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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담 유영준 Dec 04. 2024

6화  울지 않기로 했다

단편소설  10-6




전직 호텔리어 이 반장의 장황한 전언을 듣고 있다가 

“그래서 황구는 어디로....”

“글쎄.”     

그렇게 뜨겁고 후덥지근한 여름이 지나갔다. 한때는 멀쩡한 하늘에서 소낙비가 내리는 날도 있었고, 어느 밤에는 밤새 비도 오지 않는데 천둥과 번개만 요란한 날이 지속되었다. 다행히 두 번의 큰 태풍이 지나갔지만 커다란 피해 없이 지나갔다. 다만 도서관 앞으로 흐르던 개천에 사람 키만큼 커다란 갈대숲이 더위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듯 한 방향으로 누어버린 것이 피해라면 피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작열한 태양이 솟았고 끝날 것 같지 않던 찜통더위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계절과 절기는 속일 수 없는 일인지 쾌청한 가을이 왔다.

그런 가을이 오기까지 황구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사무실에선 황구의 의사에 따라 퇴사 처리를 진행했고 단기 근무 기간제 채용을 통해 인원이 보충되었다. 또다시 남은 세 명과 보충된 한 명을 포함해 오전과 오후로 교대 근무를 하며 도서관을 지키고 있었다. 딱히 과도하지 않은 업무와 도서관의 문지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을 맞듯이, 지난여름을 잊고 가을을 맞이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성님, 나요. 끝나고 한잔. 요 앞에서 기다려요.”

저녁이 되자 선들선들해진 바람을 밀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푹 눌러쓴 모자를 벗으며 하얀 이빨을 드러내곤 천진난만하게 웃는 황구였다. 연신 손가락을 동그랗게 해서 까닥까닥 입으로 가져갔다. 오랜만에 보는 그는 얼굴 살이 약간 빠진 듯했다. 커피믹스 한 잔을 받아 들곤 코로 흠흠 하고 커피 향을 들이마신다.

“역시 커피는 도서관 커피가 최곱니다. 성님”하며 다시 문을 열고 나간 자리에 살짝 술 냄새를 풍겼다. 이젠 도서관 근무자도 아니니 내내 서 있기 죄송스러웠을 것이다. 혹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쩔까 싶어 서둘러 나갔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경우, 항상 정들었던 일터를 떠날 때는 말없이 나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었다. 추가 수당을 미지급 했다고, 회사에 비리나 불법이 있다고 관청에 신고하고, 회사 감사실에 민원이나 투서도 하지 않았다. 설령 몸담았던 직장이, 모셨던 상사가 개떡 같은 성품이어서 시달렸다고 해도, 내부 인사들만 알고 있을 불법적인 문제와 비리를 묵인하고 잊어버렸다. 세상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비리를 까발려서 그들을 조금이라도 피곤하고 고단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적어도 내가 그곳에 일한 동안만큼은 그곳에서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내 가족들과 함께 생활을 유지했다는 고마움과 감사의 발로였을 것이다. 언젠가 황구도 비슷한 말을 한 것 같다. 설령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에 몰렸어도, 그건 마지막 남은 자신의 자존심이라고. 자신은 그런 사람이라고.     

도서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포장마차에는 우리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과 젊은 연인이 앉아 있는 테이블이 전부였다. 주인이 틀어 놓은 트로트 가요만이 정적을 가르고 있었다. 젊은 연인들이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에 적당한 음악 소리. 이전과 마찬가지로 소주와 함께 안주로 닭발과 계란말이가 나왔다. 실내 천장에 매달아 놓은 두루마리 화장지와 일회용 장갑이 매달려 빙그르르 돌고 있었다. 황구가 일회용 장갑을 두 개 뽑아 하나를 내게 건넸다.

“성님, 그동안 어떻게 지냈우.”

“우리야 맨날 같은 날이지. 그동안 어떻게 지낸 거야.”

“그냥, 뭐 이것저것.” 잠깐 뜸 들이더니 멋쩍어하는 그는 짧은 머리를 손으로 쓱 빗어 넘겼다. 그러곤 한동안 서로 말없이 소주잔만 몇 차례 부딪혔다. 나보단 그가 더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는 말 이외에도 그에게 궁금한 질문은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던진 그 짧은 질문은 진심이었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김 반장, 이 반장을 대신해서 하는 질문이었고, 관심이었고, 일 년 넘게 함께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매주 수요일 연재 예정입니다. 수요일에 만나요._운담 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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