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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담 유영준 Oct 30. 2024

1화  울지 않기로 했다

단편소설 

  “누구세요?”

일어나자마자 걸려 오는 전화를 주방에서 거실 탁자까지 뛰어가 급히 받았다. 한참이나 울렸기에 확인도 하지 않고 냉큼 받은 것이 화근이었을까? 갑자기 머리에 심한 충격을 받은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누구세요?’ 라니. 가슴이 답답하고 어질어질했다. 잠시 외출 나갔던 정신을 수습하고 어떤 놈인지 확인을 위해 안경을 비스듬히 내리고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황구’다. 분명 황구 전화가 맞는데 젊은 녀석의 목소리가 낯설다. 다시 휴대전화를 바싹 귀에 갖다 대어본다. 

 “누구세요?”

아침 시간 때 황구가 전화하는 일은 거의 없다. 장난 전화인가. 아니면 길에서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말하려던 찰나,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갑자기 허탈함이 밀려왔다. 바짝 긴장했다가 맥이 탁 풀린 기분인데 왜 소름이 돋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나니 슬슬 화가 났다. 처음 전화 건 사람이 자신을 밝히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점점 더 화가 났다. 무슨 전화를 그따위로 한단 말인가. 그리고 저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비상식적인 행동에 열이 올라왔다.     

그렇게 맥이 풀려 다시 전화해 볼까 생각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십여 분이 지났을 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에도 황구였다. 휴대전화에 표시된 이름이 분명 황구였다.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황민구의 큰아들 황동수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새벽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휴대전화에 마지막으로 통화하신 분이라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버지하곤 어떤 관계인지요?”

황구 큰아들로부터 황구의 죽음을 들었는데 믿기지 않았다. 분명 어제저녁과 밤사이에 두 번이나 통화했는데 이렇게 밤사이 이별이라니. 크게 몸이 아프지 않았는데…. 그의 부고 소식은 아무 말도 못 하게 했다. 입이 딱 달라붙었다는 표현은 이 순간에 가장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다. 황구를 의료원 영안실로 모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끊었다. 분명 그의 아들과 십여 분간이나 통화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질 않았다. 휴대전화를 움켜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그 진동이 마음을 동요시켰다. 맑고 투명한 호수에 누군가 돌멩이를 던져 파장이 일 듯이 잠깐 현기증이 나서 소파에 앉았다.  

        


‘황구’, 그의 이름은 황민구다. 전직 경찰이었다고 들었다. 퇴직 후 집에서 일 년 정도 쉬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쉬는 건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마을 도서관에 기간제로 근무한 것이 일 년 전쯤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만났다. 오전과 오후 조로 나뉘어 두 명씩 근무하니 총 네 명이 각 두 개 조로 나뉘어 근무했다. 그리고 매주 휴무를 두 번씩 나가기에 두 명이 짝을 이루어 근무하지만, 함께 일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한번은 황민구의 제안으로 늦은 저녁 회식을 하게 되었다. 저녁 열 시에 일을 마친 오후 조가 합쳐지며 완전체로 회식을 하게 되었다. 회식이라고 해 봐야 조촐하게 소주 한잔씩 함께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곳에서 황민구는 유쾌하고 활달한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나이 순서대로 형님과 아우를 구분했다. 

“사회에서 열 살 정도 차이는 맞먹어도 되지만 이 황민구가 있는 이상 안 되지. 안 되고말고. 자, 우리 성님들 세 분을 잘 모시겠습니다.”하고 넉살 좋고 살갑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한번 말을 하면 끝 모르게 상대에게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했다. 그런 그를 보고 우리는 그의 이름에서 민 자를 빼고 ‘황구’라고 불렀다. 일명 황 씨 멍멍이라는 말이다. 다들 쉬쉬하며 그의 별명을 불렀지만 어느 날엔가 그는 다 이해한다며 자신의 별명이 ‘황구’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성님이요. 황민구면 어떻고 황구면 어때요.”

“그래두.”

“괜찮다니깐, 괜찮아요. 난 옛날부터 황구였다구. 친근하잖아. 황구.”

그가 그렇게 불리는 것을 스스로 허락하고 인정해 준 덕에 나는 동네 친한 동생처럼 생각하고 스스럼없이 대했다. 



#매주 수요일 연재 예정입니다. 다음주 수요일에 만나요_운담 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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