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0-4
이 반장이 돌아봤을 때 황구는 분하고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말하려고 할 때,
“야야, 황구야. 황구야, 그만해라. 입 다물어라. 제발 입 다물라고.”
마음 급한 이 반장은 황민구라는 이름보다 황구란 말이 먼저 나왔다. ‘이를 어째, 이를 어째’를 연달아 내뱉으며 이미 엎질러진 물 앞에 서 있듯, 부녀회장이 황구를 볼 수 없도록 노력했다. 이 반장이 황구에게 눈짓 신호를 보냈다. 얼른 자리를 비우라는 뜻이다. 다행히 눈에 보이지 않는 황구 때문인지, 아니면 이 반장의 거듭된 사과 때문인지 소란은 잠잠해졌다. 잠시 무슨 일인가 내다보던 사람들도 곧 잠잠해지자, 별일이 아닌 듯 흩어졌다. 이 반장의 빠른 판단과 전직 호텔리어로 근무할 때 겪었던 문제해결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셈이다. 그러나 소문은 언제나 항상 조금씩 보태지고 과장되어 전해지기 마련이다.
“성님, 요 앞에서 기다릴게요.” 황구가 쉬는 날 도서관으로 찾아왔다. 커피믹스를 타서 휘휘 저어 주자, 잘 마시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퇴근해서 소주 한잔하자며 뱉은 말이다. 사실 밤엔 잠자는 것 외에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대답을 하려니까 슬쩍 컵에 코를 대고 향을 맡으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렇게 나가는 황구의 뒷모습에 술 냄새가 살짝 풍겼다. 웬일인지 처량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황구에게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몸을 더 바삐 움직였다. 혹여나 사무실에 작은 소문이라도 들어가는 순간, 그다음에 벌어질 일에 대해 우리는 암묵적으로 모른 척 함구했다. 다행히도 황구는 한동안 특별히 행동을 조심하고 가능한 한 사람들과 최소한의 이야기만 했다. 그리고 도서관 이용객이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말을 닫았다. 한편으론 둘이 함께 근무할 때는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렇게 그 일이 잊힐 즈음 황구가 쉬는 날 찾아왔다. 그것도 퇴근 시간을 대략 맞추어서.
늦은 시간 손님이 많지 않아 이야기하기 딱 좋은 포장마차였다.
“성님, 맥주보단 쇠주가 좋겠죠.”라며 내 의사완 상관없이 소주를 시켰고, 소주 한 잔을 비우자 닭발과 계란말이가 한 접시 나왔다.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닭발을 집어 든 황구가 코로 킁킁 냄새를 맡았다.
“성님, 이래 봬도 이 집 닭발이 참 맛있어요. 드셔.”
이 말을 남기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소주를 들이켰다. 살면서 꼭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조금 긴 침묵이 이어졌다. 닭발이 특유의 냄새가 없다느니, 맛은 있다느지, 하는 말도 없이 술과 안주를 먹었다. 속상하고, 답답하고 그럴 때 설레발을 치는 것보단 기다려주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 오랜 침묵을 깨고 황구는 오랜 넋두리와 속에 담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간혹 그의 말에 응원을 하듯 감탄의 말과 조미료 치듯 장단을 맞출 뿐이었다. 황구의 오랜 이야기는 주로 그의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황구는 조금은 늦게 경찰이 되었다고 했다. 늦게 경찰에 입문한 만큼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여러 부서를 겪으며 자신의 적성과 딱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름 사회 정의를 실천한다는 의미에서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형사계로 자리를 옮기면서 형사로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되었다고 한다. 밤낮없이 근무하며 실적이 쌓이고 사회에 악을 불식시킨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마가 끼게 마련이라는 말이 있듯이 형사계에서 실적이 쌓이고 실력을 인정받는다고 생각할 즈음 문제가 발생했다. 사람의 일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 결과물이 항상 나오는 것은 아니기에.
“성님, 경찰이라는 직업이 여러모로 긍정적이고 좋은 면이 많아요. 그렇지만 열심히 일하고 인정을 받으면 받을수록, 충성스러운 맹견이 될수록, 나쁜 일에 많이 노출된다는 거죠. 예를 들어 충격적인 죽음의 현장을 자주 보고,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거짓말에 흉악한 살인자도 만나요. 그러니까 세상에 나쁜 놈들은 다 만나니, 어느 순간 내가 바뀌어 있더라고요.”
황구는 안주 없이 소주를 연달아 마시며 말을 이어갔다.
“성님, 어느 순간 내가 멘탈이 나간 것 같았어요. 언젠가 말 안 듣고 떼쓰는 애들을 집에서 손찌검하던 나 자신을 발견했어요. 정말 깜짝 놀랐고 충격이었어요. 큰아들은 그래도 큰애라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내색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래도 잘 컸는데. 근데 문제는 작은 녀석이에요. 작은 녀석은 작은 일에도 아주 깜짝깜짝 놀라고 슬슬 나를 피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성격이 삐뚤어진 것 같아요. 다 내 잘못이지 뭐겠어요.”라고 길게 한숨을 쉬고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수요일에 만나요. 운담 유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