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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담 유영준 Dec 11. 2024

7화  울지 않기로 했다

단편소설  10-7




몇 차례 술잔이 돌았다. 여전히 황구는 말이 없었다.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그가 매번 하던 행동, 음식이 나오면 먼저 냄새를 맡았었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갑자기 불안하다는 생각을 할 때쯤 황구가 입을 열었다. 

“성님, 문득 죽기 전에 유언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갑자기 죽으면 그마저도 소용이 없는 거잖아. 안 그래요? 근데 그 생각을 하는데 왜 그런지 눈물이 나오는 거야. 젠장.”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황구와 한 말들이 전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 유언, 어쩌고저쩌고했던 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중간중간 단어들이 떠올랐다. 두 아들을 어떻게 뭐라고 했는데, 기억이란 필름이 중간중간 재생되었다가 사라지고 이어지고를 반복했다. 모두 술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고 말했던 것 같다. 

“괜한 걱정 말고 다 내려놔. 인생 뭐 있냐?”라며 위로했던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둘째 아들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거는 같은데, 영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무슨‘업보’, ‘내 잘못이다.’라는 둥, 기억이 뒤죽박죽되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황구의 따뜻한 손길이 내 어깨와 등과 허리로 이어지면서 한 말이다. 

“성님아, 고맙수. 내 얘기 잘 들어줘서 고마워.”

아마 어깨동무를 한 것 같기도 했다. 이 기억이 그렇게 생경한 이유는 그의 따뜻한 온기가 내 몸에 전해졌기에 단편적으로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느낌 때문에 생경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갑자기 기억에 자신이 없어졌다. 조금 쉬고 나면 기억이 명확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다. 황구가 아파트 입구까지 함께 온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벽에 등을 기대고 한참을 있었다. 머리가 그리 많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뿌연 안개 속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결핍이 있는 그런 아침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전날의 기억이 명확하지 않았다. 전날 끊어진 기억의 필름을 이어 붙이기를 반복하다 머릿속이 복잡해져 그냥 포기했다. 종종 시간이 지나면 명료하게 기억이 되살아나는 경험이 있었기에 더 이상 나 자신을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갈증이 났다. 물 한 잔 마시면 모든 기억의 필름이 복원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방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그때였다. 휴대전화 벨이 울린 것은.

“여보세요!”

전화 받고 황당한 것도 잠시였다. 진짜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은 황구의 큰아들 황동수의 전화 때문이었다. 휴대전화 내용에 따르면, 어젯밤까지 멀쩡하던 황구가 죽었다고 한다. 아니 죽었다니 말이 되는가! 시간을 되돌린다면 적어도 몇 시간 전이었는데 믿기지 않고 인정할 수가 없었다. 멀쩡했던 그가 죽었다. 황구가 죽었다. 그것도 하루 사이에 심장마비로 저세상으로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황구가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지금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그에게서 넘어온 온기가 어깨로, 등으로 느껴지는데 그 말을 믿으란 말인가! 재차 귀에서 떼어낸 휴대전화 화면에는 분명‘도서관 황구 반장’이라고 명확하고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뇌가 정지된 것 같이 멍해졌다. 소파에서 천장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황구가, 황구가.”

사무실에서 연락받고 번갈아 가며 이 반장과 김 반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들도 모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같이 일하는 동안 정이 흠뻑 들었는데 갑자기 죽다니,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전해졌다. 퇴직할 나이에 지나지 않는데, 그렇다고 죽을 나이는 더더욱 아니라며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태어날 때 순서는 있어도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라는 말은 있지만, 내 주변에서 이렇게 허망하게 사람이 죽다니.

그러고 보니 어제 황구는 가슴을 여러 번 부여잡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별다르게 얼굴색이 변한다든지, 아니면 아프다고 했다면 분명 병원을 다녀오라고 신신당부했을 것이다. 그런데 딱히 내가 크게 인식을 못 하고 기억에 없다는 것은‘별일이야 있겠나?’ 싶어 지나쳐 버린 것이다. 주의 깊게 봤어야 하는데, 하는 자책과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이 아프고 저린 아침이었다.      





                          #매주 수요일 연재 예정입니다. 수요일에 만나요._운담 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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