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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사람을 만났습니다

by 혀늬

요즘은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면접을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카페에서 온종일 글만 쓰기도 하며, 친구와 바다를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따뜻한 햇살에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니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오늘 이렇게 평온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이 작은 감사함을 잃지 말고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이잉-


그때 울리는 메신저 진동. 이제는 메신저 알림을 끄고 살아온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중요한 연락은 메일이나 전화로 오기 때문에 낯설기도 하고 어색한 노란색 메신저.


[혀늬야 소개팅할래?]


자소서와 면접 컨설팅에서 만나 친해진 언니의 메신저였습니다. 언니도 한 길을 개척해 나간 사람이라 그런지 내면의 단단함과 유쾌함을 함께 지닌 분이었습니다. 함께 있으면 즐겁고 항상 응원해 주며 인생의 자극을 주는 언니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하루종일 이야기하고, 연애 얘기로 밤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숙사 룸메이트 같았습니다.


[언니를 잃고 싶지 않아요]


날 좋게 봐준 언니에 대한 애정을 느끼며 오랜만에 입꼬리를 올려 웃었습니다. 연애 얘기 중에 이상형을 물어보던데, 남자를 찾아주려고 한 걸까요? 메모장에 뭔가를 적더니, 그 때문이었는지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아니야. 진짜 괜찮은 사람이야! 그리고 너 지금 쉬고 있는 것도 알아]


[그럼 그분도 쉬고 있어요?]


[아니, 직업 있어! 외적으로는 혀늬 너가 말한 거랑 맞는데! 그냥 한 번 만나봐! 연락처 공유해줄게!]


인간 간의 관계는 적당한 거리감이 좋습니다. 언니와 취준메이트가 된 지 얼마 안 됐는데, 나도 모르게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연애와 결혼에 긍정적인 사람이었고, 퇴사 후 이성간 만남에 거리를 두고 있는 나를 안타깝게 보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혀늬야, 너가 그랬잖아. 오늘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자고. 만남이란 그런 거잖아. 꼭 이성으로 한정해서 갇혀있지 말자.]


그래, 내가 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취업 준비하는 것도 아는데, 싫으면 싫다고 했겠지. 죽어 있던 설렘 세포를 깨워보자! 마음속에서 노란색 메신저가 반짝였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과 나이만 아는 사이에서 이성적인 만남이란 것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나도 너무 어색했습니다.


연애는 자신을 알게 하는 거울이라고 하던가요. 내가 어떤 말을 많이 하고 어떤 포커스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나의 추구미와 이상향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직업과 성실함, 그리고 성장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난 왜 이 모양이지.


소개팅에서도 직업과 성장 공부만 물어보면서 내가 지금 면접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나는 이런 걸 물어보고 있지? 맛있는 밥을 먹으면서 할 얘기가 이것밖에 없나? 내가 지금 자격지심이 들어서 그런 건가? 내가 지금 나 자신을 떳떳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언니에게 뭐라고 말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저도 욕심 많아요. 괜찮아요. 이런 얘기 재밌어요."


그 웃음과 말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욕심 있다는 말이 기분 좋게 들리는 단어였던가요? 아니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서 그랬던 걸까요? 자기 일에 신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다들 주식, 투자, 부동산으로 돈돈돈 거리는 남자들을 만났었는데, 자기도 자기 일에 승진도 하고 싶고 높이도 올라가고 싶다는 그의 말에도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을 통해 내가 지금 어떤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성장, 성공, 꿈밖에 머릿속에 없구나. 그런 주제에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려는 이기심이 불쑥불쑥 머리를 들이밀었습니다.


그 사람이 너보다 낮으면 어쩔 거고, 높으면 어쩔 건데?


배우 박혜민님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좁은 시야로 누굴 아래로 보고 누굴 위로 보고 있는지 바보 같았습니다. 어색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이성과의 밥은 휴지를 10장이나 쓸 정도로 신경 쓰고 있었고, 우리는 긴장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제가 말이 많아서 기 빨리셨죠?"

"아뇨, 제 자랑하느라 말 많이 했는걸요."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사랑받는 존재구나.


"저는 여기서 가까워서요! 오늘 얘기 나눠서 너무 즐거웠어요. 조심히 가세요."

"가까우니깐 더 태워드릴게요."

"아니요! 괜찮아요!"

"멀지도 않은데 더더욱 태워드려야죠."


정말 그는 차로 5분 거리를 태워다줬고, 나는 가슴 안에서 몽글거리는 설렘꽃이 피어났습니다.


아,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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