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김 반장이 말을 잠시 뜸 들이는 사이, 옆구리에 땀이 흘렀다. 예감이 좋지 않다. 바로 다리 건너 단발머리 부녀회장이라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졸리도록 답답함이 밀려왔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얼굴에다 몸집은 통통한 게 전형적인 오십 대 아줌마 모습을 한 여자인데, 외모와 다르게 행동은 날렵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녀는 도서관을 자주 찾는데, 툭하면 지적질을 해대는 빌런이었다. 어떻게 보면 도서관 기간제에게 저승사자이자, 무시무시한 권력의 소유자처럼 행동했다. 그녀는 기간제의 약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픈 곳을 정확히 찔러대며 괴롭혔다.
“기간제에게 민원은 쥐약이여. 그냥 아웃이란 말이지.” 김 반장이 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초조해졌다. 분명히 그런 사항을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그 여자가 도서관의 블랙리스트요. 빌런임을 우리에게 직접 말로 일러준 사람이 바로 황구, 그였기 때문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더욱 그다음의 일이 궁금하고 초조해졌다. 여전히 김 반장의 입은 신중했다.
“그 있잖아. 이 반장 말이야. 퇴근해서 뭔가 두고 간 모양이야. 다시 데스크에 왔는데 분위기가 싸하더래.”
“그래, 그래서요?”
“딱 보니깐 한바탕 전쟁 직전이더래.”
“아, 그래요. 그래서요?”김 반장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했다. 더 이상 채근하지 않기로 했다. 채근한다고 속도감 있게 말할 것도 아니고, 남 말할 때는 더욱더 신중할 테니.
호텔리어 생활을 오래 했다는 이 반장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남달랐다. ‘나이 드니 호텔에서 일한다는 것도 한계가 있어. 집 가까운데 일이 있으면 좋겠지.’하는 생각에 도서관 기간제로 이력서를 넣었다고 했다.
그가 퇴근하고 난 후, 데스크에 열쇠를 두고 온 것을 알았다. 부랴부랴 도서관에 들어서니 냉랭한 분위기와 어색함이 피부로 확 다가왔다. 직감적으로‘문제가 있구나.’느꼈을 때,
“아니, 이 아저씨.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세요. 나 말이죠. 이 동네 부녀회장이에요. 부녀회장!” 바로 단발머리에 안경 쓴 부녀회장이었다. 그녀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황구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이미 황구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그냥 가세요, 그냥 가. 지나가세요.”황구가 한 팔을 들어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정말 이 아저씨가 사람을 뭘로 보구. 이젠 아예 대놓고 무시를 하시네. 여봐요. 아저씨!” 부녀회장의 목소리 톤이 한 단계 올라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이 반장은 목소리가 한 톤 올라섰을 때 그녀와 황구 사이에 황구를 등지고 슬쩍 껴들었다. 그녀가 맞이한 이 반장의 모습은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사모님, 안녕하세요. 뭔가 불편하신가 보다. 그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 반장은 한 발 더 나가 그녀에게 바싹 다가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소 놀란 듯 그녀는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 아저씨가 사람을 무시하잖아요.”
“아이고, 저희가 그럴 리가 있나요. 기분 나쁘셨다면 이해해 주세요.” 하고 넙죽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고는 최대한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요. 이분처럼 정중하게 말씀을 하셔야지 말이지. 나 원 참!”
이때다 싶어 순발력을 발휘해 윗니와 아랫니가 다 들여다보이도록 웃어 보였다.
그런데 왜 예상은 항상 빗나가던지. 뒤에 있던 황구가 한마디를 던졌다.
“얼씨구절씨구 자알한다. 내가 뭐랬다고?”
일차적으로 꺼진 불에 다시 기름을 끼얹은 형국이 됐다.
“아니, 이 아저씨가 진짜 한번 해보겠다는 거죠.” 하며 두 팔을 걷어붙였다. 한 단계 높아진 목소리 톤으로 앙칼지게 소리를 질러댔다.
“나 말이지. 부녀회장이야. 진짜 이 아저씨 정말 참 못됐네.”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 연재 예정입니다. 수요일에 만나요._운담 유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