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0-5
황구가 그쯤인가 경찰서에서 자체 감사실 내사로 3개월 정직을 당했다고 했다. 그 일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아이들도 함께하려고 노력했단다. 그러나 작은아들은 어쩐 일인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황구에겐 작은아들이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작은아들에게 신경을 썼지만 다소 반항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이제 다 성장한 두 아들 중 큰아들은 중견 회사에 들어가 잘 적응했지만, 작은아들은 작은 회사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했고, 요즘은 택배 물류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그런 작은 아들이 요즘 황구와 잦은 마찰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새였다. 도서관에서의 그 사달이 있던 날도 집에서 마찰이 있다 보니 작은 일에도 예민해져 있었고 부녀회장과의 언쟁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가슴이 저리고 답답하네.”하며 가슴 한쪽을 잡고 문질렀다.
삶은 항상 우리가 원하는 데로 가려고 하면 방향을 틀어버리는 까칠하고 맹랑한 소녀의 마음 같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궤도에서 이탈하려는 것을 바로 잡으려 애쓰며 사는 것일 테다. 그렇게 발버둥 치는 과정이 인생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삶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합리적 결과인 벌이요, 지옥이라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신은 인간의 망각을 위해 짧은 행복과 희망이란 산물을 던져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황구와의 술자리에서 자신의 말보다 그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술자리를 마치고 나온 거리엔 가로등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런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황구의 작은 소동이 한동안 잠잠하고 잊혀가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쉬는 날이었다.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앉아 커피를 한잔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커피를 마실 때면 황구 생각이 났다. 특이하게 보통 입으로 먼저 가는 것이 아니라 코로 향해 갔고 냄새를 먼저 맡았다. 그러고 보니 모든 음식이 입으로 먼저 향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 향하고 있었다. 별명인 황구 같은 행동이라고 피식 웃고 있던 찰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휴대전화 화면에‘호텔리어 이 반장’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야야, 난리다. 난리 났어.”
“왜요?”
“이를 어째, 이를 어째.”
점잖고 서두르는 법이 없는 이 반장의 다급하고 불안한 목소리에‘설마 황구 일은 아니겠지?’ 생각했지만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휴대전화를 받은 손이 저절로 바르르 떨렸다. 전직 호텔리어 이 반장이 전한 얘기에 입이 떡 벌어졌다.
혼자 도서관 입구에서 근무하던 황구가 또다시 부녀회장과 부딪힌 것이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을 즈음, 언쟁이 발생했고 부녀회장은 특유의 고음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현관에 비치되어 있는 팸플릿을 집어 던지고, 도서관 입구가 어수선하게 난장판이 된 모양이다. 몰려든 도서관 이용자 중에서 누가 신고를 했는지 경찰이 출동했고, 당직 근무를 하던 사무실 직원도 어쩔 줄 몰라 했단다. 문제는 사생결단을 낼 것 같이 황구도 부녀회장만큼이나 진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직접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해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스름이 내린 도서관에 경찰과 119구급차의 경광등까지 시각적으로 더해져 일순간 조용하던 도서관이 난장판이 된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무언가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참고 또 참고 있다가 일순간 터져버렸을 황구를 생각하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웬만하면 큰 소리와 팸플릿까지 내팽개치면 고개 숙이고 사과할 거라 생각한 부녀회장도 상당히 당황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연락받고 부랴부랴 나온 이 반장이 목격한 것을 전해 들었다.
“이상한 일이야. 사무실 직원에게 연락받고 도착해 보니, 무슨 일이 있었나 싶게 조용하더란 말이지. 한쪽에 부녀회장 여편네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안경을 올려 쓰고 있고, 황구도 아주 얌전히 한쪽에 찌그러져 있더라고. 처음엔 이게 뭐지 했지. 바닥엔 흩어져 있던 팸플릿은 사무실에서 정리했는지 말끔하던데. 어디론가 전화하는 경찰은 밖으로 나갔고, 남은 경찰은 뒤늦게 도착한 119대원에게 뭐라 뭐라 하더니 돌아갔어. 그러곤 밖에 나갔던 남자 경찰이 여성 경찰을 데리고 와선 부녀회장을 데리고 나가던데. 역시 무엇에 놀랐는지 벌벌 떨면서 말이야. 그리고 남아있던 경찰이 황구한테 구십 도로 인사하곤 그냥 가버리는 거야. 그렇게 구경하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흩어지고 보니깐 황구도 어느 틈엔가 사라졌어. 이게 다 무슨 일인가 했지.”
#매주 수요일 연재 예정입니다. 수요일에 만나요._운담 유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