸 키워 놓고 미역국을 먹었다니. 내가 미친년이네. 아이고, 내 팔자야!”

반쯤 열린 철 대문 문살 사이로 황구 아내로 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와 들어가려던 걸음을 멈추었다.

“이 배은망덕한 놈아. 아버지 죽었다고 이 집 팔고, 나 보고 셋방살이하라고. 미쳤구나. 이 미친놈아!”

“아니, 그게 아니고. 엄마도 생각해 봐요. 이 큰 집에 형도 없고, 나도 없는데. 어쩌려고 그래요. 형 뭐라고 말 좀 해봐요. 형도 인정한 거 아니에요.”

“아이고, 동네 창피하네. 길 가는 사람한테 물어봐라, 이놈아. 지 아부지 죽었다고 지 엄마를 길거리로 내모는 게 정상인가? 저걸 낳고 내가 미역국….”

“엄마 고정하세요. 동석이가….”

“그래 너 말 잘했다. 내가 봐선 너도 저 자식과 마찬가지다. 아주 돈독이 잔뜩 올라가지고. 내 필자야.”

“아이 진짜. 다들 그만하세요. 그만해요. 너도 그만해라.”

“아니, 형. 말이 다르잖아. 전에 한 말은 다 어떻게 하고. 형도 돈이 필요하다며.”

“그만하라고 했다. 그래도 엄마를 전세로 모시던, 요양….”

“저 저, 저놈들 좀 봐라. 멀쩡한 집을 두고. 아예 나를 죽여라. 죽여!”

그때 얼비치는 유리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 한구석에 황구의 아내가 털썩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그 옆에는 황구의 큰아들 황동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둘째 아들 황동석이 세상 억울하다는 듯 일어서서 천장을 바라보다 들어서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 일순간 조용해졌다. 모두들 들어서는 내게 자신들의 치부를 들킨 듯, 입을 다물었다.

이미 사태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던 나와 일순간 조용한 그들도 자신들의 속내를, 까발려진 자신들의 욕망과 욕심에 부끄러웠던지. 말을 멈추면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내가 왜 왔는지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모두 격앙된 모습을 잠시 접고 시선이 내게 모이는 걸 느꼈다.

“으으흠. 그럼 황민구 씨의 유언을 전합니다.”하고 말을 먼저 꺼냈다. 모든 눈동자가 모여짐을 다시 느꼈다. 다음 말을 이어 가기 전에 황구의 아내와 황동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황동석을 바라보았다.

다들 내 입에서 다음 말이, 무슨 말을 할지 몹시 궁금한 모양이었다. 황구는 살아생전에 유언을 하지도 않았고, 잠을 자다가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니 모두 내 입을 통해 황구의 마지막 말, 유언을 전해 들어야 하기에 초조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론 황구가 어떤 말을 남겼을까 몹시 궁금한 마음도 동시에 갖고 있었을 것이다. 모두들 간절한 마음으로 내 입으로 시선을 모았다.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한 공간에 그들과 황구도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아들 황동석을 바라보다, 말없이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움찔한 황동석이 반걸음 뒷걸음치다 멈추었다.





      

               #마지막 한 개 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곧이어 연재 예정입니다. _운담 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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