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맛과 철학 Aug 09. 2024

근세 유럽에서 파인애플은 과일이 아니었다!

장식품으로 쓰이던 파인애플의 이야기


오늘은 파인애플과 그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파인애플은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과일이다. 생으로 먹어도, 통조림으로 먹어도, 구워 먹어도 참 맛있는 과일이다. 특히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에는 술집에서 파인애플 열매 내부를 파내고 샤베트를 채워 먹기도 한다. 이처럼 다재다능하고 맛있는 과일인 파인애플, 그 이면에는 어떤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까?



파인애플은 소나무(Pine)에서 열리는 열매라는 의미의 Pineapple이다. 하지만 파인애플은 나무에서 열리지 않는다. 파인애플이 자라는 모습을 본 적 있는가? 마트에서 식품을 구매하는 현대인에게는 파인애플이 자라나는 모습이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파인애플 농장에 처음 방문한 방문객들은 그 모습에 크게 놀라기도 한다.

파인애플은 땅에서 자란다. 덩굴 식물인 딸기나 수박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자라는데, 그 모습은 땅에서 커다란 꽃이 자라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덜 익은 파인애플은 알로에나 아가베(테킬라의 원료)처럼 보인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독특하고 개성 있는 모양의 열매가 맺히게 되었다.



파인애플의 원산지는 중남미이다. 현재 브라질과 파라과이 부근에 살던 원주민들은 오래전부터 파인애플을 훌륭한 과일이라는 뜻의 '아나나스(ananas)'라고 불렀다. 특유의 새콤달콤한 맛과 한 입 베어 물면 터지는 과즙 덕에 파인애플은 오래전부터 귀한 과일로 재배되었다. 기존의 과일과 완전히 차별된 외모와 그 맛 때문에 콜럼버스의 이목을 처음부터 끌었을 것이다. 이런 파인애플은 그가 유럽으로 돌아갈 때 당연히 챙겨야 하는 귀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파인애플은 그제서야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처음 파인애플을 맛본 스페인 왕실과 귀족들은 엄청난 단맛에 깜짝 놀랐다. 당시에는 모든 과일들이 개량 전이라 지금보다 훨씬 덜 달았다. 그래서 세간에는 "셰익스피어가 먹었던 과일들은 현대의 당근 정도의 당도"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설탕은 수입품으로, 설탕 8파운드(4kg)를 사기 위해서는 1온스(31.6g)의 금이 필요할 정도로 아주 비쌌다. 정리하자면, 당시의 "단 맛"이란 왕족과 귀족만 누릴 수 있던 아주 비싼 맛이었다.


그런 시대에 대륙을 넘어 잘 익은 파인애플을 본 근세(초기 근대)의 사람들을 상상해보자. 과일을 먹기 전부터 강렬하게 풍기는 달콤한 향기와 독특한 모양은 처음 본 이들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야생 파인애플이라도 잘 익으면 12~15브릭스의 높은 당도를 자랑하는데, 처음 먹어본 근세의 사람들은 "딩" 하는 단맛이 그들의 후두부를 강타했을 것이다. (마치 "요리왕" 시리즈 만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리고 과일의 특이한 모양새는 빠르게 소문을 퍼뜨리고 이름값을 올리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파인애플의 모양을 보고 “왕관을 쓴 과일의 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렇다! 그 시절 파인애플은 “왕들의 열매”라고 불렸다. 함대가 대양을 건너 가져오는 미지의 보물, 열에 아홉은 썩어버리는 탓에 왕족조차도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과일. 당시의 그 위상은 어마어마 했다. 파인애플은 왕족이나 높은 귀족도 함부로 먹지 못하는 존재였다.


스페인 왕실은 당장 파인애플을 재배하고자 했다. 하지만 파인애플은 열대 과일로 스페인의 기후에서는 자랄 수 없다. 게다가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는 소빙기 시대로 유럽은 지금보다 훨씬 추운 기후였다. 당시 파인애플을 재배하는 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덕에 파인애플은 더욱 귀해져만 갔다.


정원사에게 파인애플을 받는 찰스 2세의 전신 초상화


그들은 연회장의 중앙 홀에 파인애플을 장식하여 자신들의 부를 과시했다. 일부러 눈에 띄는 곳에 파인애플을 전시해서 자랑하고 자신을 드높였다. 그렇게 파인애플은 한동안 파티장의 "장식품"으로 존재했고, 그 "귀하신 분들"조차도 파인애플이 썩기 시작해야 겨우 맛볼 수 있었다. 너무 귀했기 때문에 반절, 혹은 그 이상 버려진 것이다.


연회장에 장식된 파인애플 예시(Chatgpt)


이러한 소문은 사교계를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분명한 건, 이 시대의 영향으로 파인애플은 "환영"과 "부"를 상징하는 과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은 계속해서 파인애플을 재배하고자 노력했지만 여전히 실패했다. 결국 그들은 2세기가 지나고서야 겨우 성공하게 된다.


정원사들은 온실을 만들고 가운데에 화로를 두어 파인애플의 자생지와 비슷한 환경을 조성했다. 유리로 햇볕이 들어오게도 했다. 지금 보면 아주 기초적인 하우스 재배방식이었다. 하루 종일 불을 떼는 연료비가 상당하여, 이후 "말똥"이 발효되는 열을 활용하여 단가를 혁신적으로 줄이기도 하였다. 파인애플을 재배하기 위해서 그들이 들인 노력과 비용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1761년, 던모어의 4대 백작 존 머레이가 아내 샬럿의 생일 선물로 지은 건물. 당시 파인애플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파인애플은 여전히 개당 약 $8000~15000의 고가였고 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사실이 하나 있다면, 그전까지는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무리하면 하나 살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파인애플을 핸드백처럼 “들고” 다니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파인애플을 먹지 않고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 들고 다녔다. 심지어는 파인애플을 대여하기도 했었는데, 하루에 $1000 가격으로 파인애플을 대여해주는 대여업이 성행하기도 했다.



그렇다. 파인애플은 재배에 성공한 후로도 과일이 아닌 "장식품"이었다. 파인애플의 대중화는 19세기 플랜테이션 농업이 성행하고 나서야 이루어졌다.



제임스 돌은 하와이에서 플랜테이션 농장을 설립했다. 제임스 돌은 하와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샌퍼드 돌과 사촌 관계였으며, 이를 통해 많은 이득을 봤다. 그가 설립한 Hawaiian Pineapple Company는 빠르게 성장하여 곧 세계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 농장은 훗날 세계적인 기업인 Dole사가 된다. 그를 통해 부의 상징이었던 파인애플은 이제 흔한 과일이 되었고 언제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야생의 파인애플


이제는 아무도 파인애플을 가지고 다니며 뽐내지 않는다. 자신이 파인애플을 먹은 것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지금의 파인애플은 그 당시의 것보다 두 배는 더 달다. 값은 1/100, 아니 1/1000 수준이다. 과육은 놀랍도록 부드러워졌다. 맛과 향, 식감 어느 것도 전혀 빠지는 것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의 명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왜일까? 바로 현대엔 맛있는 음식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맛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그때였기 때문에 파인애플은 더 매력적이었고 숭배되었다. 아니면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들로 하여금 파인애플을 더 먹고 싶게 만들고 더 원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먹고 싶지만 먹지 못할 때, 사람은 더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 갖지 못할 때, 그 가치는 더 높아진다. 지금도 한 번 유행을 타면 갑자기 물건들이 매진된다. 시대는 변했어도 사람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귀하디귀했던 파인애플은 아직도 그 특유의 새콤달콤함과 달콤함으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제는 흔한 과일이 되어버린 파인애플을 누구는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어떤 요리사가 피자 위에 파인애플을 올리면서 파인애플을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필자는 음식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이 참 좋다. 모든 음식에는 역사가 있고, 이러한 역사들을 알게 되면 맛을 더하는 것 같다. 마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셰프가 설명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경이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굶을 일이 없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건 매우 쉬운 일이고, 아무리 비싸더라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매일이 풍년이다. 지금이 과거 사람들이 꿈꾸던 유토피아가 아닐까 필자는 생각한다.



이런 사회에 살다 보면 감사함을 잊게 된다. 배부름은 당연한 것이고 권리이다. 그리고 배부른 아이는 반찬 투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꿔 보면, 인류가 배고픔을 이겨낸 것은 길게 쳐줘야 100년이다. 인류가 등장한 지 30만 년, 오늘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했을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세상에 그냥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식탁에 오르는 음식부터 옷, 생활양식, 그리고 문화와 언어에 이르기까지 선배들이 남긴 유산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관점을 조금만 바꿔서 시야를 넓혀 보면, 세상에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역사가 좋다. 역사는 우리의 인생에 가치와 여유를 더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의 역사라도 말이다.


과거에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던 파인애플. 비록 이제는 그 명성을 잃었지만, 그 맛은 여전히 훌륭하다. 부쩍 더워지는 요즘 날씨. 너무 덥다면 파인애플로 샤베트를 해먹으며 더위를 날려버리면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 초콜릿 문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